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처음으로 ‘국민 예능’이라는 호칭을 얻은 프로그램이다. 2006년 시작해 3월 31일 막을 내리기까지 총 563회가 방송됐다. 예능프로그램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아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방송가에서는 ‘무한도전’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기대의 시선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 ‘무한도전’ DNA 장착한 김태호 PD
‘무한도전’이 13년간 방송할 수 있던 원동력은 프로그램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인 김태호 PD라는 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출연진의 허술한 도전으로 웃음을 만들다가도, 때때로 공익성 짙은 기획으로 사회적인 환기의 기능을 갖춘 것은 ‘무한도전’이 오래 사랑받은 정체성이다. 이를 이루고 가능케 이끈 핵심 인물이 바로 김태호 PD다.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홈페이지
그는 ‘삼시세끼’와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현재 예능 판도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tvN 나영석 PD와 더불어 국내 방송가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KBS 출신으로 ‘1박2일’ 등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일찌감치 CJ E&M으로 이적한 나 PD는 대기업 계열 방송사의 막강한 자본력에 힘입어 대규모 물량 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해왔다. 반면 김태호 PD는 총파업과 경영진의 압력 등 여러 어려움이 반복된 MBC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꾸준히 흥행 콘텐츠를 내놨다.
때문에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성립하고 13년간 인기를 유지하도록 이끈 김태호 PD의 향후 역할에 대한 궁금증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지, ‘무한도전’이 향후 시리즈로 제작될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앞날을 마블 유니버스에서 찾고 싶다고 밝혔다. 할리우드의 대표 스튜디오이자 ‘아이언맨’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등 히어로 시리즈를 쉼 없이 내놓으면서 전세계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DNA를 추구하고 싶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김태호 PD는 최근 ‘무한도전’을 마무리하며 가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영화 제작사 마블스튜디오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는데 마블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크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마블 시리즈는 각각의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이 있고, 이런 영화들이 모두 공통된 큰 세계관(유니버스)으로 연결된다. 그런 마블의 세계관을 보면서 후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집마다 각자가 연출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통일된 큰 틀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라고 짚었다.
마블스튜디오는 미국의 양대 코믹북인 마블코믹스로 출발한 영화 스튜디오다. 2008년 ‘아이언맨’ 1편을 내놓은 시기를 기점으로 히어로 시리즈를 본격 제작했고 올해로 꼬박 10년째를 맞았다. 최근 개봉해 어김없이 흥행에 성공한 ‘블랙팬서’까지 더해, 10년간 내놓은 모든 시리즈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개별 시리즈가 저마다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면서도,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방식은 마블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통한다. 각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연합해 등장하는 ‘어벤져스’ 시리즈는 마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있고, 주요 출연진이 각각의 시리즈를 넘나드는 데다, 유머와 인류애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마블의 특징. 이에 더해 국내서도 막강한 팬덤을 구축하는 점 역시 ‘무한도전’과 닮았다.
사진 제공 = MBC
# 미래에 대한 고민…가을 개편 기약
‘무한도전’이 막을 내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김태호 PD가 멈추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연출자를 바꿔 그대로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방식이 유력했지만 유재석 등 멤버들은 프로그램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눈 끝에 다 같이 빠지면서 시즌1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김태호 PD는 오랫동안 자신의 ‘색깔’에 대해 고민해왔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무한도전’의 색깔을 지켜가는 일이 힘든 상황이 됐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자괴감까지 왔다”며 “‘무한도전’의 색깔이 곧 나의 색깔이라 앞으로는 그 색깔을 채우는데 시간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방송 콘텐츠 가운데 ‘최고의 IP(지적재산권)’라고 평가받는 프로그램이지만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선거 독려 등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획은 크게 반응을 얻었지만 한편에서는 ‘계몽주의적이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지금 김태호 PD와 출연진이 꿈꾸는 ‘무한도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와 출연진은 “가을개편에 돌아오자”고 약속한 상태다. 물론 지금으로선 ‘확답’이 아닌 ‘약속’인 상황. 김태호 PD는 “멤버들도 그렇고 저도 돌아오면 물론 좋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가 관성으로 ‘무한도전’을 만들던 게 있다. 그래서 더욱 그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멈추게 됐다”며 “다시 돌아온다면 탈탈 털렸던 것들을 다시 채울 총알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때문에 멤버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돌아오긴 돌아오되, 채워지면 돌아온다는 약속이다. ‘무한도전’의 모든 스태프는 6일 포상휴가를 떠났다. ‘무한도전’의 뒤를 이어 이수근과 은지원이 진행자로 나선 음악 예능프로그램 ‘뮤직Q’가 이달 말 방송을 시작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