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구성의 관전 포인트는 ‘개각 규모’다. 여권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농림축산부 장관만 채우는 원 포인트 개각이다. 내부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장관 차출 폭은 크지 않았다. 부산·대구시장 후보군이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끝내 등판하지 않았다. 전남지사에 출마한 김영록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 15명 안팎 자리만 채우면 최소 잡음으로 2기 내각 진용을 마무리할 수 있다.
현역 의원의 장관 차출은 여권에 적잖은 부담이다. 더불어민주당(121석)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116석)의 의석수 차이는 5석에 불과하다. 6월 지방선거와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제1·제2당이 뒤바뀔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현역 차출 불가’ 기조를 유지한 추미애호가 2기 내각의 현역 의원 징발을 용인할 가능성도 적다.
변수는 있다. 우선 지방선거 결과다. 민주당 압승이 예상되지만, 만에 하나 집권당 성적이 기대치를 밑돌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국면전환용 개각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인선과 함께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3∼6명 정도는 교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의 폭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압승하면 최소 개각으로 가겠지만, 반대라면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차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1순위는 전남지사 출마를 접은 이개호 민주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재선에 불과하지만 민주당 유일의 전남지역 현역 의원이자 현 전남도당위원장이다. 행정고시(제24회) 합격 후 전라남도청 농업정책과장, 목포시 부시장, 전남 행정부지사 등을 거친 정책통이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유세장에서 이 의원에게 “장관 한 번 하실 모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 한 관계자는 “추미애 대표와 이춘석 사무총장이 이 의원에게 전남지사 출마를 만류하면서 마음의 빚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관심은 정책 혼선을 빚은 장관 거취에 쏠린다. 취임 1년도 채 되기 전에 교체설에 휩싸인 이들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이다. 최근엔 쓰레기 분리수거 부실 대응으로 김은경 환경부 장관 등의 교체설도 흘러나온다.
지난해 수능 절대평가 도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 장관은 최근 정시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송 장관은 취임 초부터 잇따른 구설에 휘말리면서 여권 내부에서조차 ‘경계령’이 내려졌을 정도다. 송 장관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과 관련해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자,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송영무 장관 이름의 ‘무’라는 글자가 ‘없을 무(無)’가 아니지 않나”고 비판했다.
‘패싱’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강 장관은 존재감 약화 및 조직 장악력 등에서 평균 이하를 받고 있다. 백 장관과 정 장관도 마찬가지다. 여권 한 당직자는 “모든 정책이 청와대 주도로 흐르면서 몇몇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야당 한 중진 의원은 “일부 장관의 성적은 낙제점”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모두 정부 1기 내각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셈이다.
또 다른 변수는 개헌이다. 여권 발 장관 교체론은 청와대의 ‘단계적 개헌’과도 맞물려있다. 최근 청와대에선 6월 지방선거 때 여야 합의가 가능한 부분만 개헌하고 권력구조 등 쟁점 사안은 오는 2020년 총선 때 2차 개헌투표를 하는 안이 논의됐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임명 방식 등을 추후 논의 사안으로 넘긴 것이다. 문 대통령 임기 말까지 개헌 동력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일각에선 ‘연정 정국’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한다. 범진보 진영이 2기 내각을 최소 공약수 삼아 연합정치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해 추석 직전 여권 지도부에서 논의했던 사안이다. 민주당이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지 못하자, 지금은 없어진 국민의당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연정 방안을 논의했다. 2기 내각 때 당시 국민의당 일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게 핵심이었다. 국민의당이 두 쪽으로 갈리면서 연정 논의는 사실상 소멸했다. 다만 안철수계가 빠진 호남 중심의 민주평화당 출범으로 연정 논의가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 정국이 ‘포스트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 연정 논의에 물꼬가 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국민의당 지도부가 반대했던 논리는 ‘흡수통합에 대한 우려’였다. 당시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와 회동했던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연정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했지만, 당시 당 관계자들은 사안이 민감한 만큼 연정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누설하지 않기로 하는 등 ‘A급 보안 유지’ 작전에 나선 바 있다.
판은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선 결선투표제를 포함한 것은 ‘연정’을 위한 전 단계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결선투표 과정에서 두 개 이상 정당의 연합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같은 당 이인영 의원도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연정으로 경천동지할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범 진보진영이 한데 묶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민주당도 호남 지역당 이미지가 강한 평화당보다는 진보정당인 정의당까지 포함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과 함께하는 게 덜 부담스럽다. 2기 내각 때 평화당과 정의당 인사 일부를 장관으로 추천한다면, 호남 및 진보층 등 핵심 지지층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범진보(민주·평화·정의+바른미래 비례대표 3인 등) 진영의 의석수는 148석으로, 범보수(자유한국당·바른미래 등) 145석보다 많다. 범진보 연정은 여소야대를 타개하고 개헌 동력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카드인 셈이다.
여권 내부 권력구도도 변수다. 여의도 안팎에선 여권 발 장관 교체론이 솔솔 나오자, “3선 이상 등 중진 의원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4월 현재 민주당 의원은 3선은 18명, 4선은 13명, 5선은 4명, 6선 2명, 7선 1명으로 중진급은 38명에 달한다. 현역 장관도 3선(김영주 고용노동부·김영춘 해양수산부·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4선(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다수다. 여의도 정가에는 “모 의원이 장관직을 원한다더라”라는 설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중폭 이상의 개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난관이다. 문재인 정부는 1기 내각 구성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물론, 다수의 장관 후보자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5대 비리자(병역 면탈·탈세·부동산 투기·논문 표절·위장 전입) 고위 공직 배제’ 원칙에 걸렸다. 문 대통령의 범야권의 파상공세에 “인수위원회 과정이 있었다면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사전에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인사 논란은)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국민과 야당에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는 1기 내각의 마지막 퍼즐인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마저 논란이 일자, 임명 직후인 지난해 11월 기존 인사원칙에 성 비위자와 음주운전을 포함하는 ‘고위공직 원천 차단 7대 비리 배제’ 원칙을 발표했다. 원 포인트 개각을 주장하는 이들의 1순위 논거도 ‘인사청문회 부담’이다.
범진보 연정도 산 넘어 산이다. 명분 확보도 쉽지 않은 데다, 자칫 정국을 보혁구도로 내몰 수도 있다.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 내부 권력구도와도 직결한 문제여서 컨트롤타워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내부 동력만 상실할 수도 있다. 여권 중진 인사들의 물밑 암투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시점에 3당이 갈등 없이 지분 정리를 할지도 의문이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정권 초반이면 몰라도 중반 이후부터는 연정 제안을 해도 받을 수 없다”며 “민주당이 비공식적으로 연정 제안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민병두 사의 표명 그후…여도 야도 ‘뒷짐’ 사실상 철회 수순 “특유의 동지 의식이 아니겠냐.”(국회 의원실 전직 보좌관)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직 처리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 의원은 6·13 서울시장 선거운동 도중 10년 전 노래방에서 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의원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서울시장 꿈도 포기했다. 하지만 국회 표결은 감감무소식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선출직인 국회의원은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회기 중일 땐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표결을 한다. 비회기 땐 국회의장이 사직서를 수리한다. 국회 의장실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사퇴 여부는 여야 협의로 결정하는 게 관례”라고 밝혔다. 제1당 사수에 나선 민주당의 ‘모르쇠’와 야당의 ‘제 식구 감싸기’ 등이 맞물리면서 사실상 사퇴 철회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특히 여야 모두 이른바 ‘민병두 룰’이 입법부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기준으로 적용될 것을 우려, 표결 처리에 소극적이다. 여야의 암묵적 짬짜미는 3월 임시국회에서 재연됐다. ‘민병두 사직의 건’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보고만 했다. 표결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야 교섭단체 비공개 협상에서 민병두 사퇴 건은 주요 쟁점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한국당을 비롯해 야당도 표결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4월 임시국회도 일자리 추가경정예산과 개헌 등의 뇌관에 막혀 한 발짝도 못 떼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 의원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퇴 철회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MB) 정부 초기인 2008년 미디어법 갈등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 정세균·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은 한나라당의 법안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을 벗어던졌지만, 몇 개월 후 자진 철회하고 국회로 돌아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의원직 사퇴와 관련해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확정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여야가 표결에 합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야권이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비회기 땐 국회의장이 처리하면 되는데 하지 않았고 4월 국회에 돌입하니까 여당이 본회의 상정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 한 관계자는 “미투 폭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이슈”라며 “여야 모두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