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야당에서도 이를 두고 “길 가다가 구석기시대 돌 하나 발견한 그런 것”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는 독설까지 쏟아내며 형편없는 공천이라는 포장지를 덮어놨다. 자유한국당은 올드보이라는 포장을 벗겨내고 ‘오랜 친구 올드보이’라는 포장지를 그 위에 덮어씌우며 ‘묵은 된장이 보약’ ‘구관이 명관’이라는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이인제 전 의원이 3일 국회에서 ‘6·13 지방선거’ 충남도시자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게 된 김문수 전 지사는 1951년생이다. 경기도 부천을 지역구로 해 국회의원 3선을 했고, 두 차례 경기지사를 지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대구로 가 수성갑 지역구에 출마,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현 행정안전부 장관과 겨뤘지만 낙선했다. 자유한국당 텃밭인 대구에서 한국당 후보가 민주당에 진 것은 한국당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김문수의 정치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김 전 지사를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했다.
한국당 충남지사 후보가 된 이인제 전 의원은 올해 일흔이다. 경기도지사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네 차례나 대선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여러 차례 정치적 고비를 겪으면서도 불사조(피닉스)처럼 재기해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칭도 얻었다. 김문수 전 지사, 이인제 전 의원에 비해서는 젊지만 한국당의 경남지사 후보로 공천된 김태호 전 지사(1962년생) 역시 워낙 정치를 오래 해 많은 유권자들이 “저 사람 아직도 정치 해?”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4월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 지도부와 경남지역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남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 참석, “우후죽순 난립하는 후보보다도 지역별로 최적의 후보를 한 사람만 선정하면 된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후보의 면면을 보면 그 사람들이 과연 지방행정력을 갖춘 검증된 인물인가 (의심된다)”라며 한국당은 올드보이가 아닌 ‘검증된 인물’을 공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판은 거셌다. 특히 대선에 수차례 나가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인제 전 의원 등까지 후보로 내세운 것에 대해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라는 비난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번지는 중이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는 4월 5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이인제 전 의원에 대해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듣보잡’이다”라면서 “우리 같은 경우에는 ‘저 분이 또 나오는구나’ 새로운데, 제가 볼 때는 별로,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별로 고색창연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대해서는 “경기지사를 지낸 분이 대구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다시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단군 조선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1000년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당은 올드보이를 불러온 것에 대해 야당 경험자 차출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강력한 대여투쟁을 해야 하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야당 시절을 경험해 본 올드보이들의 경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당은 현재 3분의 2에 가까운 의원들이 여당만 경험해본 초·재선이다. 야당 경험이 없는 초재선이 대다수여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여당 티를 벗기 위해서는 야당 경험자들을 영입해 앞에서 이끌어줘야 한다는 게 한국당의 설명이다. 싸움도 해본 사람이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전면에 나서게 된 ‘올드보이’들은 모두 한국당이 야당이었던 15·16·17대 국회 시절 홍준표 대표와 의정활동을 같이 해봤다. 홍 대표와 코드를 맞춰본 셈이다. 홍 대표는 이른바 올드보이들에 대해 “우리당에서 가장 대여 투쟁력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은 분”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한국당 경남지사 후보가 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4월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경남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서 ‘올드보이’라는 여론의 지적을 의식한 듯 “경남의 오랜 친구 올드보이 김태호”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올드보이를 오랜 친구라는 이름으로 치환한 것이다.
이인제 전 의원도 올드보이의 장점인 ‘경험’으로 포장을 둘렀다. 이 전 의원은 4월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랜 정치 경험에서 단련된 역량을 다 바쳐 반드시 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 젊은 나이(46세)에 민선 경기도지사로 일한 경험이 있고 당시의 혁신과 도전은 모두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노동부 장관 시절에는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고용보험 제도를 혁명적으로 도입해 성공시켰다”며 자신의 행정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4월 4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단순히 나이 먹었다고 해서 노인을 폐기처분 한다든지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방송에) 질 떨어지는 패널들이 마구잡이로 이야기할 때 듣기 거북했다”고 말했다. 이어 홍 사무총장은 “노인은 참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분들이다. 나에게는 부모고 국가적으로는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이 노인이다. 그 노인이라는 부분을 나이 먹었다 해서 이렇게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며 ‘올드보이론’에 대해 노인 폄하라는 프레임으로 맞섰다.
그렇지만 당 내에서조차 이번 공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충남지사 공천과 관련, 한국당 당원 20여 명은 3월 24일 공천관리위원장인 홍문표 사무총장 지역구 사무실을 찾아 “이인제 전 최고위원에 대한 전략공천은 충남지역 당 지지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불미스런 행동으로 도지사 직을 사퇴하면서 민주당 지지세에 큰 구멍이 뚫렸는데도 한국당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올드보이를 공천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문수 전 지사에 대한 당내 여론도 좋지 않다. 경기지사를 지내고 지난 총선에서 대구를 선택, 출마했다가 낙선한 전력이 있는 김 전 지사가 과연 서울시장 후보로 적합하냐는 회의론이 거세게 나온다. 게다가 김 전 지사는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행사에서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예전에 있던 표까지 다 잃었다’는 비판도 나오는 중이다. 보수층은 물론, 중도 성향 유권자들까지 잡아야 승리할 수 있는 판에 최근 몇 년간 김 전 지사의 행동을 볼 때 중도 표심 획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전 지사의 서울시장 후보 내정설이 나온 이후에도 서울시내 현역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이미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을 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후문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한국당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정도만 한국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이 차고 넘칠 뿐 다른 지역은 정말 없어도 너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극심한 후보난에 빠져있다”며 “이러다보니 서울이나 충남에서 당원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올드보이 공천이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