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노선영 선수는 모습을 드러냈다. SBS ‘김어준의 블랙 하우스’에 출연했다. 팀 추월 따돌림 이야기는 없었다. 누군가를 표적 삼지도 않았다. 노 선수는 “모든 선수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대승적인 이야기에 집중했다.
3월 8일 SBS ‘김어준의 블랙 하우스’에 출연한 노선영 선수.
그 사이 김보름 선수는 매스 스타트 은메달을 따고 관중에게 절을 했다. 그에게 빗발쳤던 여론은 약간 잠잠해졌다. 김 선수가 고향인 대구 달성군 다사읍 행정복지센터에 500만 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얼마 뒤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기사까지 났다. 동정 여론이 조성됐다.
김보름 선수에 대한 동정 여론에 피해자 노선영 선수는 가해자가 돼버렸다. ‘김어준의 블랙 하우스’에 나왔다는 이유로 당시 비난의 중심에 섰던 김어준 쪽 사람으로 분류돼 여론은 싸늘히 식어 갔다. 김어준은 미투 논란에 빠진 ‘정봉주 감싸기’와 ‘미투 정치공작설’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노선영 선수는 그 뒤부터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2월 20일 기자회견 직후 노선영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휴대전화로 긴 편지 3통을 보낸 뒤에야 경기도 인근 카페 두 곳에서 2월 27일에는 1시간 30분, 3월 3일 5시간 등 총 6시간 30분에 걸쳐 만나 볼 수 있었다. SBS와만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타 언론사의 공격을 받았던 노 선수는 아무 잘못 없이 욕만 먹는 지금 상황이 두려워 기사 보류를 요청했다. ‘일요신문’은 한 달이 넘는 기다림과 설득 끝에 노 선수에게 인터뷰 기사의 보도를 허락 받을 수 있었다.
#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다 발 돌린 노선영 선수
2월 20일 오후 1시쯤 김민섭 코치의 기자회견 출석 통보를 받은 노선영 선수는 오후 4시 45분 기자회견장을 가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걷던 그는 백철기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봤다. 백 감독은 오후 2시 49분에 “노선영 선수가 ‘3번’을 자청했다”는 발언을 연합뉴스에 이미 내놓은 상태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팀 추월 준준결승 따돌림 사태는 마지막 바퀴에 3번을 탄 노선영 선수를 두고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결승점으로 내달리며 발생했다. 노 선수는 ”3번 타란 지시는 없었다. 최종 연습 때도 난 2번을 탔다“고 말했고 백철기 감독은 내내 ”노 선수가 3번을 자청했다“고 주장해 왔다. 팀 추월은 3명이 뛰며 가장 늦게 들어오는 선수 기준으로 경기 기록이 측정되는 빙상 단체전이다. 노 선수는 “기자회견장에 가도 할 말이 없다고 느꼈다. 어차피 답 다 정해놓고 인터뷰까지 내놨으면 가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선영 선수는 숙소로 발을 돌리며 백철기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무작정 안 간다고 하면 또 압박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그에게 옅은 기침 감기는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백 감독은 “나와야 한다. 지금 다 잡혀 있는데 안 나오면 어떡하냐”고 노 선수를 다그쳤다. 노 선수는 “거기 나가서 할 말이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백 감독은 목소리를 점점 높이며 ‘그래도 나와야 된다. 나와. 나오는 걸로 알게! 에이 씨!’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전했다.
전할 말은 기자회견장에서 밝히면 될 일이다. 노선영 선수의 예측은 맞았다. 백철기 감독은 기자회견 2시간 전에 연합뉴스에 했던 말을 기자회견장에서 반복했다. 백 감독은 “더 좋은 기록을 내려면 자신이 2번에 있는 것보다 속도를 계속 유지시키다가 3번으로 가는 게 기록향상에 좋다고 노선영 선수가 직접 시합 전에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 인터뷰에 앞서 선수에게 특정 대답 유도한 백철기 감독... 기자회견 발언은 거짓이었나?
노선영 선수는 “백철기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기자회견 뒤인 오후 9시 45분 SBS와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SBS 인터뷰에서 노 선수는 “제가 직접 말한 적은 없고요. 전날까지 제가 2번으로 들어가는 거였는데 시합 당일 워밍업 시간에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라고 했다”고 밝혔다. 백 감독은 1시간쯤 뒤인 오후 10시 48분 “노선영 선수가 3번으로 빠지겠다고 한 건 나만 들은 게 아니다.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입장을 연합뉴스를 통해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백철기 감독과 박지우 선수의 전화통화 녹취가 나왔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이 녹취에는 노선영 선수의 SBS 반박 인터뷰와 백 감독의 연합뉴스 재반박 인터뷰 사이에 있었던 백 감독과 박 선수의 통화가 담겼다. 백 감독은 이 통화에서 자신이 ‘선수 전체’에게 노 선수가 3번 타는 걸 지시했다는 식으로 계속 박 선수에게 특정 답변을 종용했다.
백철기 감독(백) : 두 가지 방법 중에 선영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했으니까 그렇게 가자고 내가 너희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너 기억 안 나?
박지우 선수(박) : 하… 아? 네? 네? 전 솔직히…
백 : 아니 그럼 어떻게 그런 방법으로 탔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틀림없이 너희들한테 했는데.
박 : 당일 날 이야기한 거 아니었어요? 저희 시합 당일 날?
백 : 그래. 당일 날이든 전날이든. 아무튼.
박 : 당일 날은 감독님이 3번 가자고 하신 건 기억나요.
백 : 그래. 3번 가자고. 정확해야 하거든. 내가 너희들한테 정확히 그렇게 이야기했어. 선영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그렇게 가는 걸로 가자고 분명 이야기했어.
박 : 잘… 그렇게까지는…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긴 뒤 같이 숙소를 썼던 선수들에게) 와… 이건 진짠데. 그런 적 없어요.
# 마지막 연습 때 2번을 탔던 노선영 선수, 3번 타도록 유도한 박지우 선수의 이상한 행동
강릉에 도착한 팀 추월 대표팀은 2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총 두 차례 연습을 진행했다. 1차 연습 땐 노 선수가 3번이었다. 1차 연습 뒤 순서는 바뀌었다. 2월 17일 1차 연습을 마친 뒤 백철기 감독은 선수들에게 “마지막 바퀴에서 노선영 선수가 맨 끝으로 가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마지막 바퀴는 노선영 선수가 2번으로 타라”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서 김보름 선수는 지나가는 말로 “노선영 선수 3번 타도 안 떨어질 것 같은데…”라고 했다. 노선영 선수는 후반 스퍼트에 비해 초반 스타트가 좋은 선수다.
4월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박승희 팬 미팅에 모습을 드러낸 박지우 선수.
2월 18일 최종 연습 때 노선영 선수는 백철기 감독의 지시대로 2번을 탔다. 경기 직전 최종 훈련은 그렇게 끝났다. 문제는 박지우 선수의 이상한 행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노 선수에 따르면 최종 훈련 뒤 박 선수는 노 선수에게 “마지막 바퀴 때 2번이 좋아요? 3번이 좋아요?”라고 물었다. 노 선수는 방금 최종 훈련을 마친 상태여서 어이가 없었지만 “2번으로 계속 있을게”라고 대답했다. 박 선수는 “언니 생각이 그런 거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대화를 끝낸 뒤 노선영 선수는 까진 뒤꿈치에 얼음을 대러 라커룸으로 향했다. 라커룸 문을 열자 거기에선 백철기 감독과 박지우 선수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날인 2월 19일 팀 추월 따돌림 사태가 발생한 뒤 노선영 선수는 라커룸에서 장비를 챙겼다. 그때 박지우 선수가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노 선수가 박 선수에게 “너 어제 라커룸에서 백철기 감독님이랑 무슨 이야기했어?”라고 물었다. 박 선수는 “아 맞다. 제가 감독님께 2월 18일 마지막 훈련 뒤 노선영 선수가 3번 탈 수 있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감독님께서 ‘답을 주겠다 기다리라’고 했어요. 오늘 시합 전까지도 감독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그대로’ 하는 줄 알았어요. 감독님께서 답을 안 주셔서 언니한테 말을 못했어요”라고 했다.
‘일요신문’은 백철기 감독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지난해 전지훈련 때까지만 해도 연락이 잘 되던 백 감독은 지난 2월 ‘일요신문’이 빙상연맹 관련 취재에 나선 뒤부터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선수촌 밖으로 나가자며 갑자기 팔짱 낀 박지우… 여전히 남은 의문들 따돌림 의혹이 제기된 뒤 노선영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팔짱을 낀 사진이 경기 다음날 보도됐다. 이 사진으로 노 선수와 박 선수 사이 따돌림이 없었다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허나 이날 팔짱 사진이 보도된 배경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여럿 발견됐다. 노선영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경기 다음날 오전 박지우 선수는 숙소 거실에서 울고 있었다. 팀 추월 경기 뒤 김보름, 박지우 선수에게 몰린 공분 때문이었다. 함께 방을 썼던 노선영, 박승희, 심석희 선수는 박 선수를 달래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노 선수는 “박지우 선수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다만 10년 어린 후배가 저렇게 욕을 먹고 울고 있는 걸 보니 어릴 때 힘든 시간이 생각났다. 그래도 선배니까 어린 후배 챙기는 게 맞지 않나 싶어 함께 동행해 밥을 먹으러 갔다”고 밝혔다. 함께 식사를 한 뒤 박승희, 심석희 선수는 성당엘 갔다. 노선영 선수는 박지우 선수와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서 계속 우울해 하던 박 선수는 “밖에 나갔다 오니까 우울한 게 좀 덜하다. 놀이터로 놀러 나가자”고 노 선수에게 제안했다. 노 선수는 기자를 마주칠까 나가기 싫었지만 어린 박 선수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함께 선수촌 쪽문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박 선수는 노 선수에게 선수촌 밖 한 카페로 토피넛 라떼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카페를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박지우 선수는 노선영 선수에게 “저 네일 아트한 거 지우고 싶어요. 기다려 주실래요?”라고 말했다. 선수촌 정문과 숙소 사이의 올림픽 선수촌 플라자에는 손톱 관리 시설이 포함된 미용실이 있었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싶었던 노 선수는 박 선수에게 “안에 기자 있는지 확인해 줘. 없으면 들어갈게”라고 했다. 박 선수가 “기자가 없다”고 확인해 준 뒤에야 노 선수는 플라자로 들어갔다. 박지우 선수가 손톱 정리를 끝낸 뒤 둘은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사이 연합뉴스에 사진을 팔짱 낀 사진이 찍혔다. 노선영 선수는 박 선수가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전했다. “그 전에도 함께 팔짱을 낀 적 있었냐”는 ‘일요신문’ 질문에 노 선수는 “2016년 여름부터 이제까지 박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 생활을 해 오며 팔짱을 낀 적이 없다”며 “둘이 밥이나 커피를 마신 것도 한두 번 기억날 뿐”이라고 전했다. 언론을 이용한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치밀한 언론 플레이가 최근 드러나며 팀 추월 따돌림 사태를 포함 노선영, 박지우 선수의 팔짱 역시 ‘기획’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빙상연맹의 미숙한 행정으로 올림픽 출전을 하지 못할 뻔했던 노 선수가 동계올림픽에 앞서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있었다”고 폭로하자 빙상연맹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나날이 강도가 심해졌었다. 전 교수는 빙상연맹의 실권을 장악했다고 알려졌다. 전 교수가 팀 추월 뒤 노 선수에게 보낸 기사는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전명규 교수는 2월 23일 오전 11시 16분 한 진보 매체에서 나온 기사 하나를 노선영 선수에게 보냈다. “노선영 선수는 미디어와 만날 공식 기회를 피하고 비공식 루트로만 반박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빙상연맹으로 돌아온 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집행부와 반대세력 간 파벌 싸움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란 기사였다. 최근 전 교수를 옹호하는 일부 언론은 줄곧 전 교수의 ‘독재’를 ‘파벌 싸움’이라고 규정지어 예전부터 있던 일처럼 치부하고 있다. 기사에는 “2014년 당시 안현수 선수의 귀화가 전명규 교수 탓이라는 여론이 많았는데 이는 최순실 일파가 빙상 스포츠를 장악하려 걸림돌이었던 전 교수를 제거하려는 음모였다”는 ‘만물최순실설’도 포함됐다. 전명규 교수와 박지우 선수의 이상한 행동 사이 관계가 궁금했던 ‘일요신문’은 박 선수를 찾아 나섰다. 박 선수는 올림픽 뒤 붙임머리 시술을 받아 알아 보기 힘들었다. 기다림 끝에 4월 1일 박 선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일요신문’은 박 선수에게 따라 붙어 약 200m를 함께 걸으며 “노선영 선수와 팔짱 낀 사진이 찍힌 과정, 팀 추월 사태가 어떤 연관이나 전명규 교수 등 특정인의 지시 있었냐”고 네 차례 물었다. 박 선수는 대답을 피하다 “대답하기 조금…”이라고만 했다. [최] |
팀 추월은 버리는 경기였을까? 이제껏 백철기 감독이 했던 발언을 종합하면 이번 팀 추월 따돌림 사태는 노선영 선수가 3번을 자처해서 뛰었다가 응원 소리가 큰 탓에 노 선수가 뒤떨어진 걸 몰랐던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질주 탓에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경기가 끝나기에 앞서 초수판이 접혔다. 초수판은 선수가 자신의 앞선 바퀴 속도를 확인하고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알림판이다. 코치진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들에게 초수판으로 앞선 바퀴 기록을 알린다. 평창 동계올림픽 팀 추월 경기에서 초수판은 결승점 200m쯤을 남기고 사라졌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초수판이 선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다.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거리는 200m나 있었다. 초수판을 들고 있었던 사람은 백철기 감독이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