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유한회사로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내 첫 애플스토어가 개장했다. 최준필 기자
글로벌 회사 중 IT나 유통업체 등 많은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 대부분이 유한회사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IT기업으로는 애플, 구글, 화웨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알리바바, 넷플릭스 등이 있고, 명품의류 기업에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구찌 등이, 제조 및 유통기업에는 다이슨, 옥시레킷벤키저, 이케아 등이 있다.
유한회사는 소규모 회사가 기업 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관리절차를 간이화한 기업 형태다. 주식회사와 운영 방식은 비슷하지만 보다 폐쇄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 유한회사는 회사가 파산할 경우 출자한 금액만큼의 유한 책임만 지면 된다.
국세청이 작성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7년 유한회사 수는 2만 9279개다. 2016년보다 2400개 이상 증가했다. 유한회사는 2012년 상법개정안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1년 5583개였던 유한회사는 2012년 1만 8818개로 3배가량 증가했다. 루이비통, 구찌, 옥시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 시기를 전후해 기업 형태를 유한회사로 전환하고 2012년 이후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은 거의 다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됐다.
기업이 형태를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변경하려면 기존의 회사를 청산하고 새롭게 유한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배당금을 지급하고 회사채를 모두 상환해야해 일시에 큰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라도 기업이 회사 형태를 바꾸는 것은 그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회피와 인건비 절약 등으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다.
루이뷔통코리아는 2012년, 구찌는 2014년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애플은 주식회사 형태에서 유한회사로 2009년 조직을 변경했다.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주력으로 판매하던 애플은 공교롭게도 유한회사 변경 직후 국내에 처음 아이폰을 출시했다. 아이폰 판매로 애플코리아의 매출이 급증했지만 정확한 매출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한회사의 외부감사를 강화하고 회계 공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년 전부터 터져 나왔다. 정확한 매출구조를 알기 어렵고, 이들 기업이 신고한 매출은 외부에서 봤을 때 실제보다 턱없이 적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국세청은 2014년 한국오라클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오라클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한국에서 번 수익을 누락했다고 판단, 법인세 3100억 원가량을 추징하기도 했다.
구글의 경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구글플레이에서 올리는 매출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앱 애니’에 따르면 구글플레이의 앱 매출 판매 중 한국은 전 세계에서 3번째로 구매를 많이 했다. 그만큼 한국시장은 구글의 매출에 기여도가 높다.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2016년 국내 매출로 2670여 억 원을 신고하고 이에 대한 법인세를 납부했다. 하지만 구글의 여러 수입원 중 앱 판매만으로도 수조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가 발간한 ‘2016 대한민국 무선인터넷 산업 현황’에 따르면 당시 구글플레이의 매출은 4조 원 이상이다. 구글플레이가 앱 판매의 30%를 매출로 떼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적어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가 구글플레이에서 결제를 해도 그 매출은 싱가포르에서 잡히게 돼 국내 매출집계에서는 제외된다. 자연히 국내에 내는 법인세도 줄어들게 된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법률을 준수해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과세당국은 이미 구글코리아에 대한 세무조사를 완료했고 당사가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한회사라는 기업 형태를 이용해 글로벌 회사들은 최소한의 책임만을 지고 있다. 2016년 시민단체가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옥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준선 기자
제조회사나 식품회사의 경우 대형 사고로 파산에 이르러도 유한회사의 경우 책임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타격을 줄일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발생했던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대표적이다. 옥시는 2011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했다. 당시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유한회사의 이점을 취하려고 의도적으로 조직을 변경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부의 외국인투자유치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유한회사에 대한 규제가 유보돼 왔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유한회사에 대한 감시 강화 주문이 있었지만 번번이 ‘규제완화’ 프레임에 부딪혀 무산돼 왔다. 2016년에도 ‘유한회사 외부 감사는 허용하되, 공시 의무는 과잉규제이기 때문에 제외한다’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유한회사의 감시강화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금융위원회가 외부감사 대상 기준을 선진국 방식으로 전면 개편해 유한회사 업태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그동안 유한회사는 매출이나 수익 등을 공시하지 않아 과세당국도 조세부과의 어려움을 느껴왔다. 세무당국으로서는 세무조사를 통해 직접 회사에 들어가 재무전산자료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매출이나 회계정보를 알 수 없다. 기업이 신고한 매출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
금융위의 제도 개선으로 유한회사는 자산, 부채, 매출액, 종업원 수 가운데 3개 이상이 일정 규모 이하인 곳을 제외하고는 보다 촘촘한 감독을 받게 된다. 유한회사로 설립되거나 전환된 글로벌 기업은 11월부터 주식회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재무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세무업계는 여전히 유한회사가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조세를 회피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주식회사는 상법 396조 ‘정관 등의 비치, 공시 의무’에 따라 필요할 경우 주주명부를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유한회사는 재무제표 비치 및 공시의무만 있고 주주명부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유한회사 주주들이 국내에서 배당금 등으로 벌어가는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릴 수 없다. 국내 투자로 얻은 배당은 속지주의를 따르는 세법상 국내 세원으로 확보돼야 하는데 외국으로 그대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외부감사 공시로 숨겨졌던 매출이나 수익 등 세원정보의 일부가 공개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법인세에만 국한된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에서 벌어가는 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감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유한회사들은 사회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않아 질타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튜브의 어린이 서비스인 ‘유튜브 키즈(YouTube Kids)’에 어린이용 동영상으로 위장한 음란 영상이 게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튜브의 경우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계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늘어나며 다양한 층위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부처 간 긴밀한 협조나 대책 마련은 요원하다. 정부는 외국인지분투자기업의 개수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엑셀파일 형태로 외국인투자기업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코트라에서 받은 자료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수준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