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삼성SDI를 시작으로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며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삼성과 두뇌게임이 치열하다. ‘금산분리’라는 정부의 ‘창’에 ‘바이오’라는 ‘방패’로 맞서는 모습이다.
최근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가 탄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순환출자는 해소, 다음은 금산분리=삼성SDI는 지난 10일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5599억 원에 처분했다. 특수관계인이 아닌 외부주주에 대한 매각이다. 순환출자를 끊으려면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도 보유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은 39%에서 33%로 줄어든다.
그래도 경영권에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금산분리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그룹 통합감독을 통해 금융사와 비금융사 간 지배구조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보험업 규제를 고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건희 회장 시대에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3%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시대에는 같은 구조가 어렵게 됐다. 결국 26조 원에 달하는 이 지분을 어디론가 옮겨야 한다. 살 곳은 삼성물산뿐이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가치는 이미 17조 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 지분을 매각하면 최대 25%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수조 원대다. 그만큼 삼성전자 지분을 살 여력이 줄어든다. 삼성생명도 삼성전자 지분을 팔 때 천문학적 세부담을 피할 수 없다.
▶움직이는 삼성물산, 주목받는 바이오=삼성물산으로서는 돈 되는 뭔가가 더 필요하다. 삼성물산은 2017회계연도부터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하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자본계정의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으로 변경했다. 회계변경만으로 자본총계가 21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급증했다. 부채총액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자본이 증가하면 그만큼 차입여력이 늘어난다.
이와 함께 최근 주목받은 회사가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이 회사 지분 5.39%를 보유한 바이오젠(Biogen Therapeutics Inc.)은 일정 가격으로 지분율을 49.9%까지 높일 수 있는 권리(call option)를 보유 중이다. 만기는 올 6월이다. 2017년 말 기준 콜옵션에 대비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장부상 반영한 부채는 1조 9336억 원이다. 현재 기업가치보다 싼 값에 바이오젠에 44.5%의 지분을 넘겨야 해서다. 바이오젠 입장에서는 이렇게 확보한 지분을 현금화해야 한다. 상장이 추진됐던 이유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일단 상장되면 시장가치가 10조 원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삼성물산이 바이오젠으로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상당수를 인수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지만 회사 측은 부인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바이오에서 뭔가를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삼성의 새 간판 ‘바이오’=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의약품 개발업체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주가전망은 밝은 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 말 기준 18만 2000ℓ로 세계 3위 규모로 생산설비를 가동 중이며, 건설 중인 3공장이 완공되는 2018년에는 총 36만 2000ℓ까지 생산설비를 늘려 세계 1위가 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한 제품은 재고부담이 없다. 수주부담이 있지만 이미 다국적제약사들과 10년 이상 장기 위탁판매계약을 맺었다.
셀트리온과 경쟁에서도 유리한 구조다. 셀트리온은 판매자회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위탁판매와 직접판매를 모두 수행하지만,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위탁수수료가 없으면 수익률은 높지만 판로개척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지난 연말 기준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총자산(2조 8749억 원) 가운데 54.7%인 1조 5748억 원이 재고자산이다. 지난해에는 1538억 원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영업현금흐름은 1943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더 많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 보유현금은 300억 원 아래까지 급감했고, 7월 부랴부랴 1조 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게다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 측 보유지분이 75%에 달한다. 유통 중인 25% 가운데 10%가 외국인 소유다. 코스피200 종목인 만큼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의무적으로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하면 실제 유통되는 주식은 거의 씨가 마른 상황이다. 그만큼 주가 탄력성이 높다.
반면 셀트리온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22%에 불과하다. 외국인 지분율이 23%지만, 특수관계인인 테마섹 측 지분을 제외한 순수 외국인 지분율은 8%에 불과하다. 주가 탄력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만 못하다.
최열희 언론인
지배구조 개편에 ‘계 탄’ 계열사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일부 계열사들이 떼돈을 벌게 됐다. 당장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삼성화재, 삼성전기, 삼성SDI 등이 수혜다. 삼성물산 주식은 이들 계열사 장부상에 가치는 반영돼 있었지만, 그룹 지배구조 영향 탓에 유동화가 어려웠다. 그림의 떡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림의 떡이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현실이 됐다. 삼성SDI는 이미 5599억 원에 지분을 팔았다. 지난해 영업수지가 흑자로 전환됐지만 연간 영업현금흐름은 2500억 원 순유출이었다. 가뭄에 내린 단비 격이다. 삼성전기의 보유지분 가치는 7000억 원에 육박한다. 역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의 2배가 넘는 액수다. 삼성화재 보유지분은 3600억 원으로 가장 적다. 삼성화재는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 다음 가는 알짜기업이다.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면 호재지만, 삼성SDI나 삼성전기 같은 극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진짜 ‘대박’은 금산분리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26조 원, 4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종잇조각이던 계열사 주식이 현금 더미로 바뀌는 셈이다. 다만 삼성생명의 경우 금융자회사 지배력 강화, 유배당계약자에 대한 배당 등으로 써야 할 돈이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금흐름에는 분명 ‘플러스’다. 이 같은 효과는 삼성뿐 아니다. 현대차그룹도 지배개편 이후 현대모비스 주가가 탄탄하게 버티고 있어 계열사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현대모비스 분할 이후 주가에 따라 금액은 확정되겠지만 현대제철은 현시가로 1조 원 가까운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기아차도 현대모비스 지분을 처분하지만 현대모비스에서 분할된 회사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법인 주식을 사들여야 해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니다. 한편 삼성과 현대차그룹 외에도 롯데와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집단들의 지배구조 개편이 활발해지면서 정부의 세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대주주들의 거래이니만큼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최대 25%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자리 문제로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는 상황에서 요긴한 돈이 될 수 있다. 추가 국채발행 없이 더 걷힌 세금으로 자금을 충당하면 되기 때문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