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병암정 앞 느티나무. | ||
예천의 풍경을 완성하는 ‘화가’는 내성천이다.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를 거쳐 예천으로 굽이굽이 흘러드는 내성천은 호명면에 이르러 선몽대라는 절경을 탄생시킨다.
선몽대는 2006년 11월 문화재청에서 명승 19호로 지정한 곳으로 퇴계 이황의 종손이자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다. 호명면 백송리에 자리한 선몽대는 그러나 정자 그 자체보다도 주변 경치가 더 아름답다. 퇴계 이황이 쓴 ‘선몽대’ 현판과 서애 류성룡·한음 이덕형 등이 쓴 축시가 목판에 새겨져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출입이 금지된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 정자가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선몽대가 품은 풍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몽대 옆으로 오래된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앞으로 내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강변에는 하얀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한 폭의 멋진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주변 숲은 바람과 강물로부터 선몽대와 백송리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이 숲의 나무들은 100~200년 수령의 소나무들이 대부분이지만 은행나무와 버드나무·향나무 등도 더러 섞여 있다. 나무는 띄엄띄엄 심어져 있고 그늘이 드리워지는 곳곳에 벤치가 설치돼 있다. 한적한 숲을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 강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성천은 선몽대를 지나쳐 용문면에서 회룡포라는 또 하나의 절경을 선보인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이 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과 같은 ‘물돌이마을’이다. 회룡포는 선몽대에 앞서 국가지정 명승지 16호로 지정된 곳. 마을 앞에 우뚝 서 있는 비룡산 전망대에 오르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풀잎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물방울 같다.
예천은 사실 ‘풍류’의 고장이다. 죽월산의 금천·봉화에서 흘러내려온 내성천이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과 만나는 삼강 주변에는 매호정과 삼수정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또 용문사로 잘 알려진 용문면에는 병암정과 초간정 등의 빼어난 정자가 자리해 있다. 묵객들이 머물며 시를 짓고 자연과 벗하며 놀던 이들 정자 중에서도 특히 병암정과 초간정은 한국적 산수미학이 돋보이는 건물들이다.
용문면 성현리에 자리한 병암정은 구한말 법부대신 이유인이 세운 건물로 본래 이름은 옥숙정이다. 그러나 예천 권씨 문중에서 이 건물을 구입한 후 이름도 병암정으로 바뀌었다. 병암정은 약 20m 높이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현재는 건물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정자 오른쪽에는 세 칸 규모의 별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을 두르고 있는 토석혼축담(흙과 돌로 이뤄진 담)이 멋스럽다.
절벽 위에 서 있는 병암정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다. 중력을 거부하며 절벽에 뿌리를 내린 채 사선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 정도다.
▲ 예천 권씨 종택(위), 계곡과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하는 초간정. | ||
병암정이 인공적으로 연못을 만들고 조경에 힘을 썼다면 용문면 죽림리에 자리한 초간정은 주변의 자연 그 자체가 정원이 되는 곳이다.
병암정에서 나와 용문사 방면으로 10분쯤 길을 달리다보면 왼쪽에 초간정이 자리하고 있다. 초간정은 1582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권문해가 지은 것이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권문해의 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이다.
초간정의 정원은 그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넓다. 초간정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모두 정원이기 때문이다. 소나무 우거진 숲이 초간정을 둘러싸고 건물 바로 아래로는 금곡천이 흐른다. 절로 신선이 될 만한 절경 속에 정자가 놓여 있는 셈이다. 애써 인공적으로 정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모든 것을 취하는 큰 지혜가 초간정에서 읽혀진다.
한편 초간정 근처에는 권문해의 종가집인 예천 권씨 종택과 금당실전통마을 등 둘러볼 만한 곳들이 있다.
예천 권씨 종택은 권문해의 조부인 권오상이 1589년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는 보물 제457호로 지정된 사랑채가 있다. 육간대청이 넓은 이 건물은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온 듯 보여서 별당채라고도 한다. 종택에서는 건물만큼이나 오래된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띈다. 입구에 서 있는 향나무가 그것이다.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노목으로 둘레 60㎝에 높이는 10m에 달한다. 이 나무를 울향나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무오사화 때 울릉도로 유배당했던 권오상이 돌아오면서 가져다 심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종택에서 약 5분 거리에 자리한 금당실전통마을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과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고택, 원주 변씨 입향조 변응녕을 모신 사괴당고택 등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 옛 향기를 만끽하며 돌담길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길잡이: 중부내륙고속국도 점촌 함창IC→924번 지방도→회룡포→선몽대
★먹거리: 예천군청 인근 제방가에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054-655-0264)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포묵이 맛깔 나는 곳이다. 녹두를 맷돌에 곱게 갈아 불린 후 가마솥에 끓여 내는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집으로 청포정식이 주 메뉴다. 김과 계란지단, 다진 쇠고기를 넣고 참기름으로 버무린 청포묵에 조기, 각종 산나물무침이 곁들여 나오는 상차림이다. 소박하지만 음식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잠자리: 숙박은 예천읍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파라다이스호텔(054-652-1108), 신라모텔(054-655-3030), 황금장모텔(054-655-3456) 등이 있다.
★문의: 예천군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ycg.kr) 문화관광과 054-650-6395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