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개막 후 10경기에서 투수로서 2승을 올리고 타자로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냈다. 1919년 짐 쇼(워싱턴) 이후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현대 야구에선 볼 수 없는 일이었다는 의미다. 특히 두 번째 등판이던 4월 9일(한국시간) 오클랜드전에서는 7이닝 동안 삼진 12개를 잡아내면서 점수를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7회 1사까지는 안타와 볼넷 없이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 야구장을 술렁이게 했다. 오타니는 그 후 안타 한 개와 볼넷 한 개만 내주고 무사히 경기를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오타니의 괴력은 최고 시속 165km짜리 강속구와 142km짜리 스플리터를 던지면서 시속 181km의 속도로 140m를 날아가는 초대형 홈런까지 때려내는 선수라는 점이다. 오타니의 투타 겸업 시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던 메이저리그는 요즘 연일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동시에 프로야구 선수의 ‘투타 겸업’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바람직한 선택인지에 대한 논의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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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를 뒤덮은 오타니 신드롬
메이저리그엔 그야말로 ‘오타니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그 톱스타들을 제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야구 카드를 만드는 ‘톱스’가 오타니의 사인을 담아 제작한 야구 카드 중 하나가 6725달러(약 717만 원)에 팔렸을 정도다. 오타니가 부진했던 스프링캠프 끝 무렵엔 이 카드의 가격이 1500~2000달러선이었지만, 개막 후 2주 만에 무려 5000달러 넘게 가격이 뛰었다. 스포츠기념품 전문 판매상들조차 “시장이 다소 과열된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톱스 고위 관계자 역시 ESPN과 인터뷰에서 “2001년의 스즈키 이치로와 앨버트 푸홀스, 지난해의 에런 저지가 역대 가장 인기를 끈 카드였다. 그런데 올해 오타니의 카드는 그 이상이다. 최근의 오타니 인기와 맞먹을 만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시범경기에서 부진하자 “일본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메이저리그는 동네 야구가 아니다”며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던 미국 언론들도 일제히 칭찬 일색으로 돌아섰다. 오히려 극도로 부진했던 시범경기 때 모습이 현재의 성공에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어줬을 정도다.
“투타 겸업에 부정적이던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일본의 오타니가 아니라 미국의 오타니가 됐다” “반칙 같은 직구와 악마 같은 스플리터를 던진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오클랜드전이 끝난 뒤에는 “오타니가 지구인이 아니라는 점이 확실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급기야 미국의 유명 야구 기자인 ‘야후스포츠’의 제프 파산은 오타니에게 자신의 오판을 사과하는 칼럼까지 게재했다. “친애하는 오타니 씨. 내가 당신을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 같아 사과하고 싶다”며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내 예측은 실수였다. 당신 덕분에 시즌 시작 전 선수에 대한 판단은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썼다. 이례적인 일이다.
# 일본에서는 ‘이도류’로 검증됐던 오타니
사실 오타니는 이미 일본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二刀流)’로 검증된 선수였다. 앞으로 활약하게 될 무대가 다름 아닌 ‘메이저리그’라 회의적인 시선이 잠시 일었을 뿐이다. 2014년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11승과 10홈런)을 한꺼번에 해냈고, 2016년에는 다시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10승·100안타·20홈런을 동시 달성했다. 그해 오타니는 일본시리즈에서 투타 모두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투수와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 9에 나란히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역시 오타니였다.
오타니 외에도 많은 ‘천재형’ 선수들이 어린 시절 피칭과 타격에 모두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만 ‘프로’라는 무대에선 한 가지 재능에만 온힘을 쏟아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기에 필연적으로 둘 중 더 나은 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런데 오타니는 양쪽 다 너무 빼어난 나머지 그 결정을 하지 못했다. 고교 시절엔 스스로 투수보다 타격 쪽에 더 자신감을 가졌고, “왜 나는 투수 쪽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을까” 의아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실제로 오타니는 고교 통산 홈런 56개를 때려냈던 강타자였다. 일부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요미우리 레전드 타자 다카하시 요시노부나 뉴욕 양키스에서 뛴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와 비교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강타자 오 사다하루 감독이 “오타니는 내 기록을 뛰어넘을 만한 선수”라고 칭찬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하지만 오타니의 고교 시절 은사와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투수’ 오타니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오타니 역시 자신이 타자 쪽으로 더 좋은 재능을 가졌다고 여기면서도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이도류’의 삶이 시작됐다.
오타니가 몸담았던 니혼햄은 퍼시픽리그 소속 구단이다.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센트럴리그와 달리 지명타자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니혼햄은 입단과 동시에 슈퍼스타가 된 오타니를 최대한 많이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 오타니가 선발 등판 하는 날은 지명타자 자리를 없애고 투수 오타니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곤 했다. 또 오타니가 투수로 나오지 않는 날엔 주로 지명타자로 내보냈지만, 경기 중 교체 과정에서 수비 부담이 덜한 우익수 자리에 배치하기도 했다. 급할 때는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오타니가 경기 도중 투수로 포지션을 옮겨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오타니 같은 특급 선수를 언제든 ‘요긴하게’ 조커로 활용했으니, 니혼햄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도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 소속 구단을 선택했다. 빅리그 거의 모든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신중한 ‘심사’를 거친 끝에 현재 소속팀인 LA 에인절스를 골랐다. 하지만 지금은 니혼햄 시절보다 조금 더 확실하게 ‘관리’를 받는다. 선발 등판 날에는 타석에 서지 않고, 등판 전과 후의 하루나 이틀은 휴식을 취한다.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하고, 그 외 출전이 가능한 날엔 대타로 대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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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투수 겸 타자’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오타니이기에 그 정도 활약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노무라 가쓰야 라쿠텐 명예 감독은 “오타니는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 8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온 선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니의 투타 겸업이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많다. 조금만 나이가 들어도 체력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투수’ 오타니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 인물들도 이미 현지 언론을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나가시마 시게오는 “타자도 물론 좋겠지만 나는 오타니가 ‘투수’라고 본다. 다른 일본인에게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며 “무엇보다 체격이 좋고 키도 194cm나 된다. 투구폼도 좋다.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야 할 투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앞서 오타니를 극찬했던 노무라도 “투수는 전력투구를 할 때 전신을 사용해야 한다. 어디 한 군데라도 부상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내가 감독이라면 오타니를 당연히 투수로 기용하고 싶다. 타자로는 언제라도 전향할 순 있지만 시속 165km를 던지는 투수는 쉽게 볼 수 없다”고 했다.
오타니보다 앞서 메이저리그에 거액을 받고 진출한 다르빗슈 유도 “오타니가 ‘넘버 원’이 될 수 있는 분야는 투수다.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잡는 게 좋다”며 “투타 겸업이 야구의 인기를 고려했을 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스스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싶다면 언젠가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내놨다.
국내에서 오타니를 지켜본 레전드 스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이종범 국가대표 타격코치는 “나는 오타니가 ‘투수’라고 본다. 투수로서는 엄청나게 천재적인 선수지만, 타자로서는 그냥 좋은 타자다. 그렇다면 투수로서 재능을 더 살려야 한다”며 “지금은 시즌 초반이고 아직 젊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민철 국가대표 투수코치 역시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여부를 떠나 투수 오타니가 너무 아깝다”며 “타자로도 재능이 있는 건 맞지만, 시속 165km를 던지는 투수는 조금 더 특별하다. 계속 겸업을 하다가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것”이라고 했다. “선발 등판을 준비하는 ‘루틴’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계속 게임에 나가서 압박감을 견뎌야 하지 않나. 또 지명타자로만 나간다고는 해도 주루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분명히 체력적인 소모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젊은 천재 선수의 원대한 꿈을 미리 막을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오 사다하루는 “200승과 2000안타 중 어느 쪽을 달성해야 하나 고민하지 말고, 양쪽 모두 달성해서 명구회에 오면 된다”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기본적으로 투수나 타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양쪽을 다 계속하고 싶다면 그 정도의 각오는 가지고 분발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오치아이 히로미쓰도 “자신이 하고 싶다는데, 그런 새싹을 굳이 제거할 필요가 없다”며 “한번 시켜 보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 스스로 지면 된다”고 했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마쓰이 히데키와 다나카 마사히로도 마찬가지다. 마쓰이는 “가능하다면 양쪽 모두 계속하면 좋고, 언젠가 한쪽을 선택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했고, 다나카 역시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지만,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하면 된다”고 힘을 실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나도 이도류” 브랜든 맥케이의 도전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으로 성공을 거둔 마지막 선수는 전설적인 강타자 베이브 루스다. 1919년 투수로 133⅓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고, 타자로 130경기에 출전해 홈런 29개를 때려냈다. 당시 루스가 개막 17경기 만에 선발승을 올리고 홈런 두 개를 날리자 빅리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난리가 났다. 완벽한 투타 겸업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루스도 ‘홈런 타자’로 확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굳힌 뒤에는 투수로 등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920년부터 은퇴하던 1934년까지 단 다섯 경기에서만 마운드에 올랐다. 오타니는 그런 루스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진짜배기’ 투타 겸업 선수다. 미국 언론과 야구팬들은 “이번에는 진짜 루스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며 놀라고 있다. 투타 겸업 도전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당장 탬파베이 신인인 브랜든 맥케이(21)가 오타니의 후광을 입을 만한 선수다. 그는 2017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지명돼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금은 탬파베이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700만 달러다. 엠스플 뉴스 방송 화면 캡처. 그런 맥케이의 공식 포지션은 투수 겸 1루수로 명시돼 있다. 아마추어에서 뛴 18년 내내 투수와 야수를 병행하면서 경기에 나섰다. 대학 시절에는 현재의 오타니와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하루 선발 투수로 등판하고 3일은 야수로 나서는 패턴을 유지했다. 피칭과 배팅 양쪽 모두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프로 입단을 앞두고도 한쪽 길을 확실히 택하지 못했다. “투타 겸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강했다. 무엇보다 탬파베이 구단에서도 맥케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일단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해보라”고 권유했다. 구단 역시 어느 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입장이라서다. 맥케이에게 관심을 보였던 여러 구단들의 의견 역시 양쪽으로 반반씩 갈렸다. 어느 팀은 “투수가 낫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팀은 “타자로 더 성장할 재목”이라고 했다. 결국 맥케이와 탬파베이는 어느 한쪽에서 ‘프로답지 못한’ 성적을 내기 전까지는 양쪽을 모두 놓지 않기로 합의했다. 맥케이는 지난 시즌 싱글A에서 투수로 20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1.80을 마크했고, 타자로는 36경기에 나서 타율 0.232에 홈런 4개, 22타점, 출루율 0.349를 기록했다. 올해 역시 투수와 타자로 모두 출전하고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 선수로 성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타니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빅리그 레전드인 데이브 윈필드는 최근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와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언젠가는 최종 선택을 하게 되지만, 항상 가장 잘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두 길을 모두 가는 것은 더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투타 겸업으로 성공하는 선수를 내심 기다리고 있다. 윈필드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투타 겸업 꿈을) 이룬 선수는 없었다. 한번 꼭 보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