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를 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2)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부 수출 품목에 대해 관세 폭탄을 맞은 유럽과 중국이 이에 대해 맞불 작전을 놓으면서 각국의 대미 관계는 더욱 긴장 상태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가 결국에는 미국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트럼프가 주도하고 있는 무역 전쟁에 떨고 있는 것은 비단 유럽 기업들뿐만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역사 깊은 오토바이 제조회사인 ‘할리 데이비슨’을 예로 든 ‘포쿠스’는 아마도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로 머지 않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과 같은 미국의 회사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무역전쟁이 결과적으로 할리 데이비슨 같은 미국의 수출기업에 타격을 입히게 됐다. 사진은 할리 데이비슨 뉴욕 매장. AFP/연합뉴스
‘할리 데이비슨’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과거 할리 데이비슨에서 부서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2007년 퇴직했던 마이크 피트릭은 밀워키 변두리에 있는 작고 소박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안 인테리어는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서민풍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아끼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차고다.
그의 차고를 둘러본 사람들은 모두들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의 삼륜 울트라 클래식 모델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반질반질 광이 나는 이 오토바이의 가격은 3만 5000달러(약 3800만 원). 하지만 머지않아 ‘할리 데이비슨’의 가격은 이보다 더 오를 전망이다. 이유인즉슨, 트럼프의 수입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 때문이다.
얼마전 유럽과 중국을 향해 무역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는 지난 3월 초,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캐나다, 멕시코는 제외했다는 점에서 엄연히 유럽을 향한 일종의 무역제재 조치였다.
이에 유럽연합(EU) 측은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3월 18일, EU 집행위원회는 ‘대미 보복 관세’ 목록을 발표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는 쌀, 세탁기, 오렌지, 주방용품, 화장품을 비롯해 오토바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EU 집행위원장인 클로드 융커는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 위스키와 함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도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들 업체를 타깃으로 강력하게 대응할 준비가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에 대해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겠다면서 다시 맞불작전을 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취하는 보호무역 조치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포쿠스’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지지자인 피트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트릭은 “나는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뽑았다. 그래서 대통령에 대한 험담은 하고 싶지 않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최근 불거지고 있는 관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불만이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로 식료품, 의류, 휘발유 등 모든 물가가 오르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피트릭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토록 사랑하는 할리 데이비슨의 미래가 트럼프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트럼프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사실에 그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런 배신감은 피트릭 혼자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대선 당시 위스콘신주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막강한 힘을 보태주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트럼프는 취임 2주 만에 할리 데이비슨의 CEO인 매튜 레바티치를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백악관 앞에 자신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레바티치를 맞이하는 훈훈한 모습도 연출했다. 당시 트럼프는 “우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공장을 더 많이 건설하도록 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2월 2일 백악관에서 자신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할리 데이비슨 CEO을 맞이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마이크 펜스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매튜 레바티치 CEO. AP/연합뉴스
하지만 이 말은 결과적으로는 할리 데이비슨을 비롯한 미국의 다른 수출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주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서 탈퇴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머지않아 미국의 수출 기업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전망이다.
특히 유럽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청바지나 버번 위스키와 달리 열성적인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컬트 브랜드’인 할리 데이비슨이 받게 될 충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주원료로 제작하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의 생산 비용이 트럼프가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하는 관세로 폭등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미 투자증권사인 ‘웨드버시 시큐리티’는 이로 인해 할리 데이비슨의 비용 상승이 매년 3000만 달러(약 318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욱 최악인 것은 만일 EU가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융커가 제시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실행에 옮길 경우다. 미국 내 저조한 판매율을 수출로 상쇄하는 것을 회사의 전략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에게 이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생산량의 16%는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지만, 만일 유럽 내 소비자 가격이 25% 상승할 경우 판매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지역 정치인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위스콘신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민주당의 매튜 플린은 “사람들은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기꺼이 몸에 문신까지 새기고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에 어떤 기업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회사는 정말 대단하다. 때문에 이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린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 조치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지금까지 신중하게 구축되어 온 국제적 협력관계를 무시하고, 결국에는 되돌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는 할리 데이비슨의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밀워키 서북쪽에 위치한 메노모니 폴즈의 할리 데이비슨 공장은 축구장의 열한 배 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방대하다. 3층 건물에는 10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해 생산량은 24만 대가량이었다.
이곳에서는 자동화로 인해 대부분의 작업은 로봇이 하고 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일은 직원들이 맡고 있다. 저마다 개성 넘치는 복장을 하고 있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직원들 가운데는 회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한 여성 노동자는 “공장에 견학 오는 많은 사람들이 할리 데이비슨 티셔츠를 입는 것이 회사 규정이라도 되느냐고 자주 묻는다”고 말하면서 “물론 아니다. 직원들은 그저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입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렉 팔머 역시 이런 직원 가운데 한 명이다. 32년 동안 할리 데이비슨에서 일했던 팔머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런 까닭에 그는 트럼프의 보복 관세 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불만을 갖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보복 관세로 우리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또한 재정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지난 35년 동안 우리는 중동, 아시아, 유럽 시장을 다져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비난했다.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된 고객층인 할리 데이비슨의 팬들이 이제 70대 노인들이 됐다는 점도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고령화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더 이상 오토바이를 몰지 않으면서 전세계 판매량은 4년 전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7%포인트가량 하락한 바 있다. 더욱 불길한 징조는 최근 4분기 실적이 80%포인트 넘게 급락했다는 사실이다. 계속되는 판매 부진에 따라 미국 내 세 곳의 공장 가운데 한 곳인 캔자스 공장은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이런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로선 불행하게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트럼프 내각에서는 독불장군격인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 만한 사람이 딱히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얼마 전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이 경질된 후부터 백악관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그나마 자유무역 옹호주의자이자 트럼프의 보호무역과 우선주의에 강하게 반발해왔던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에게 걸었던 기대 역시 그가 자진 사퇴함으로써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콘은 “관세 조치를 고집할 경우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트럼프에게 재차 밝혀왔었고, 결국 트럼프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물러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현재 백악관에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측근들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때문에 트럼프의 고삐가 더욱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재차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도 사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