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정부 서울청사에서 만나 머리를 맞댔다. 이들이 만난 공식적인 이유는 금융현안과 금융혁신 과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예정에 없던 이날 회동에서 두 사람은 “최근 금감원장 공석으로 인해 금융혁신의 추진 동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차기 금감원장이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금융권은 두 사람이 또 다시 시작된 금감원장 공석 사태를 추스르기 위한 묘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풀이한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감원장 공석으로 금융감독 등 현안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후임 금감원장 인선 작업은 상당히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니만큼 청와대의 뜻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김기식 전 원장의 낙마로 후임 금감원장의 조건이 한층 더 까다로워진 데다 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청와대가 금감원장 인선에 할애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금융에 관료 출신 기용은 없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관료 출신을 배제해 후보군은 더욱 좁아졌다.
현재까지 후보로 언급된 인물들은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 이동걸 KDB산업은행장, 전성인 홍익대 교수, 심인숙 중앙대 교수 등인 것으로 파악된다. 관료 출신으로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정은보 전 금융위 부위원장,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이 거론된다.
일단 후보군 가운데 진보성향 학자로 꼽히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전 한국금융학회장)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금융행정혁신위원) 등은 “공직을 맡는 것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며 고사 의지를 밝혔다.
당사자들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차기 금감원장으로 교수 출신이 거론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을 위해서는 외부 발탁이 불가피하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인사의)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다.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이라면서도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사 방침은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낙마한 최흥식 전 금감원장과 김기식 전 금감원장을 통해 실현되기도 했다. 또 차기 금감원장에 관료 출신을 임명할 경우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금융·재벌개혁이 후퇴한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까지 있었는데 관료 출신을 임명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만약 관료 출신 선임이 강행된다면 하극상 논란은 물론 청와대가 개혁을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차기 금감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주 전 사장을 신임 금감원장으로 임명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일요신문DB.
이 와중에 주목받는 인물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다. 최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주 전 사장을 신임 금감원장으로 임명해 달라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현재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주진형 전 사장이 차기 금감원장 유력 후보로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주 전 사장은 세계은행 컨설턴트와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을 거쳤으며 2013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영입됐다. 그는 한화투자증권 재직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면서 주목을 받았고,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는 재벌들을 비판하는 소신발언으로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 전 사장은 “재벌들은 옛날에는 집행유예 받고, 병원 가고 말다가 최근 한두 분씩 감옥에 가기 시작했다”면서 “이번에도 재벌이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폐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를 봤을 때 저렇게 돈 많은 사람이 치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면서 “특히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대담함에 놀랐다”고 일갈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 합류한 인물인 이동걸 회장과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의 이동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참여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원 부원장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과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진보성향 학자 출신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두 사람은 정치 이력이 그리 많지 않은 인물들인 만큼 야당의 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장점”이라며 “다만 원 부원장의 경우 삼성 금융계열사 임원 출신이라 삼성의 내부 사정에도 밝은 만큼 삼성 측이 경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6·13지방선거를 치를 때까지는 금감원장 인선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여론의 민감한 반응이 있었던 사안인 만큼 모험을 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실수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