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금융협회는 작년 4월 임기를 마친 이기연 상근부회장이 퇴임한 뒤 1년여간 신임 부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협회 부회장은 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최종 임명하도록 돼 있지만 후임자 후보 추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관련 절차 역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정이영 부회장(전무)이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후 후임 인선에 대해 감감무소식이다. 보통 임원 퇴임이 가까워져오면 후임자로 누가 온다더라는 식의 하마평이 돌게 마련이어서 두 협회의 공석 사태는 이례적이다.
지난 2일 오전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 원장 취임으로 제2금융권 협회들의 2인자 인사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융협회 부회장 인선이 금융당국 인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그동안 그 자리를 대부분 관료나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장을 상대로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협회의 특성상 금융당국 출신 인사를 회장이나 부회장에 앉혀 당국과 소통을 원활히 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반복되는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마피아)’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른 금융협회 최고위직은 여전히 관료 출신 인사들이 독식하고 있다. 홍재문 은행연합회 전무, 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등 1금융권 협회들은 물론이고 송재근 생명보험협회 전무,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과 서경환 전무 등도 관 출신 인사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카드업계와 저축은행업계는 협회 부회장 인선이 늦어지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두 업계는 새 정부의 금융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율을 받는 영세·중소 가맹점의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여신금융협회는 이미 영세·중소 가맹점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2019년부터는 유흥주점 등 일부 업종의 부가가치세를 카드사가 대리 납부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카드업계와 여신금융협회는 부가세 대리납부와 관련해 필요 인력 채용 등의 지원과 부가세 대납 수수료 지급 등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저축은행의 경우 최근 최고금리 24% 인하 적용은 물론 연체가산금리 인하 및 가계대출 총량규제 시행 등으로 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렇듯 서민금융 증진을 위해 업계에 부담을 주는 정책이 등장하면서 업계 의견을 금융당국과 조율할 부회장직이 공석이라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김기식 전 의원이 새 금감원장으로 선임되면서 두 협회의 부회장 인선도 속도를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두 협회의 부회장 자리를 금감원 출신이 도맡아 왔던 전례를 비춰 볼 때 업계에선 이번에도 금감원 등 금융당국 출신이 후임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기연 전 부회장은 금감원 부원장보를 지냈고, 정이영 전 부회장 역시 금감원 조사연구실장을 거쳤다.
금융권은 김기식 금감원장이 고위직 물갈이 인사를 실시할 경우 두 협회가 ‘이삭줍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퇴임하는 임원이 나올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를 통과한 기존 퇴임 임원을 상대로 영입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초 두 협회 부회장은 금감원 국실장 인사가 마무리되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다”며 “금감원장이 갑자기 바뀌면서 추가 인사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부분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인 김기식 원장의 개혁성향을 감안할 때 이번에는 민간 출신 부회장이 영입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관피아 논란이 거세지면서 금융협회에 민간 출신 임원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현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한 민간 출신이고,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도 KB국민카드 대표이사를 지낸, 첫 민간 출신 회장이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김기식 원장은 정무위 국회의원 시절 금융당국을 강하게 질타한 인물”이라면서 “관료 출신보다 오히려 시민단체 쪽으로 눈을 돌리는 협회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정책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관련 업계의 의견은 사실 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업계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현안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적임자를 찾아내 정부와 소통하는 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