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 영화<연인과 독재자> 스틸컷
[일요신문] ‘한국의 마릴린먼로’ 원로 배우 겸 영화감독 최은희가 별세했다.
최은희는 16일 오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그녀는 2006년 4월 남편 신상옥 감독이 타계한 뒤 급격히 건강이 쇠약해져 오랜 생활 투병을 해왔다. 사망하기 전까지 일주일에 세 차례씩 신장투석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광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작품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계에 진출한 그녀는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등에 출연하며 한국의 마릴린먼로로 통했다.
또한 남편인 고 신 감독과 <성춘향> 등 6~70년대 활발한 활동을 통해 100여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그녀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최은희는 우리나라의 3번째 여성 감독이었다. <민며느리> <공주님의 짝사랑> <총각선생> 등을 만들었다.
그녀는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 겸 이사장을 맡아 후배 연기자들을 양성했다. 그러던 중 신 감독과 1976년 이혼하고 1978년 1월 홍콩에 갔다가 북한으로 납치된다.
이후 납북된 신 감독과 1983년 다시 북환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는 사라진 최은희를 찾아 홍콩에 갔다가 북한에 납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지원을 받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사랑사랑 내 사랑> <심청전> 등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다.
특히 그녀는 북한에서 만든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북한 영화계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두 사람은 북에서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다시 재결합하고 부부의 연을 이어갔다.
최은희와 신 감독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현지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에서 1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한국으로 온 그녀는 2012년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을 받았고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신정균(영화감독)·상균·명희·승리 씨 등 2남 2녀가 있다.
한변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주성연 기자 joofee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