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천원 대신 자사주 1천주로 지급하는 실수에 이어 일부 직원이 잘못 배당된 주식 중 500만주 가량을 급히 팔아치워 주가급락 사태를 초래하는 등 증권사 직원으로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삼성증권 지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증권 사태가 발생한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삼성증권을 규제하고 공매도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제기됐다. 해당 청원에는 지난 11일 오후 기준 20만 명 이상 참여했다.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가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나 증권사들은 ‘무차입공매도’는 법으로 금지돼 있으며 시스템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해왔지만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가 ‘무차입공매도’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매도란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나중에 들어올 주식을 미리 남에게 빌려 현재가로 매도하는 ‘차입공매도’와 없는 주식, 이른바 ‘유령주식’을 내다파는 ‘무차입공매도’로 나눌 수 있는데, ‘무차입공매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180조에는 “누구든지 증권시장에서 상장증권에 대해 공매도를 하거나 그 위탁 또는 수탁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차입공매도의 경우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르는 경우에는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차입공매도는 주식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일정 부분 순기능을 발휘한다.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적정 가격을 찾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를 활성화시키는가 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성을 미리 차단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 후 들어올 주식이 있는 투자자가 한 달 후 주식이 들어온 후 매도한다면 손해를 볼 것 같아 현재 가격으로 매도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식을 빌려 매도하고 한 달 후 들어온 주식으로 돌려주면 된다. 이를 대차·대주거래라고도 하는데, 대차·대주한 투자자는 일정한 수수료(대차·대주료)를 지불해야 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6월 발표한 보고서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에서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가격효율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비이성적인 주가 버블 형성을 차단함으로써 주식시장의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확대될 가능성을 억제한다”고 공매도의 필요성과 순기능을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거래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 확실한 현물이나 신용이 있어야 가능한데, 기관투자자들과 달리 개인투자자들은 이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공매도는 법적으로 실재하는 주식을 빌려서 하는 차입공매도이며 일반적으로 대차거래와 대주거래를 공매도로 본다“며 ”그러나 개미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주거래는 물량도 없고 성행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공매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개인과 기관의 불평등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며 ”개인들은 아무래도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대형 기관들에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활용할 수 없으며 증권사가 개인에게 빌려주는 종목 수도 너무 작고, 물량도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의 공매도 종합포털에서 ‘투자자별 공매도 거래 현황’을 확인한 결과, 지난 10일 기준 총 공매도 거래대금은 4341억여 원이었다. 이 가운데 기관투자자가 960억 원, 외국인투자자가 3355억 원을 차지한 반면 개인투자자의 거래대금은 26억 원에 불과했다. 거래량으로 봤을 때도 총거래량 1213만 2462주 가운데 개인투자자의 거래량은 3만 8322주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전체 주식시장의 상황이 좋다 해도 공매도가 많은 종목은 단기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하락장에서 공매도는 하락 규모를 더 키우기도 한다. 황 연구위원은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형성된 이유에 대해 “공매도의 확대가 일반적으로 주가의 하락을 가져오고, 주식시장이 폭락의 공포감에 압도될 때 공매도는 주가 하락의 규모를 증폭시켜 시장에 불필요한 변동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주식시장에서는 이른바 ‘공매도세력’의 투기 때문에 회사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기업 오너까지 나서 공매도를 규탄할 정도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13년 4월, “공매도 세력 때문에 불필요하게 막대한 회사 자금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되고 있다”며 “회사 발전을 위해 빠르면 5월, 늦으면 6월 말 셀트리온 지분을 다국적 제약회사에 매각할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코스닥 대장주였던 셀트리온은 공매도를 피하고자 코스닥 시장에서 코스피로 이전해야 한다는 소액주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지난 2월 9일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지만 공매도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벽이 높은 공매도 거래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삼성증권 사고가 ‘공매도 논란’으로 비화된 데는 우려를 나타낸다. 금융투자업계 한 전문가는 “삼성증권 사태의 논란은 증권사가 차입공매도가 아니라 무차입으로 공매도할 수 있다는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공매도가 개미들에게 벽이 높아 불만이 많았던 만큼, 이번 사태가 ‘공매도 논란’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삼성증권 사태의 본질은 공매도 문제와 다르기 때문에 공매도 폐지 주장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사태의 원인을 공매도 제도에 돌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공매도가 가진 여러 효용성이 있어 무조건 폐지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또한 “이번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발행되고 거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공매도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과 본질을 흐릴 수 있으며 공매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팻핑거’ 사례 살펴보니…키 한번 잘못 눌러 증권사 파산까지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는 삼성증권 사태의 원인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직원과 시스템 두 가지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람이 하는 실수는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것에 대비해 시스템을 보다 완벽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삼성증권 사태의 원인을 ‘팻핑거(fat-finger) 오류’로 인한 사고라고 본다. 팻 핑거란 증권 매매 시 주문 정보를 실수로 입력하는 것을 뜻하는데, 증권을 매매하는 사람의 손가락이 자판보다 굵어 가격 또는 주문량을 실수로 입력한다는 것. 팻핑거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0년 5월 미국의 한 투자은행 직원이 100만 단위의 거래를 10억 단위의 거래로 잘못 누른 사건이 꼽힌다. 이 실수는 당시 15분 사이 다우존스평균주가가 9.2% 폭락하는 결과를 낳으며 ‘플래시 크래시’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국내에서는 팻핑거 오류로 증권사가 파산까지 한 사례가 있다. 2013년 12월 한맥투자증권의 직원이 실수로 이자율을 ‘잔여일/365’로 적는 대신 ‘잔여일/0’으로 적은 것이다. 이자율 입력이 잘못된 탓에 거래시스템은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수·매도 주문을 냈다. 이 사건으로 한맥투자증권은 462억 원의 손실을 봤고, 결국 문을 닫았다. 케이프투자증권에서도 최근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지난 2월 매수·매도 주문 착오로 잘못 보낸 거래 주문이 체결되며 62억 원의 손실을 봤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사고 이후 자체적으로 심의와 감사를 실시해 현재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한편, 삼성증권은 사건 이후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해 피해자 구제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려왔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사고발생일인 6일 이후 9일 오후 4시까지 총 180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