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 명단을 원내 정당 가운데 가장 먼저 정리해냈다. 물론, 가장 취약한 호남 3곳(광주 전남 전북)에서는 광역단체장 공천자를 내지 못했지만 원내 정당 가운데 1등으로 지방선거 출발선에 선 셈이다. 홍 대표는 지난해부터 “지방선거 공천은 최대한 빨리 끝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민주당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빨리 후보를 확정하겠다는 의지였다.
더욱이 홍 대표는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분위기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자유한국당 후보들이 “과연 최선이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가 청산 대상으로 지명했던 친박 성향은 물론, 나이까지 많은 이른바 ‘올드보이’가 공천을 다수 받았기 때문이다. 텃밭인 영남에서는 공천 반발도 적지 않아 이를 어떻게 잠재울지도 홍 대표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4월 12일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출정식. 박은숙 기자
# 홍 대표, 천신만고 끝 구인난 해결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느긋했지만 한국당은 초조했다. 여당과 제1야당 한국당의 희비는 선거 초반부터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의 경우 수도권은 물론, 부산경남(PK) 등 전통적 보수 텃밭 지역에서조차 후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손님 그만 받습니다”라는 내용의 팻말까지 문 앞에 내걸었지만 민주당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손님이 밀려들어왔다.
반면, 한국당은 ‘근거지’로 여기는 대구경북(TK)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극심한 후보난에 처했다. 3D업종의 중소기업이 직원을 못 구해 사장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과 똑같았다. 한국당 후보가 되겠다고 손을 든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직원이 없어 공장을 못 돌릴 판이었던 홍 대표는 속이 타들어갔다. 더군다나 홍 대표에 대한 재신임의 성격도 띠게 된 경남지사 후보도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박완수·윤한홍 의원이 연이어 불출마를 선언해 공천 자체가 난산이었다.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홍 대표는 호남을 제외한 광역단체장 후보 진용을 갖추는 데 일단 성공했다. 4월 10일 기준으로 서울시장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공천된 것을 비롯해 ▷부산 서병수 ▷대구 권영진 ▷인천 유정복 ▷대전 박성효 ▷울산 김기현 ▷세종 송아영 ▷경기 남경필 ▷충남 이인제 ▷충북 박경국 ▷경남 김태호 ▷경북 이철우 ▷강원 정창수 ▷제주 김방훈 등이 한국당 공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당은 어려운 여건이지만 광주시장, 전남지사, 전북지사도 후보를 무조건 낸다는 방침이다.
# 한국당, 기사회생 가능할까
홍 대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연장선인 ‘한국당 필패론’ 극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데이터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연쇄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조사 정보의 신뢰성이 형편없이 낮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득이 먹힐 경우 숨죽이면서 자포자기했던 보수층이 투표장으로 나오고 이를 통해 보수의 재건, 즉 한국당의 지방선거 선전이 가능하다는 게 홍 대표 판단이다. 홍 대표는 자신의 전략이 성공하면 한국당의 마지노선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던 ‘광역단체장 6곳 승리’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 대표는 4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단체장 후보자 출정식’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후보의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여론조사에 현혹돼 투표장에 안 가려는 우리 지지계층이 많은데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얼마나 투표장에 많이 가도록 하느냐로 갈린다. 절대 불리하지 않은 선거다. 선거 민심은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측은 홍 대표 지적처럼 여론조사의 함정 사례가 굉장히 많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내가 누구에게 투표하겠다’는 표심은 의외로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투표하지 않을 사람의 의견을 표심으로 넣어버리니까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계획 등이 발표됨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고 보고 문 정부의 ‘경제 실정’을 파고든다면 이번 지방선거가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당은 또 최근 터진 김기식 금감원장의 내로남불형 갑질 논란도 표를 늘리는 호재로 생각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상된 법인세율을 다시 낮추는 내용의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세금 낮추기를 통한 경제 살리기 세력이 바로 한국당이라는 것이다. 법인세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국회는 지난해 12월 과표 30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을 기존(22%)보다 3%포인트 높은 25%로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 공천 잡음, 또 다른 뇌관
한국당이 원내정당 가운데 가장 빨리 광역단체장 후보 진용을 완성함으로써 속도전에서는 이겼지만 내용면에서 “과연 승리로 이어지는 ‘필승조’가 맞느냐”는 의문부호가 나오고 있다. 홍 대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모셔온 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싸워 이길 수 있는 후보’로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홍 대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전국의 인재를 모으겠다”고 했지만 가장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시장 후보조차 김문수 전 경기지사로 낙점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중형을 받은 상황에서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나 충남지사 후보인 이인제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도 참석한 바 있어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새로운 보수를 선보이겠다던 한국당의 다짐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 잡음도 또 다른 분란을 가져올 뇌관이 되고 있다. 홍 대표의 홈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부산경남(PK)에서는 각각 부산시장과 창원시장 출마를 준비했던 이종혁 전 최고위원과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공천 결과에 반발해 탈당했다. 한국당이 확실한 텃밭이라고 여기고 있는 대구경북(TK)에서도 대구 남·동구와 달성군 등지에서 공천 탈락자들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고, 현역 공천이 배제된 경북도내 시군에서도 반발이 이어지는 중이다.
#홍 대표, 지방선거 찍고 롱런할까
홍 대표는 “광역단체장 6곳을 사수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당 안팎에서는 광역단체장 5자리가 걸려있는 TK, PK 등 영남권만 한국당이 지켜낸다면 홍 대표가 당권을 확실히 장악하고 롱런 체제로 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홍 대표는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이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TK(홍 대표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부터 반드시 재장악해야 한다는 신념을 대표 취임 이후 강하게 내비쳐왔다. “TK를 놓치면 한국당은 문을 닫아야한다”는 말까지 홍 대표는 해왔다. 지난해 대선에서 대구의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한때 50%에 육박할 만큼 완전히 흔들려버린 TK의 마음을 다시 돌려놔야 한국당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당은 최근 TK의 지지세 회복을 바탕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PK, 그리고 중원인 충청에 이어 인천 상륙작전까지 감행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홍 대표가 설사 이번 지방선거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낸다 해도 당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확실한 ‘스트롱맨’으로 자리 잡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우선 TK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던 홍 대표가 지방선거 직후 이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4월 12일 밝히면서 텃밭에서의 신뢰 상실 우려가 번지고 있다. 홍 대표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며 당협위원장직을 내던지겠다는 의사를 내비침에 따라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당 대표가 험지 차출론을 피해 대구를 피신처로 삼았다”는 좋지 않은 여론에 봉착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또한 스스로 대구경북 발전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지역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약속 또한 당협위원장 명분 쌓기용 ‘쇼’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리를 소중히 하는 TK정서를 자극, 또 다른 후폭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이다. 홍 대표의 당 운영방식에 끊임없이 비판을 가하고 있는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의 견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롱런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