‘청와대 서쪽 별관에서 열리는 회의’의 약칭인 서별관회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산업은행 회장 등이 서별관회의에 참석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당시 이 전 회장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 ‘오더’를 받고 움직인 것”이라며 “이미 답(법정관리)을 정해놓고 청와대가 산은을 움직여 한진을 날린 격”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회장의 전임자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서별관회의의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사태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했다. 법원은 지난해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고했다. 그러나 아직 서별관회의와 관련한 의혹은 규명되지 않았다. ‘청와대 서쪽 별관에서 열리는 회의’의 약칭인 서별관회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산업은행 회장 등이 참석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서별관회의 멤버였던 유일호 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은 2016년 국회 서별관회의 청문회에서 “서별관회의의 회의록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15년 10월 수조 원대 손실로 존폐 위기에 놓인 대우조선해양은 서별관회의의 혜택을 입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당시 한진해운 등 국적 해운사를 살리면 조선사도 함께 살아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선사 지원에 힘을 실었다”며 “결과적으로 대우조선해양에 4조 원이 투입됐고, 최근 또 다시 추가 지원이 결정됐는데 앞으로도 정부 지원 없이 대우조선해양이 존속할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말했다.
옛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박근혜 정부 당시 한진해운과 마찬가지로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출자전환을 통해 산은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증권 등 계열사 매각, 사재 출연 등으로 현대상선을 지원했지만 수조 원대 차입금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금융권에선 현대그룹 구조조정 역시 서별관회의의 결과물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의혹을 밝힐 당사자들은 묵묵부답이다. 서별관회의 핵심 멤버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별건으로 구속수감 중이다. 홍 전 회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서별관회의의 한 축인 금감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금융권을 압박하는 ‘악역’을 자처했다. 지난 1월 법원은 경남기업에 특혜성 자금 지원을 하도록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은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대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전 부원장보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4월 당시 경영난을 겪던 경남기업에 300억 원을 대출해주도록 농협 등을 압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해 경남기업 오너였던 고(故) 성완종 의원은 기업 워크아웃을 앞두고 서별관회의 멤버인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 홍기택 전 회장 등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한은행은 주채권은행 자격으로 경남기업 워크아웃을 승인하고 채권단과 함께 6300억 원을 지원했는데 이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최 전 원장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신한은행 역시 “대출 과정에 정부 압력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서별관회의에서 금감원이 시중은행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은 또 다른 건에서 흘러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2013년 초 박근혜 정부는 쌍용건설 워크아웃과 관련한 서별관회의를 열고 4000억 원대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시공능력평가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쌍용건설을 살리기 위해 청와대가 서별관회의를 연 것이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불렸던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서별관회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붕괴됐기 때문에 이런 얘기도 나오는 것”이라며 “은행은 허가업이라 (당시) 청와대가 강하게 얘기하는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들을 주도한 서별관회의는 과거 정부의 ‘관치의 상징’이자 ‘밀실논란’의 중심 축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서별관희의를 폐지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해 6월 “새정부에서 ‘서별관회의’라는 용어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관료사회를 중심으로 서별관회의의 필요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한국GM 지원, 금호타이어 매각, 가상화폐 규제 등 경제 현안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부처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또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 취임을 계기로 서별관회의 부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선을 긋고 있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일부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어 부활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금융권에선 최근 최 위원장이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과 1시간가량 독대한 자리에서 서별관회의와 같은 협의체 필요성을 주장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기존 서별관회의와 관련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섣불리 부활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가 관치의 상징인 서별관회의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를 부활시킨다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란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사정에 밝은 시중은행 한 간부는 “지금도 청와대 내 논의 테이블이 있기 때문에 서별관회의가 반드시 부활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