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부터 신한은행과 신한카드, 신한캐피탈 3곳을 대상으로 임직원 자녀 특혜채용 의혹 검사에 들어갔다. 최근 금감원 채용비리 신고센터에 해당 3개 계열사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데 따른 조치다. 금감원의 계획은 신한은행 7영업일, 신한카드와 신한캐피탈은 5영업일간 검사한다는 것이다.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검사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이슈가 된 신한금융 임직원 자녀 채용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금융에는 전·현직 임원 23명의 자녀 24명이 입사했고 현재도 17명이 근무 중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한동우 전 신한금융 회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임영진 신한카드 현 사장의 자녀들이 신한은행이나 신한카드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거나 퇴사했다.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먼저 라응찬 전 회장의 차남 라 아무개 씨는 라 전 회장이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입사했다. 입사 이후 한프라이빗에쿼티 이사로 고속승진을 거듭했지만 재개발 사기혐의로 기소되는 등 구설에 올랐다가 퇴사했다. 현재 신한금융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한동우 전 회장은 차남의 채용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한 고문이 신한생명 사장으로 재직했던 2004년 경력자 채용형식으로 입사했던 한 전 회장의 차남 한 아무개 씨는 신한은행 투자금융부 부부장으로 일한 데 이어 현재는 미국 뉴욕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의 아들은 신한카드에 입사했다가 최근 퇴사했고, 비은행 주력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임영진 신한카드 대표의 딸은 현재 신한카드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 계열사인 제주은행장과 인사업무를 맡았던 신한은행 본부장 자녀 역시 현재 신한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금융 측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채용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임원 자녀들이 신한금융에 입사했지만 공채를 거친 만큼 ‘빽’이 아닌 실력으로 뽑혔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직 신한금융의 채용비리가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일각에선 신한금융 채용비리 이슈가 해묵은 의혹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2000년대부터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등의 자녀가 신한금융에 입사했다는 얘기가 종종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금감원은 은행권 전반에 걸쳐 채용비리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신한은행에서 별다른 특이사항을 찾지 못했다. 금감원은 올해 1월 국내 은행을 대상으로 한 채용비리 조사에서 22건의 의심사례를 적발했지만 여기에 신한은행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3개월 만에 금감원이 다시 신한은행에 대해 표적 검사에 나선 것을 두고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선 일각에선 금감원이 물타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김기식 금감원장이 최근 ‘외유성 출장’ 논란에 휩싸이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금융권 한쪽에서는 이번 일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신한금융의 ‘라응찬계’를 노린 일종의 ‘작업’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라응찬계는 신한금융 회장을 4번이나 연임한 라응찬 전 회장의 측근 인사들을 이르는 말로, 신한금융의 주류를 형성하는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2010년 9월 발생한 신한금융 내분 당시 라 전 회장에게 맞섰던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퇴진한 뒤 사실상 신한금융그룹을 장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경북 상주 출신인 라 전 회장은 MB정부 시절 금융권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상촌회(尙村會)’ 멤버로 알려져 있다. ‘상주 촌놈들의 모임’이라는 뜻인 상촌회는 경북 상주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친목단체로 과거 MB정권 당시 정치·법조·금융 등 각계각층 인사를 망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서는 이들이 신한 사태 당시 라 전 회장을 지원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파워게임에서 승리한 라 전 회장과 그의 측근들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신한금융그룹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있었던 이른바 ‘남산 3억 원’ 사건도 주목받고 있다. ‘남산 3억 원’ 사건은 2008년 2월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이백순 당시 신한지주 부사장이 남산자유센터 정문 주차장 입구에서 MB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측에 3억 원을 전달했던 일을 말한다. 이 돈은 이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 성격이란 설이 파다하다. 금융권에서 대통령 당선축하금을 건네는 케이스는 극히 드문 일로, 검찰이 수사까지 했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2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남산 3억 원 의혹과 함께 불법 계좌조회 등 신한사태 전반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특히 검찰이 이달 중 조용병 현 신한금융 회장과 한동우 전 회장을 부를 것으로 전해지는 등 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렇듯 신한금융을 둘러싼 갑작스런 내우외환은 유독 라응찬계와 관련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금융권은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금융사 한 고위 관계자는 “채용비리 조사에서 4대 금융사 중 유일하게 의혹을 피하는 듯하던 신한금융이 결과적으로는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면서 “오비이락 격으로 과거사위원회 수사 시기와도 겹치는데, 두 사건 모두 라응찬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