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3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기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park@ilyo.co.kr
이재명, 전해철, 양기대 후보가 3파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손쉬운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인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4월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전 시장은 46.5%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전해철 의원은 7.3%로 3위에 머물렀다. 양기대 전 광명시장은 1.4%의 지지를 얻었다(이번 조사는 지난 4월 6일 경기도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9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77.1%)와 유선전화(유선 RDD 생성/22.9%)를 병행해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수준이며, 응답률은 13.5%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하지만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은 막판 당심을 앞세워 대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이미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회 의원 66명 중 53명이 전 의원 지지선언을 했고,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지역위원장들의 지지선언도 줄을 잇고 있다. 경선이 끝나기도 전에 지역 정치인들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반면 이 전 시장에 대한 민주당 인사의 지지선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 성남이 지역구고 이 전 시장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이나영 경기도의원조차 전 의원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이 의원은 전 의원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전 의원의 정치행보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었던 현역 국회의원들도 이번 경기지사 경선에선 이 전 시장 측과 거리를 두고 있다. 정성호 의원 측은 “정 의원이 현재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어 돕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제윤경 의원 측은 “제 의원이 경남 사천·남해·하동지역위원장으로 임명돼 경남 선거에 신경 쓰느라 경기 지사 선거를 돕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특히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전 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수도권 지역에서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판세가 유리한데 전 의원은 핵심 친문이고, 현재 당 공천은 친문이 꽉 잡고 있다. 전 의원 눈 밖에 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이 여는 행사에는 민주당 인사들이 얼굴 비추기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이 전 시장 측은 지난 3월 경기 포천에서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 정책설명회’를 개최했으나 대다수의 민주당 인사들이 불참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민주당 포천시장 예비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무서워서 안 나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에 불참했던 이형직 포천시의원은 “마침 다른 일정과 겹쳐 가지 못한 것”이라며 “전 의원 측으로부터 불참 압박을 받거나 전 의원 측 눈치를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전 시장이 수원에서 개최한 ‘이재명과 함께 화성을 걷다’ 행사도 민주당 인사들이 대거 불참하는 사태를 맞았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소속 지방선거 출마자는 “별 생각 없이 이 전 시장 측 행사에 참여하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그렇게 눈치가 없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주당 내부 움직임에 대해 이 전 시장은 “몸을 뺏으면 진짜 마음을 줍니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주당 인사들이 마음속으로는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혹시 모를 불이익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전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이재명 죽이기로 의심되는 사례는 더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3일 부산시장 후보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단수 공천했다. 당내 2위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크다는 이유다. 이 전 시장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기준이라면 경기 지역에서도 이 전 시장과 전 의원의 지지율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을 단수 공천했어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4월 6일에는 여론조사용 경력에 문재인, 노무현 이름표기를 허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 때문에 후보자 경력에 문 대통령 이름이 들어가면 지지율이 치솟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쟁 후보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당 선관위는 지난 4월 4일 문재인, 노무현 이름표기 불허방침을 정했으나 당 최고위에서 이를 뒤집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전 의원에게 유리해진 규정이다.
지난 3월 ‘검찰이 이 전 시장 측근의 뇌물수수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하고 있다’는 한 언론사의 보도내용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작품이 아니냐는 뒷말까지 무성했다. 청와대 뜻이 아니라면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검찰이 여당 유력 광역단체후보 측근을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친문계 핵심인 황희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경기지사는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깔판’으로 둔갑해 도민들 민생에 도움이 안 됐다. 그러나 전해철은 대권에 뜻이 없다.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친문 진영에서는 비문(비문재인) 대권 주자가 광역단체장이 되는 것에 대해 심하게 경계하는 눈치다. 지금이야 대통령 지지율이 높으니까 문제가 없지만 나중에는 결국 친문 진영과 문 대통령을 향해 칼을 겨눌 것이라는 논리”라며 “이 전 시장이 경기지사가 되면 당장 다음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할 것 아닌가. 경기지역에 특히 친문 의원들이 많은데 이 전 시장이 도지사가 되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여러 논란에도 “네거티브 없는 경선을 치르겠다”면서 무대응 전략을 펴고 있다. 친문 패권주의 비판에 나설 경우 자칫 친문 성향 당원들을 적으로 돌릴 우려 때문이다. 또 무대응으로 일관해도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전직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전 의원이 경선에선 이기고 본선에서 패할 경우 친문이 욕심을 부리다 벌어진 참사라고 비판받을 것이 뻔하다. 문 대통령도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