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채권채무 관계로 얽힌 이들의 제로섬게임은 시작됐다. 박원순 안철수 특수 관계를 둘러싼 셈법은 물론, 반문(반문재인)진영의 필살기인 묵시적 야권연대 성사 여부 등은 이번 선거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다만 안 위원장이 ‘양보 프레임’ 덫에 걸리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판으로 전락한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가운데)이 4일 서울 세종대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마친 뒤 박주선(오른쪽 첫번째), 유승민 공동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안 위원장이 험지인 서울시장에 출마한 목적은 ‘야당 교체’다. 서울에서 박 시장 3선을 저지하면 바로 차기 대권열차 일등석에 탑승한다. 안 위원장이 수도권 바람을 전국적으로 일으켜 자유한국당을 제친다면, 낙선해도 사실상 야권 대안으로 떠오른다. 최악 시나리오는 본인도 당도 참패했을 때다. 특히 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정당 득표율(28.8%)과 본인이 출마한 19대 대선 당시 서울지역 득표율(22.8%)을 턱없이 밑돌 경우 재기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박빙 2등이면 성공, 3등과 격차를 벌린 2등은 차기 총선을 담보하겠지만, 3등에 그칠 경우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위원장이 4월 4일 서울시장 공식 출마 선언식에서 “야권의 대표 선수는 나”라며 사실상 단일후보 프레임을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당과의) 야권연대는 없다”며 “이번 선거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표는 한 곳으로 모아야 힘이 되고 의미가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박 시장에 대한 공격도 거칠었다. 안 위원장은 “위선과 무능이 판치는 세상을 서울시에서부터 혁파하겠다”며 “서울시장직이 다음 선거를 위해 인기 관리하는 자리가 돼서는 혁신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박 시장의 미세먼지, 부동산 대책 등을 비판한 뒤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스마트 도시 등의 청사진을 내놨다.
일각에선 안 위원장 출마를 ‘셀프 공천’으로 평가 절하한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당무에 복귀한 그가 스스로 링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선거 결과가 좋지 않다면) 셀프 공천으로 나온 안 위원장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판의 흥행 보증수표다. 그는 7년 전 ‘변방의 이미지’ 하나로 기성 정치권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0%의 지지율을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양보했다. 안 위원장이 후보직 양보를 결정하기까지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제도권 정치에 편입하면서 안철수 바람도 안철수 현상도 소멸했지만, 그가 등판하는 선거와 그렇지 않은 선거의 관심도는 천양지차였다. 2017년 국민의당 대선 경선 등을 비롯해 안철수 이름 하나로 판을 만든 게 대표적 예다.
‘안철수 효과’는 이번에도 즉각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안 위원장이 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인 4월 2일 비공개 고위전략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선투표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애초 결선투표제에 부정적이던 추 대표는 “대통령 개헌안에도 나와 있는 결선투표를 선제적으로 실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안철수 출마’가 선거판을 흔들자 이를 차단하려는 포석이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선거 전략이 조용한 경선에서 ‘치열한 경선’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교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도 안 위원장 등판을 적지 않게 신경 쓴다는 얘기다. 안철수 등판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집권당의 서울시장 경선판까지 뒤흔든 셈이다.
변수는 ‘안풍’(안철수 바람)의 재연 여부다. 현재까지는 역부족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위원장의 지지도는 민주당 후보를 능가하지 못한다. 앞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안 위원장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서울시장 적합도가 더 높았다. 지난해 5·9 대선을 거치면서 안철수 상품성이 많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안 위원장이 출마 선언에서 유독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강조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7년산 박 시장의 ‘나이테’를 계속 건드려 서울시장 프레임을 ‘과거 vs 미래’로 압축하려는 전략이다.
여기엔 집권당 최대 주주인 친문(친문재인)계 비토로 차기 대권 직행을 포기하고 3선으로 우회했다는 점을 부각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일종의 ‘서울시장 알박기’에 대한 비판이다. 다만 안 위원장은 박 시장과의 채권채무 관계를 직접 거론하지 않을 방침이다. 과거 논쟁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평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른쪽을 보면 개헌, 왼쪽을 보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 외교가 전부”라며 “안 위원장으로선 ‘과거 vs 미래’ 구도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안 위원장은 선거 초반부터 박 시장을 과거 프레임에 가두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변수는 ‘양보 프레임’의 소구력이다. 안 위원장 스스로 “양보를 받아낼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양 진영의 의사와 관계없이 ‘양보 프레임’은 선거판 내내 두 후보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일명 박 시장에 대한 안철수의 ‘빚 청구서’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안 위원장의 빚 청구서는 박 시장을 괴롭히는 족쇄가 될 것으로 본다.
비문(비문재인)계 한 관계자는 “본선에서 유권자들 사이에 양보 프레임이 가동되면, 박 시장의 부담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찌르는 칼보다 목에 겨누는 칼의 공포가 큰 법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세월이 흐르고 당적도, 서로의 위치도 달라졌다”며 양보론을 일축했다. 전 평론가는 “안 위원장이 말하지 않아도 다수의 유권자는 7년 전 50% 후보가 5%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며 “안 위원장이 이를 선거 수단으로 삼는 순간, 역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찰 것”이라고 충고했다.
문제는 안 위원장이 빚 청구서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느냐다. 역전 시간이 보장된 선거 초반 땐 빚 청구서를 뒤로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선거 중후반 생각만큼 지지도가 오르지 않을 경우 조급증을 느낀 캠프 주변에서 양보 프레임을 꺼낼 수도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미 박 시장을 향해 “공짜를 먹은 서울시장직을 양보하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그만큼 조급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방법은 하나다. 조기에 지지도를 끌어 올려서 판을 흔드는 전략이다. 1차 목표는 안 위원장이 지난해 5·9 대선 당시 서울에서 득표한 22.8% 돌파다. 그 이하에 그친다면, ‘박원순 vs 안철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2차 목표는 안 위원장이 창당한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기록한 정당 득표율 28.8%다. 안 위원장의 지지도가 30%를 넘어선다면, 서울시장 판세는 며느리도 모르는 안갯속 국면에 빠진다.
이 경우 막판 판세는 묵시적 야권연대 여부에서 갈린다. 안 위원장의 기조는 ‘한국당 패싱’이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 위원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대면 몰라도, 태극기 세력을 대변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연대 효과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야권 교체를 말한 안 위원장이 한국당과 단일화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라며 “안 위원장의 (출마) 목적은 이번 지방선거가 아닌 차기 총·대선”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전 지사가 중도 포기하는 ‘묵시적 야권연대’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김 전 지사의 완주 여부와 관련해 물음표를 꺼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잇따른 인재영입 실패 당시 야권 내부에선 ‘미필적 고의’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정치 9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홍 대표가) 안 나올 사람한테 권해 놓고 거절당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 흔들기에 나선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발 무마용으로 ‘김문수 카드’를 꺼내 지방선거 이후 판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서울시장 무공천설에는 안철수(서울)·남경필(경기) 연대를 넘어 홍 대표의 포스트 지방선거 구상이 깔렸다는 얘기다. ‘한국당 패싱’으로 일관하는 안 위원장도 김 전 지사가 중도 포기한다면, 중도층의 이탈을 최대한 막은 채 연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박원순 vs 안철수’ 1 대 1 구도는 상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윤지상 언론인
박영선 우상호 ‘안철수 때리기’ 앞과 뒤 ‘박 때리기’ 효과 없자 과녁 옮겨 지지도 제고에 사활을 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안철수 때리기’에 나섰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들의 맹폭격에도 6·13 지방선거 링으로 올라오지 않자,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과녁을 옮긴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전략이 깔렸다. 하나는 ‘안철수의 맞상대는 나야 나’를 외치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다. 다른 하나는 안 위원장의 출마로 판세에 균열이 생길 경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포석이다. 안 위원장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은 당 경선판을 흔들기 위한 승부수라는 얘기다. 실제 두 의원은 안 위원장을 고리로 ‘박원순 견제’를 본격화했다. 박영선·우상호 의원은 안 위원장이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4월 4일 “대선에 이용하려고 나왔느냐”라고 비판했다. 앞서 박 의원은 3월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2012년 대선 당시 야권 단일후보 과정에서 내가 협상팀장이었다”며 “안 위원장을 잘 안다”고 말했다. 우 의원도 다음 날 “거짓말로 국민의당을 바른정당에 갖다 바치고, 급기야 자유한국당과 연대까지, 도대체 안철수 전 대표의 새 정치가 이런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안 위원장은 발끈했다. 그는 즉각 우 의원의 공격을 “어느 의원님의 뜬금없는 비판”이라고 평가 절하한 뒤 “동료 학생 동지의 순수한 열정을 정치권에 바치고 얻은 자리에 오래 계셔서인지, 판단력이 많이 흐려지신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 의원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고 일갈했다. 이 과정에서 박 시장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박 시장 측은 서울시장 직무 정지를 최대한 늦게 신청, 선거운동 기간을 줄이기로 했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안 위원장이 후발주자들의 공격에 무대응으로 나가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안 위원장이 출마 선언에서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안 위원장은 4월 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어떤 한 분(우 의원)이 바른미래당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 왜곡과 폄하를 하길래 바로잡은 것뿐”이라고만 답했다. 후발주자들의 ‘안철수 때리기’가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들이 선거전략이 네거티브에 매몰되면서 자신의 장점을 부각할 기회를 스스로 봉쇄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의원은 안 위원장의 이명박(MB) 정부 시절 포스코 사외이사 재직을 거론하며 “그 부분을 명확히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쏘아붙였다. 대선 때 논란이 된 동양종합건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꺼낸 것이다. 우 의원도 안 위원장을 향해 “말 바꾸기는 여의도 국보급”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을 줄곧 때리는 ‘섀도복싱’이 효과가 없자, 상대를 바꿨다”면서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꼬집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