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잔뜩 낀 중국 다롄 시내의 풍경.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기자가 중국 현지 취재를 위해 베이스캠프를 차린 곳은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连)이었다. 다롄은 인구 600만 명의 동북3성 대표 도시다. 중국 전체로 놓고 봐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에 속한다. 특히 이곳은 중화학 공업을 기반으로 최근엔 IT산업 역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롄 역 근처에 위치한 티엔진지에(天津街) 거리였다. 이곳은 패션과 먹거리는 물론 주요 대형 상권들이 몰려 있는 도시 대표 번화가다. 다롄을 찾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2년 전 기자는 이곳을 찾은 적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 번화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지하와 지상 곳곳에 자리한 각종 대형 상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한산하기 그지 없는 다롄의 번화가 티엔진지에의 모습. 이곳은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상권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그 와중에 곳곳에는 아예 문을 닫은 백화점들도 눈에 띄었다. 그 중에는 업종 변경을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곳도 제법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폐업한 대형 백화점을 가리키며) 저곳을 보라.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거리의 대표적인 상권이었다”라며 “저런 곳이 요즘 한둘이 아니다. 보다시피 거리에 사람이 없지 않나. 지난해부터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롄의 온주상인 밀집지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주상인이 누구인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상술의 귀재로 불리는 그들이다. 그들은 다롄에서 주로 의류와 잡화 분야에 강세를 보이는데, 기자가 밀집 상권을 찾았을 때 그곳 역시 한산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중국 사람들은 경기가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입는 것부터 아낀다”라며 “요즘이 그렇다. 가격을 싸게 후려쳐도 그날 양모 코트 하나 팔면 정말 다행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도시 곳곳을 누비는 택시기사들은 바닥민심의 바로미터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를 오가며 만난 택시기사들은 얼마 전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에 대한 소견과 곁들여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기까지 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지난해만 해도 못해도 월 5000위안(한국 돈 84만 원 정도)은 벌었다. 그런데 요즘 심하면 3000위안(한국 돈 50만 원 정도)을 벌기도 한다”라며 “도무지 사람들이 밖에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요즘 경기가 정말 심각하다”고 혀를 찼다.
다롄 시내 번화가 곳곳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즐비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그러면서 그는 기자가 한국인임을 인식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요즘 중국은 산둥(山東)만 살맛 났다”라며 “그곳이 펑리위안(시 주석의 부인) 고향 아닌가. 특히 이곳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불만이 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택시기사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다롄은 시진핑 주석에 의해 사실상 제거된 보시라이 전 상무부장이 과거 시장을 역임한 정치적 기반이다. 이 때문에 많은 다롄 시민들이 은연중 이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펑리위안을 통해 시 주석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택시기사는 “벌이는 더 안 좋아졌는데, 물가는 계속 올라 우리 같은 서민들은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라며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산다. 요즘 다롄 인민로 명품거리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권판매소를 가리키며 “저기 봐라. 요즘 장사 잘 되는 곳은 저 곳”이라고 덧붙였다. 복권판매소 앞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남루한 서민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단둥(丹東)에서 다롄으로 이동하던 도중 마주한 현지인은 더 의미심장한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최근 장기 집권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 주석에 대해 “내 아들은 이미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고, 그곳에서 취업해 시민권을 얻었다”라며 “중국도 참 쉽지만은 않겠지만, 자유민주주의로 가야 하지 않겠나 싶다”라고 진단했다.
‘시진핑 차이나’ 1기는 그럭저럭 안정적인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며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성장세도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고, 게다가 서민층이 느끼는 계층 간 소득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가속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무역 분쟁은 이러한 사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올해 도이체방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국제금융회사에선 올해 중국의 성장세 둔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중국 내수 상황, 특히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한 바닥민심은 ‘시진핑 차이나’의 미래, 더 나아가 동북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롄·단둥=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중국 바닥경기 ‘썰렁’ 상류층 찾는 골동품시장은 ‘후끈’ 다롄 골동품 시장에 전시된 도자기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중국 바닥경기에 한파가 오가고 있는 것과 달리,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시장도 존재한다. 바로 중국의 골동품 시장이 그곳이다. 골동품과 미술품 시장의 주요 고객은 당연히 서민이 아니다. 대부분 자금을 쥐고 있는 상류층들이 오가는 곳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최근 중국 골동품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기자는 현지 취재 과정에서 직접 다롄의 한 골동품 취급 상가를 찾았다. 상가 곳곳에는 회화와 도자기, 서예 작품 등 고가의 진귀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활기가 띠었다. 한 도자기 취급 상점에 들어가 보니, 의뢰인들이 맡겨놓은 각 시대별 자기들이 진열돼 있었다. 거기서 만난 상인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시세가 몇 배 올랐다. 특히 송나라 시대 자기는 이곳에서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며 “가져오기만 하면 무조건 얼마 안가 팔아줄 수 있다. 때때로 조선시대 자기도 들어오는데, 역시 인기가 좋다”며 조선백자를 들어 보여줬다.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늦은 밤 황금시간대에 골동품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진품명품’과 유사하다. 다만 더욱 화려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게스트들이 스테이지에 오른 골동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형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의 골동품 시장 열풍을 그대로 반영한 사례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