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지(Jay-Z)의 ‘Empire State of Mind’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양키스 스타디움. 사진=Empire State of Mind 뮤직비디오 캡처
[일요신문] ‘코트 가까이 앉아 닉스와 네츠는 내게 하이파이브를 하지…친구와 함께 양키스 경기를 보는 날 찾아봐. 내가 양키스 선수보다 양키스 모자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지….’
미국 동부의 대도시 뉴욕하면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제이지(Jay-Z)의 곡 ‘Empire State of Mind’의 일부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뉴욕이지만 그들도 제이지의 곡에서 알 수 있듯 여가시간이면 스포츠를 즐긴다. 돈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는 ‘메가시티’인 만큼 어쩌면 스포츠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철저한 자본주의의 나라이자 스포츠마케팅을 수면위로 끌어낸 미국인 만큼 스포츠에도 철저히 ‘돈의 논리’가 적용된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세계 최대 도시 뉴욕’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뉴욕의 프로스포츠 경기장 일부를 직접 방문해 뉴요커의 스포츠 문화를 직접 둘러봤다. 세계인의 수도, 미국 스포츠의 상징, 뉴욕에서 프로스포츠 즐기기에 나섰다.
#한 도시에 10여 개 구단 몰려있는 ‘빅마켓’
뉴욕 맨해튼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김상래 기자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스포츠의 나라’이기도 하다. 독자적인 스포츠 문화를 발달시켜 자국내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프로풋볼(NFL) 등을 세계 최고 프로스포츠 리그로 만들었다.
후발주자인 메이저리그사커(MSL) 또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각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구단 중 10개가 넘는 팀이 뉴욕에 자리잡고 있다. 양키스, 메츠(이상 MLB), 닉스, 네츠(이상 NBA), 레인저스, 아일랜더스(이상 NHL), 제츠, 자이언츠(이상 NHL), 레드불스, 시티 FC(이상 MLS), 코스모스(NASL), 리버티(WNBA)까지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과 매력으로 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뉴욕은 대표적 ‘빅 마켓’으로 꼽힌다. 도시에 인구와 자본이 몰려 경기 티켓, 관련 상품 등을 판매할 큰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스타 선수들의 발길도 빅 마켓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이에 이 도시에 자리를 잡은 뉴욕 양키스(MLB), 뉴욕 닉스(NBA), 뉴욕 레인저스(NHL), 뉴욕 자이언츠(NFL) 등은 저마다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팀들이 됐다. 수많은 스타들의 배출은 물론이고 이미 앞선 3팀과 같은 터줏대감 외에도 각각 ‘넘버2’ 팀들도 존재한다. 뉴욕 메츠(MLB), 브루클린 네츠(NBA), 뉴욕 아일랜더스(NHL), 뉴욕 제츠(NFL)는 후발주자다. 메츠는 양키스보다 뒤늦게 창단했고, 네츠와 아일랜더스는 다른 지역에서 뉴욕으로 뒤늦게 터를 잡았다. 이들은 터줏대감들의 성적을 따라잡기도 하지만 인기나 인지도 면에서는 ‘원조’들의 아성을 깨지 못하고 있다.
# 뉴욕 스포츠의 상징 ‘매디슨스퀘어가든’
지난 3월 24일 뉴욕에 첫 발을 디딘 기자는 먼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스스로를 그렇게 홍보하고 있다)’ 매디슨스퀘어가든(MSG)부터 찾았다. 뉴욕의 중심인 맨해튼, 그 중에서도 최대 번화가인 타임스퀘어 광장으로부터 남쪽으로 2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MSG은 NBA의 뉴욕 닉스, NHL 뉴욕 레인저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뉴욕 리버티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MSG는 열리는 경기에 따라 빙판이 깔리기도, 농구장이 깔리기도 한다.
메디슨스퀘어가든 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의류. 이들은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The world‘s most famous arena)’이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경기장에서는 농구와 아이스하키 경기만이 펼쳐지지 않는다.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등 복싱 레전드들이 이 경기장에서 대결을 벌였고 WWE(프로레슬링)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레슬매니아’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종합격투기 단체로 떠오른 UFC의 메인이벤트도 이곳에서 열린다.
MSG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공연장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가수로는 비가 최초로 지난 2006년 이곳에서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된 바 있고 빌리 조엘, 마돈나, 브루노 마스 등 최고 뮤지션들이 거쳐간 곳이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가 열리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24일은 뉴욕 레인저스와 버팔로 세이버스의 NHL 경기를 직접 즐길 수 있었다. 경기 시작 약 2시간 전부터 홈팀 레인저스의 저지를 입은 사람들로 경기장 주변이 북적거렸다. 대부분의 관중들이 가족 단위인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 중 일부는 경기장 내 닉스와 레인저스의 오피셜 숍에서 구단의 굿즈를 둘러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니폼은 물론 구단의 엠블럼이 박힌 작은 박하사탕, 자전거, 애견 의류까지 다양하게 마련된 굿즈는 팬들의 지갑을 자연스레 열게 했다.
수용인원 2만 명으로 최신식 체육관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웅장함과 경기를 앞둔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경기를 앞두고선 순직한 뉴욕시 경찰관을 추모하는 의식을 가졌다. 지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뉴욕 출신 선수들의 환영식도 열렸다. 지역연고 의식이 비교적 희미한 한국 프로스포츠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경기는 홈팀 레인저스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이어졌다. 1피리어드와 2피리어드에 2골과 3골을 적립한 이들은 경기 막판 1골만을 내주며 5-1 승리를 거뒀다. 홈팬들의 환호 속에서 경기가 마무리됐다.
# 브루클린 네츠의 눈물겨운 분투
레인저스 경기가 열린 다음날인 25일엔 뉴욕의 또 다른 NBA 팀 브루클린 네츠의 홈경기가 있었다. 네츠의 홈 경기장은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이스트강을 건너 브루클린에 위치한 바클레이 스타디움이다. 이 경기장 또한 네츠와 NHL의 뉴욕 아일랜더스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바클레이 스타디움.
이 경기장의 특징은 유독 아시아인 관객이 많다는 점이었다. 브루클린에는 수년 전 NBA에 ‘린새너티’ 돌풍을 일으킨 대만계 미국인 선수 제레미 린이 소속돼 있다. 시즌 초반 큰 부상을 당해 그의 활약상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수많은 아시아인 관객과 공식 스토어 메인에 걸린 그의 유니폼으로 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브루클린의 상대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였다. ‘킹’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인기 팀이다. 브루클린은 지난 2012년까지 뉴저지 생활을 마치고 뉴욕시 브루클린으로 터전을 옮겼다. 뉴욕에서의 역사가 깊지 않은 만큼 여전히 뉴욕의 주인은 닉스다. 바클레이 스타디움 또한 MSG와 비슷한 규모의 경기장이지만 닉스와 같은 매진 사례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경기장 안에는 브루클린의 저지를 입은 관중만큼이나 등 뒤에 제임스가 새겨진 클리블랜드의 저지를 입은 인원도 만만치 않았다.
원정팀 팬들로 가득 찬 바클레이 스타디움.
경기가 치러지는 도중에도 이 같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홈팀의 득점 상황보다 클리블랜드가 멋진 장면을 연출하면 관중들의 함성이 크게 느껴졌다. 1쿼터 마지막 공격에서 르브론의 단독 플레이에 이은 덩크슛은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럼에도 경기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브루클린이 선전을 이어갔다. 1쿼터를 근소하게 앞서간 이들은 2, 3쿼터에도 대등하게 경기를 치러냈다. 하지만 승부처는 4쿼터였다. 그는 4쿼터에서 연속 덩크로 분위기를 끌어 올렸고, 경기종료 40여 초를 남기고 수비를 앞에 세워둔 채 쐐기 3점포를 작렬시켰다. 경기장 분위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바클레이 스타디움을 빠져나오는 팬들은 리그 수위권을 다투는 팀과 대등하게 겨룬 경기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치어리딩의 본고장 미국 현지에서 보는 치어리더들의 공연 또한 궁금했다. 작전 타임 등 수시로 치어리더들이 관중의 흥을 돋게 했지만 농구경기에서 가장 긴 공백인 2쿼터 이후 쉬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 시간이 되자 예상과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브루클린 네츠 유소년 팀의 코치가 ‘주니어 NBA 올해의 코치 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시 한 번 트로피를 들어 올린 코치는 이어진 제자들의 미니게임을 지도했다. 경기장을 채운 2만여 명의 관중들은 어린이들의 농구경기를 진지하게 지켜봤다. 연고지와 밀착한 관계를 이어가려는 미국 스포츠 구단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미국 뉴욕=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빅마켓 뉴욕의 위엄? 성적은 글쎄 매디슨스퀘어가든(MSG)는 닉스의 홈경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닉스는 가장 유명한 농구 팀 중 하나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발표한 ‘2017년 가장 가치있는 스포츠 구단’ 순위에서 7위를 차지했다. NBA 내 1위로, 류현진이 활약하고 있는 LA 다저스(9위)보다도 앞선 순위다. 닉스는 2012-2013 시즌(동부컨퍼런스 2위, 플레이오프 4강 진출)을 제외하면 1999년 준우승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NBA 강팀들을 제치고 최고 가치를 평가받은 것은 빅마켓 뉴욕의 위엄을 볼 수 있는 좋은 예다. 흥미로운 점은 닉스의 결과물이 NBA 내 또다른 빅마켓 인기구단인 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 보스턴 셀틱스 등과 비교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 데릭 로즈(이상 불스),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매직 존슨(레이커스), 폴 피어스, 레이 알렌, 라존 론도(셀틱스) 등 슈퍼스타들을 배출해온 구단들과 달리 닉스는 ‘20세기 선수’ 패트릭 유잉을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NBA 파이널 우승 또한 1973년이 마지막이며 1999년 이후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홈경기장 MSG는 매경기 매진이다. 닉스가 뉴욕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가장 가치 있는 구단 순위에 뉴욕 소재 구단은 ‘만년 하위권’ 닉스뿐만이 아니다. 1위 댈러스 카우보이스(NFL)에 이어 2위에 뉴욕 양키스가 자리했다. 닉스(7위) 바로 아래에는 뉴욕 자이언츠(NFL)가 랭크됐다. 이외에도 뉴욕 제츠(NFL, 13위), 뉴욕 메츠(MLB, 39위)가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상] |
축구 월드 스타들도 사랑한 도시 티에리 앙리, 라파엘 마르케스, 팀 케이힐, 다비드 비야, 안드레아 피를로, 프랭크 램파드, 라울 곤잘레스. 유럽에서 이름이 불리는 게 익숙한 이들은 모두 뉴욕을 거쳐간 축구 스타들이다. 프랑스 축구의 전설적 선수 패트릭 비에이라는 뉴욕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른 스포츠에 밀려 축구의 입지가 다소 좁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 영향력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다른 종목이 그렇듯 축구도 복수의 팀이 뉴욕에 자리잡고 있다. 뉴욕 레드불스와 뉴욕 시티 FC가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에 소속돼 뉴욕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 각지에 축구클럽을 소유하며 자신들만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타르의 거부 만수르가 설립한 회사로 유명한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은 영국, 호주, 일본, 우루과이 등에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레드불 그룹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브라질에서 구단을 운영 중이며 미국에서는 뉴욕을 선택했다. 이들의 특별한 프로젝트와 공격적인 투자에 유럽의 스타들이 매료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앙리는 선수생활 당시 인터뷰에서 “휴가 차 뉴욕에 온 적이 몇 번 있다”며 “MLS에 갈 것이라 다짐하며 첫 번째 선택지는 뉴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피를로 또한 “뉴욕 팬들의 열정을 보고 이 팀을 선택했다”고 입단 이유를 밝혔다. 2부리그 격인 북미사커리그(NASL)에서 MLS 진출을 노리는 뉴욕 팀도 존재한다. ‘축구 황제’ 펠레가 명예회장 직을 맡고 있는 뉴욕 코스모스가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 해체됐다 2010년 재창단한 이 팀에 단장 자리에 에릭 칸토나, 선수로 라울 곤잘레스 등이 거쳐가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 또한 뉴욕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축구스타 중 한명이다. 베컴의 장남 이름은 ‘브루클린’으로 뉴욕시 내의 한 자치구 지명이다. 베컴이 아들의 이름을 브루클린으로 지을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베컴의 부인 빅토리아가 첫 아들을 브루클린에서 임신하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 장소가 브루클린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후에 빅토리아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브룩’이라는 이름을 좋아해 아들 이름을 브루클린으로 지었고 내가 브루클린에 있을 때 전화로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