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사과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2008년 가을, 한 방송 프로그램 회식장소에 그가 있었다. 그리고 한 명도 아닌 두 명에게 성추행을 범하고 말았다. 그렇게 김생민은 미투 열풍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이를 바라보는 방송 관계자들의 심경도 착잡하다. 누군가는 안타까워했고 또 누군가는 분노했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92년 KBS 특채 개그맨이 되며 연예계에 데뷔한 김생민은 KBS ‘연예가중계’에 20년 이상 출연하며 대표적인 연예리포터가 됐다.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도 20년 이상 출연해 왔으며 SBS ‘동물농장’에도 15년 이상 출연했다. 이렇게 몇몇 프로그램에 장기간 고정 출연하며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절약’ 이미지를 더해 지난해 비로소 스타덤에 올랐다. ‘스튜핏’ ‘그뤠잇’ 등의 유행어까지 만들어낸 ‘제2의 전성기’는 안타깝게도 5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10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 회식에서 여성 제작진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한 매체를 통해 드러난 것. 당시 두 건의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지만 김생민은 한 건에 대해서만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 당시 사과받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가 최근 그 사실을 공개한 것. 김생민은 뒤늦게 두 번째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했지만 언론 보도까진 막지 못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스태프 성추행 사건이 당시 김생민의 방송 활동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김생민의 첫 번째 전성기는 2007년부터 2008년이었다. ‘성실’한 이미지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뭔가 한 방이 부족했던 그가 비로소 ‘절약’이라는 확실한 이미지를 추가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2007년 2월 KBS 2TV 설 특집 ‘경제 비타민’에 출연한 김생민은 ‘10억 만들기’ 비법을 공개했는데 10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면서 양복 세 벌과 구두 세 켤레로 버틴 사연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김생민이 절약의 아이콘이 된 순간이었다. 2008년 6월에는 ‘만만한 재테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당시 사건이 김생민의 방송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성추행 사건을 최소한 그 프로그램 제작진은 알았고 한 건은 김생민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도록 하는 조치까지 이뤄졌다. 리포터와 전문 패널로 연예인보다는 방송인에 가까웠던 그에겐 당시 사건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태프와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게 방송인의 불문율인데 그걸 깬 것이기도 했다. 절약의 아이콘, 재테크의 달인 등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던 김생민의 행보가 다시 주춤해졌던 데에는 아마도 당시 사건이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닌가 싶다.”
2008년 가을에 생긴 일이라는 부분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당시는 김생민이 절약과 재테크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연예계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다. 2008년 9월과 10월에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 그리고 최진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방송계 전체가 우울했던 시기에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사고가 발생한 프로그램으로는 그가 장기간 고정으로 출연했던 몇몇 프로그램이 거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예가중계’ ‘출발 비디오 여행’ ‘동물농장’ 등이다. 이 가운데 몇몇 프로그램이 당시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아직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에서 벌어진 일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선 “적어도 ‘동물농장’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방송관계자의 설명이다.
“그즈음 방송가는 분위기가 다소 암울했었다. 안재환과 최진실의 사망 소식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생민이 당시 고정 출연 중인 프로그램들은 더욱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예가중계’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인 만큼 그런 소식들을 거듭 방송에서 다뤄야 했다. ‘출발 비디오 여행’도 영화 프로그램으로 그런 분위기와 무관할 순 없었다. 그나마 ‘동물농장’은 연예 정보와 무관한 프로그램지만 정선희가 MC였다. 결국 정선희는 남편 안재환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출연을 잠정 중단했었다. 따라서 당시 분위기와 직접 연결된 프로그램이었다. 부디 ‘동물농장’ 회식자리에서 생긴 일은 아니길 바란다. 그즈음 ‘동물농장’ 회식이 있었다면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자리에서 김생민의 성추행 사건이 두 건이나 벌어진 것은 부디 아니었으면 좋겠다.”
김생민과 가깝게 지내던 연예인들은 사건이 회식 자리에서 벌어졌다는 부분이 가장 놀랍다는 반응이다. 주위에서 김생민은 ‘회식 불참러’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회식자리에 매번 불참했던 김생민은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사유가 있는 회식에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까지 불참했다고 한다. 그가 출연했던 한 프로그램 관계자의 말이다.
“김생민은 우리 프로그램 회식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들었다. 그냥 우리끼리는 워낙 애처가라 빨리 집에 가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마 10년 전 그 사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사건으로 인해 회식에 대한 조심성이 강하게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얘길 하는 게 괜히 편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때 회식에서 큰 실수를 하고 이후 철저히 조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보인다. 마치 그가 회식자리나 술자리를 좋아하고 그런 과정에서 유사한 일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최소한 그렇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