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제2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면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최근 기자와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상회담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내심 기대를 건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그는 “야당이 특검카드로 공격하고 있지만 그럴 사안도 아니라는 판단”이라면서 “정상회담 이슈가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현재 친문 핵심부 기류를 잘 드러낸다. 김기식 전 원장은 야권의 정치공세에 의해 낙마했고, 드루킹 사건은 개인 일탈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어려운 국면인 것은 분명하지만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고한 지지율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문재인 복심’으로 통하는 김경수 의원이 장고 끝에 경남지사 출마를 강행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여권 비주류 진영에선 쓴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드루킹 사건의 경우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카드를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의 한 비문 의원은 “당이 최대 위기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그런데 누구 하나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당 지도부가 주도적으로 야권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인지 의문이다. 여권이 ‘문재인 개인기’ 때문에 버틴다는 얘기가 어디 하루 이틀이냐”고 꼬집었다.
“청와대 때문에 야당과의 관계가 더 꼬였다”고 목소리를 높인 또 다른 비문 의원실 관계자는 “만기친람(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핌)식의 국정운영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이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여당 의원들이 문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를 향해 지적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에서) 국회 사정을 가감 없이 전달해야 청와대에서도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자꾸 야당과의 관계도 악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당 의원들에게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 비주류이긴 하지만 집권 여당 의원들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셈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조국 민정수석 교체론에 공감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기식 전 원장 검증에 실패해 국정 혼란을 야기한 조 수석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비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기식 논란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서도 민정수석실이 오르내렸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니 그 정치적 부담을 문 대통령이 온전히 지고 있다. 지금이야 임기 초반이니 버티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게 쌓이면 문 대통령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조국 수석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고,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때인데 아무도 그런 직언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일찌감치 조국 책임론에 대해 일축해버리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친문 의원들은 야권의 맹공을 방어하면서도 최대한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관련 사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4월 27일 정상회담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일부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도 청와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된다. 이들은 “문 대통령 흔들기는 옳지 않다”면서도 “특정 참모에게 과도하게 힘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특정 참모는 임종석 비서실장이다. 여권 주류 진영에서 임 실장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친문 의원은 “김기식 사태에서 가장 우려스러웠던 것은 검증과 임명보다는 그 후 수습과정이었다. 계속 버티다 선관위에 질의한 뒤 결정하겠다는 식의 ‘김기식 구하기’는 득보단 실이 많은 대응이었다. 설령 문 대통령이 직접 그러한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참모진을 이끄는 임 실장이 책임을 느껴야 하는 부분도 크다”고 했다.
임 실장은 자타공인 여권 최고 실세로 꼽힌다. 원조 친문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친문보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속에 임 실장 파워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정권 초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실상 현 정권 2인자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그러나 임 실장 독주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여당 의원들도 제법 있다. 친문 의원들이 ‘원래 우리 쪽 사람도 아닌데’라며 못마땅해 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여권 주류인 친문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임 실장이 차기 주자로까지 거론되며 급부상하자 친문 일각에서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임 실장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임 실장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실장 신분이다. 무슨 권력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을 야당도 아닌 여당 의원들이 흠집 내려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