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구치소 출구 전략이라는 ‘사면’을 논하기에 앞서, 지난 6일 1심 결과가 나온 박 전 대통령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2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 18개 중 16개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며, 180억 원의 벌금(미납 시 금고 3년)도 함께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재산이 50억 원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25~26년은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정원 특활비 수수 의혹으로 추가 기소됐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부터 받을 양형을 모두 합치면 30년은 가볍게 넘길 것이라는 게 법원 내 중론이다.
한 차례 구속 기간이 연장될 때부터 “재판을 믿을 수 없다”며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태극기 부대의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은 1심 선고 후에도 일절 외부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고 직후 유영하 변호사(사법연수원 24기)를 접견한 자리에서는 “선고 결과에 너무 대응하지 말라”는 당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나선 것.
법조계에서는 ‘훌륭한 결정’이라는 평이 나온다. 사면의 가장 큰 필수 조건은 형 확정이지, 일부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 지금은 지지자들을 독려하기보다는 재판을 먼저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확률이 99%라는 점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에 11일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항소를 하게 된 까닭은 삼성그룹 청탁에 대해 법원이 무죄로 본 대목 때문.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승계작업’ 청탁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후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삼성 사건을 수사하면서 “승계 작업에 대한 대가성 뇌물이었다”고 주장해 온 검찰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실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양형(징역 24년)에 대해서는 만족해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리 오해 및 사실오인을 주장하며 항소할 방침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박 전 대통령 측 국선 변호인도 선고 직후 취재진 앞에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박 전 대통령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 전 대통령이 항소를 할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다툴 소지는 있을 수 있지만, 촛불집회와 탄핵 과정에서 이미 유죄로 결론은 정해진 재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항소도 하지 않고 일체 재판에 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은 최순실 씨가 만든 재단으로 기업들이 돈을 건넨 제3자 뇌물 사건이 핵심”이라며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탄핵까지 된 마당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양형이든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냥 수감 생활을 하며 동정 여론을 최대한 만들어내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 역시 “검찰 입장에서 이런 사건을 1심, 2심만 하고 마무리할 수는 없지 않나. 3심 결과까지 1년은 시간이 더 필요하고, 국정원 특활비 사건 재판까지 감안하면 형 확정까지 2년은 족히 지나야 하기 때문에 지금 사면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정부인 만큼 정권 말미 결자해지(結者解之 : 매듭을 묶은 자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사자성어)의 자세로 사면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자연스레 법조계 일각에서는 다음 대선이 치러지기 전인 2021년~2022년 초 사이에 청와대와 여당을 중심으로 ‘사면론’이 제기될 상황을 만드는 게 박 전 대통령에게 가장 유리한 포석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때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낮을수록,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얘기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징역을 얼마만큼 받느냐보다도, 지금 취한 그대로 재판에 계속 불응하며 정치인으로 대응하는 게 낫다”며 “항소를 포기하고 아무런 대응 없이 법원의 재판을 마무리 지을 때 동정론이 더 확산될 것이고 다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차기 여당 대선 후보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며 대통합을 제안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때 차기 여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낮을수록,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확보하려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얘기가 나오자,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 전 대통령만큼 사면을 논하기에 애매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 특히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방식이 박 전 대통령보다 ‘하수’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법조인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이 전 대통령의 ‘장외 투쟁’이다. 정치적인 지지자들조차 없는 이 전 대통령이 쓸데없이 여론전을 벌인다는 비판이다.
실제 이 전 대통령은 기소가 결정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검찰의 기소와 수사결과 발표는 본인들이 그려낸 가공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초법적인 신상털기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결과”라며 장문의 비판 글을 올렸다. 이 전 대통령은 “저를 겨냥한 수사가 10개월 이상 계속됐다. 댓글 관련 수사로 조사받은 군인과 국정원 직원 200여 명을 제외하고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 무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며 “가히 ‘무술옥사(戊戌獄事)’라 할 만하다”고 맹비난했다. 올해가 무술년인 점을 감안, 무술년에 벌어진 옥사라는 것이다.
검찰의 옥중수사에 불응했던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구체적으로 혐의도 부인했다. 그는 “다스는 가족회사였다”며 자신에 대한 수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다. 국민 여러분께서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대통령의 전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검찰은 못 믿겠고, 법원에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어전선 구축에도 열심이다. 110억 원대 뇌물을 수수하고 35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방어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 측 대리인 강훈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는 오덕현 변호사(27기)와 홍경표 변호사(37기) 등 2명을 새로 선임했다. 향후 3명을 추가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럴 경우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기존 선임계를 제출한 변호사들까지 합쳐 10명을 넘게 된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명백히 드러났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소환 1주일 만에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했다. 처음 구속영장 실질심사 일정이 잡힌 것은 22일 오전 10시 30분. 문제는 이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 불응하겠다. 대신 변호인은 참석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하면서부터였다.
통상 영장실질심사 불출석은 ‘죄를 인정한다’ 혹은 ‘달게 벌을 받겠다’는 의사로 해석된다. 다투지 않겠다는 의사로 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피의자는 안 나오는데, 변호인단은 출석하겠다는, 유례없는 제안을 법원에 내놨다. 그동안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거부하면 서류조사만으로 구속 여부가 결정된 경우는 있었지만 피의자가 불출석한 채 검찰과 변호인만 참석해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전례는 없었다. 이에 법원과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측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고, 결국 법원은 22일 예정됐던 영장실질심사 일정을 포기했다. 대신 서류만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결정했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현직 검사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전략적 대응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건“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자기의 주머니로 돈을 받아먹은 질 나쁜 범죄이지 않냐. 그런데 변호인만 나가서 다툰다고 했을 때 정말 ‘패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으로 대응할 명분이 없는데, 그렇게 보여주려는 ‘액션’만 있다는 것. 그는 ”지금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게 처벌받는 모습을 보여야 할 사람은 박 전 대통령보다는 이 전 대통령인데,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이 하듯 법정에서 뒤집어보겠다는 전략을 선택한 것 같다“며 ”본인의 추악한 모습이 다투면 다툴수록 더 드러날 텐데 왜 재판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 역시 ”이 전 대통령이 다툰다고 하면, 재판에 과거 측근들이 증인으로 나와야 하고, 이때 불리한 진술이 나올수 밖에 없다. 그럴수록 이 전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이 무너지기만 한다“며 ”빠른 사면을 원한다면 박 전 대통령처럼 변호인단을 모두 사임하게 하고 국선 변호인의 조력도 거부하는 재판 불응을 선택하고, 중형이 내려질 양형을 달게 받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사면 시점은 이 전 대통령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앞선 법무부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은 것은 개인 범죄 혐의 아니냐“며 ”문재인 정부 하에 사면해 주기에는 구속 기간도 너무 짧고 범죄 혐의도 나쁘다“고 평가했다. 앞선 검사 역시 ”이 전 대통령이 빠르게 사면되고 싶다면 다음 정권이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라야 한다“며 ”지금 여당이 다시 집권할 경우 이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보다 더 오래 옥살이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