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2008년 촛불시위를 이끌던 국민대책위 3인. 좌로 부터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회 위원장,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주제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백서팀장.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 무효화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 마련을 위한 서명 운동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이 확산됐다.
당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약했던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10년 전을 이렇게 되뇌였다.
“미국을 상전으로 여기고 필요 이상의 아부를 한 결과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실망하는 국민들의 분위기를 틈타서 경제를 나아지게 하겠다는 천박한 논리를 앞세워 급조된 정권이다. 국민 생명에 대한 고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어야 되는데 미국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반국민적 철학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본다”
당시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았던 박원석 전 의원 또한 “국민 건강과 직결된 민감한 통상 문제를 아무런 여론 조사 없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선물로 주다시피 했다. 검역주권을 포기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2008년 6월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위 조직팀장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게 5월 2일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안진걸 위원장은 “시민사회보다 먼저 중‧고등학생들과 네티즌들이 청계광장에 나왔다. 기존 시민단체나 노조원들도 보이지 않았고 깃발도 하나도 없었다.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회상했다.
5월 2일 집회 양상을 본 시민단체들은 광우병 대책회의를 발족했다. 주제준 위원장은 “국민들 분노가 폭발되는 양상이고 이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시민단체 차원의 힘이 필요하겠다는 얘기가 나와 광우병 대책회의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2008년 촛불집회엔 이처럼 특별한 점이 있었다. 주제준 위원장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거대한 촛불의 움직임은 민주노총이나 학생조직 등 조직된 대중이 주도했다“라며 ”시민들은 조직된 대오에 합류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2008년엔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왔다. 청소년을 보고 대학생이 나오고 이를 안타까워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이 나왔다. 그러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인원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걸친 협상 끝에 결국 이명박 정부는 ‘30개 월 미만’ 쇠고기 수입 재개가 결정했다. 주제준 위원장은 “촛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명박 정부는 깜짝 놀라 6월 말에 재협상을 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할 무렵 대책회의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이 때 일부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폭력 시위로 변질됐단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진걸 위원장은 “6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이명박 정부는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고 계속 명박산성 방식으로 국민들을 차단하고 억압했다“라며 ”이에 일부 시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한 것이지, 폭력적으로 흘렀다고 보기엔 부적절하다. 오히려 정권이 폭력 시위를 유도하고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원석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 2008년 7월 조계사에 은거하던 시절. 당시 그는 경찰 수배를 받고 있던 처지였다. 사진=연합뉴스
박원석 전 의원은 2008년 촛불집회가 오래토록 지속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정치적 환경을 꼽았다. 그는 “당시엔 선거도 없었고 야당 의석도 80석 밖에 안 됐다. 2016년 촛불집회처럼 정치적 전망이 보이면 거칠어지지 않는다. 전망이 보이지 않고 공권력은 탄압하니 거리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2008년 촛불집회가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진걸 위원장은 “2008년 촛불집회는 전혀 실패한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쇠고기 수입을 할 수 있게 했고 나아가 대운하를 저지시켰다. 특히 반민주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된다는 것에 경종을 울렸다고 본다. 절반의 승리를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위원장은 “그래서 2008년 5월부터 2017년 5월 조기대선 때까지 9년 촛불혁명기라고 평가한다. 잠시 소강됐던 촛불이 민주주의 후퇴, 인권 탄압, 민생 악화, 남북관계 파탄 낸 9년의 세월에 2016년에 다시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2016년 촛불집회를 2008년 촛불집회에 빗대 “선동당해서 일어난 결과”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주제준 위원장은 “7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일부의 거짓 선동으로 집회를 열 만큼 성숙도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육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에 일부에선 광우병이 유언비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안진걸 위원장은 “2008년 촛불집회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쇠고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100% 안전하다고 보진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발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검역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산 쇠고기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검역 체계가 강화됐기 때문에 걱정을 덜하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게 됐다. 민생고나 양극화에 비쳐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한 “사전 예방을 위해 검역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준 위원장 또한 “인간 광우병은 사후에 뇌를 열어 확인 된다. 프리온 질환과 매우 흡사한 증상을 보인다. 김현권 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대규모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 뒤 프리온 질환 의심 진단 건수 또한 급증했다. 검증 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위험이 과장됐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안진걸 위원장은 “시민단체에 상근하면서 기소될 수 있겠다고 각오한 나 같은 사람은 상관이 없지만 국민 건강과 가족 생명이 걱정 돼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의 깔끔한 명예 회복과 사면 복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상표 전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생전 박상표 전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10년 전 광우병 파동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꼭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고 박상표 전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다. 박 전 정책국장은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 당시 수의학 전문가로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적극 지적해 화제를 모았다. 박 전 정책국장은 촛불집회와 TV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 일각에선 ‘촛불 의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4년 1월 19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호텔 객실에서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적힌 수첩이 발견 돼, 박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봤다. 박 전 정책국장의 가족과 지인 등 또한 경찰 조사에서 박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유족과 협의해 부검은 별도로 진행하지 않았다. 박 전 정책국장의 한 측근은 “그는 광우병이나 FTA 반대에 큰 기여를 했다. 단순한 수의사가 아니라 활동가였다. 특히 광우병 위험과 관련해 해외 저널을 뒤져 가며 과학적 논리를 마련했다”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쳤던 것으로 안다. 지병이 있었고 동물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막판엔 우울증도 왔었던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생을 마감해 매우 안타깝다. 박 국장 기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
[언더커버] 광우병 파동·2008 촛불시위 10주년 2-2008년의 촛불 그리고 2016년의 촛불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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