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베터(Change better). 사진=이세윤 PD
“2년마다 한 번씩 전월세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나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600만 노동자, 그 가족까지 계산하면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던 전 민주당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국민과 국민을 대의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간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2017년 발표 기준 국회의원 299명의 1인당 평균 순자산은 37억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2억 9500만 원에 불과했다. 1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부의 불평등’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분배 상위 1% 기준점은 순자산 9억 9000만 원이다. 현 국회의원은 상위 1%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셈이다. 정치가 부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 전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물론 부자라고 해서 서민을 위한 공감능력이 꼭 떨어진다거나, 서민을 위한 법안, 정책을 펼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그 다급성이나 실체적 위기를 피부로 실감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최상위 부자로만 이뤄진 국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치자금법을 문제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후원회’ 관련 법안이 가장 큰 적폐로 꼽힌다.
현역 국회의원은 1억 5000만 원의 후원회비를 받을 수 있고,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후원회비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정치에 입문한 신인이나 정치지망생, 낙선한 국회의원은 선거에 출마해 예비후보자가 되기 전까지는 후원회를 꾸릴 수 없다.
정치 지망생이나 낙선한 정치인 등 직업 정치인에게 어떤 후원도 받을 수 없게 막아뒀기 때문에 직업 정치인이 한 번 낙선하면 재기의 희망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19대 국회에서 맘에 든 정책과 법안을 낸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낙선하면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셈이다. 예를 들어 19대 국회에서 김광진 전 의원의 국방위 활동이나, 정두언 전 의원의 산업자원위 활동을 좋게 보고 한 번 낙선했어도 다시 도전하라는 의미에서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지난 총선에서 낙마한 전직 의원은 “가난한 누군가가 선한 의지를 갖고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 해도 4년간 빚내서 버텨야 하고 출마했다 한 번 떨어지면 당선되기 전까지 8년간 아무런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은 재산이 많거나 자격증이 있는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원회를 통해 건전한 정치인을 키우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을 치른다는 우려도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알리고 후원을 받아 정치를 하는 자생적 환경을 만들지 않고 자기 돈 내면서 활동하고 당선되면 당연히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정치를 지망하는 모든 사람을 양지로 끌어내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후원회를 만들어서 생기는 부작용은 투명성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든 후원금을 후원회 계좌로 받되 이 돈을 카드로만 결제하고 그 내역을 모두 공개하는 등의 조치만 있으면 된다는 의견이다. 즉 지금처럼 완전히 닫아 놓을 게 아니라 입구는 열어주고 출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기초의원, 광역의원 후원회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기초, 광역의원은 지방자치제도가 강화되면서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2009년 자료를 보면 15만 명 이상의 광역의원 선거구는 18개인 반면, 12만 명 이하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13개로 광역의원이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인구를 대표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광역의원인 서울시의원들이 모여 감사하고 결정하는 서울시 예산은 30조에 달한다. 하지만 현행 법안은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즉 시, 도, 군, 구 의원은 후원회를 만들 수 없다. 지역유지의 ‘훈장’으로 전락한 이유 중에 하나도 후원회 문제를 꼽는다.
한 야당 광역의원 예비후보자는 “후원회가 없는 기초, 광역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겸직 금지 조항이 없다. 차라리 겸직 금지를 엄격하게 적용해 의정활동에 매진하게 하고 후원회를 조직할 수 있게 해달라”며 “일반적으로는 광역의원이 국회의원보다 적은 수를 대표하니까 후원회 규모는 국회의원의 반 정도인 7500만 원 정도, 기초의원은 그것보다 약 70% 수준인 5000만 원선에서 조직하는 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금의 정치자금법이 개선되기 어려운 건 결국 자기 ‘밥그릇’이 달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지망생까지 모두 후원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주장에 민주당 한 관계자는 “그런 방식으로 정치자금법이 고쳐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겠지만 후원회비를 모두 받을 수 있다면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는 다른 당 지역위원장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다. 기초, 광역의원도 후원회비를 받을 수 있게 하면 또 다른 도전자를 기르게 된다. 그런 걸 현역의원이 받을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 지망생은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여당 성향 전직 의원은 “만약 정치지망생, 낙선 정치인 등 모든 정치인이 후원회비를 받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1억 4000만 원의 세비, 9명의 보좌진, 선거 해 3억 원의 후원금 등에 비교해볼 때 현재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를 5도에서 10도 정도 조절하는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 정도 양보만으로도 우리나라 정치가 훨씬 깨끗해지고 없는 사람도 정치를 해 볼 수 있는 기본적인 토양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