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곤지암’(감독 정범식·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개봉하기 전부터 시끌벅적 시선을 끈 작품이다. 실제 지명을 영화 제목으로 쓴 데다 극의 배경인 곤지암 정신병원 역시 한때 운영됐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소유자가 영화 개봉 전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듯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되고부터는 전혀 새로운 국면에서 화제가 이어진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터부시되어 온 공포장르의 성과가 단연 눈길을 끄는 가운데 ‘페이크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한 영화를 향해 특히 10~20대 관객이 열띤 반응을 내놓고 있다. 감독이 영화 곳곳에 숨겨놓은 정치적 함의가 만들어내는 궁금증은 관객의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 ‘유튜브 세대’…10·20대 취향 저격
‘곤지암’은 3월 28일 개봉 첫날 26만 관객 동원을 시작으로 첫 주말에 약 100만 관객을 모으면서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4월 12일까지 약 250만 관객을 동원한 상태. 한동안 지속된 극장가 비수기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시키는 동시에 몇 년간 주춤했던 한국 공포영화의 부활까지 알리고 있다. 역대 3월 개봉 한국영화 최다 관객 기록까지 세웠다. 이런 ‘곤지암’ 흥행의 주축은 1020세대다. 개봉 첫날부터 10~20대 비중이 전체 관객 가운데 72.7%(CGV리서치센터)로 나타났다. 압도적인 점유율이다. 이런 분위기는 상영 내내 이어졌다.
물론 공포영화가 대개 젊은 층에 어필하지만 ‘곤지암’은 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배급사와 제작진은 이를 ‘유튜브 세대의 효과’로 보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새로우면서도 기발한 영상을 즐기는 것은 물론 직접 다양한 영상을 제작해 공유하는 유튜브 세대의 취향을 정확히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곤지암’ 마케팅을 담당하는 영화사 하늘의 관계자는 “1인 미디어, 1인 방송처럼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10~20대 취향과 영화의 분위기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개봉 전 모니터 시사회를 통해서도 이들 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고, 그에 맞춰 SNS 등을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가장 소름끼치는 장소’로 꼽힌 곤지암 정신병원을 소재로 한다. 지금은 폐업해 그 형체만 남은 곤지암 정신병원은 CNN 방송 뒤 공포체험의 ‘성지’로 유명세를 더했다. 영화는 이곳을 찾은 젊은이들이 카메라로 온라인 생중계를 하면서 겪는 극한의 공포를 담았다. 실제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영상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 느낌 그대로 극영화가 탄생한 셈이다.
가짜 다큐멘터리 기법인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활용한 점도 ‘곤지암’을 향한 10~20대의 관심을 높인 배경이다. 엄연한 설정이지만 마치 사실처럼 연출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만들어냈다.
이를 위해 ‘곤지암’ 출연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화의 90% 이상을 촬영했다. 극의 주인공인 배우의 눈높이에서 촬영되는 이런 방식은 관객이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여주인공 박지현은 “배우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보통 두세 대의 카메라를 장착하고 촬영을 진행했고 이렇게 찍은 영상이 그대로 영화에 쓰였다”며 “‘곤지암’ 촬영장을 떠올리면 마치 군대에 다녀온 것처럼, 전우애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 정치적 함의…‘곤지암’을 푸는 열쇠
감독이 곳곳에 숨겨놓은 메시지는 ‘곤지암’ 흥행의 또 다른 동력이다. 감독의 의도로 인해 여러 곳에 포진한 ‘이스터 에그’(숨은 메시지)를 향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단순한 공포영화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선 자주 등장하고, 최근에는 한국영화 제작진도 적극 활용하는 이런 ‘이스터 에그’ 방식은 마치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이런 반응은 결국 영화를 향한 입소문으로 직결된다.
‘곤지암’의 배경인 정신병원은 개원일은 ‘5월 16일’, 폐업일은 ‘10월 26일’로 설명된다. 얼핏 지나칠 수 있지만 두 개의 날짜는 우리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날, 그리고 세상을 뜬 날이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두 날짜가 작품을 상징하는 데 쓰였다.
비슷한 의도는 더 있다. 영화에서는 7명의 주인공이 폐쇄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내부를 실시간으로 촬영해 유튜브로 생중계한다. 결말에 이르러 영화 속 유튜브에 표시되는 시청자 수는 ‘503명’. 이 숫자 역시 언뜻 그 의미가 떠오르지 않지만 관객은 이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찾아내 갖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차용하거나 박정희·박근혜 정부를 ‘이스터 에그’로 활용해 언급하는 이유는 정범식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설정이다.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그 시대를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시대상의 공포가 영화의 초석”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영화에서 공포의 방으로 묘사된 ‘402호’를 두고도 여러 반응을 내놓는다. 이미 각종 영화 게시판에서는 관련 내용이 활발히 오가는 가운데 402호에 물이 가득 찬 설정, 교복을 입은 학생이 등장하면서 ‘특정 사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