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외유성 출장’ 논란으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사퇴와 함께 국민들은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지난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정치후원금 기부행위, 이른바 ‘셀프 후원’이 공직선거법에 위배되고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외유성 출장’ 또한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김 전 원장은 “선관위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도 청와대에 사표를 냈고, 청와대는 이를 수리했다.
김 전 원장이 이를 납득하기 어려웠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2017년 1월 말 셀프 후원 등의 내용이 담긴 회계보고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는데, 당시 선관위는 ‘위법’ 또는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등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즉, 선관위는 애초부터 김 전 원장이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선관위는 16일 “자료가 워낙 많다 보니 김 전 원장의 문제를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며 “실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의 사퇴에 지지자들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이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주장했다. 외유성 출장을 이유로 사퇴해야 한다면 같은 기준으로 다른 국회의원들도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청와대는 지난 12일 19·20대 국회에서 16개 피감기관의 지원을 통해 이뤄진 출장이 한국당 94건, 민주당 65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한국당은 이에 “청와대가 나서서 입법부를 사찰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회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국회의원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조사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16일 제기된 이 청원은 이틀 만인 17일 오전 11시 20만 명을 넘어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관련 부처 장관이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게다가 18일 ‘데일리안’과 ‘알앤써치’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전수조사 실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2.8%에 그쳤고, 반대는 6.2%였다. 전수조사에 대한 국민적 갈증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조속한 시일 내에 여야 교섭단체 협의를 거쳐 국회의 과거 국외출장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정 의장이 이를 추진할 경우 한국당의 의도와는 다르게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전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국회의원 전체에 대한 위법성 관련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4월 20일 오후 2시 기준으로 23만 3865명의 국민이 동의했다.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물론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18일 “청와대 사찰 행위는 이미 이뤄진 것”이라며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합리화를 위한 압박은 맞지 않다. 이미 전수조사를 다 했는데 무슨 전수조사를 한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한 것에 대해서도 “그건 국민의 청원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진보정당에서 전수조사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어 전수조사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의 ‘김기식 때리기’가 심화되자 민주당은 역공에 나섰다. 민주당은 2015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었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과 캐나다를 각각 4박6일, 3박5일 일정으로 방문했는데 1차 출장 때는 한국공항공사가 1100만 원의 경비를 지원했고, 2차 출장 때는 경비 지원은 없었지만 보좌진을 대동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공항주변지역 고도제한 완화를 협의하고 대한민국 이사국 선거운동을 하고 온 ‘국익차원 공무출장’을 두고, 9박 10일 동안 벨기에 워털루 전쟁기념관, 로마 콜로세움과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으로 유람이나 다닌 ‘인턴 동반 갑질 외유’와 비교하는 것은 정치적 금도를 넘은 야당 탄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우상호·박영선 의원도 “안철수 바른미래당 예비후보가 카이스트 교수 시절 카이스트 공금으로 개인적인 외유성 출장을 4차례 다녀왔다”며 공격했으나, 안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의원 재직 시 갑질 외유가 문제인데, 당시 평교수가 학교 허락을 받고 출장간 것에 대해 (경쟁 후보가)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라며 방어에 나섰다.
201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이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피감기관의 지원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농수산위 소속이던 하태경·장윤석·이운룡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4박5일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지원을 받아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 의원은 이에 “‘김기식표 출장’은 피감기관이랑 직접 협의를 통해 갔던 로비성 출장”이라면서 “제가 갔던 것은 위원회를 통해서 간 것으로 외유성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위원회의 출장은 (의원 개인에게 제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위원장실로 들어온다. 로비를 차단하기 위해 위원장실에서 제안을 받고, 이를 위원들에게 어레인지(배정)를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저는 국회의원 전수조사에 적극 찬성한다”면서 “그리고 저는 국회의원들 가운데 전수조사를 최초로 제기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이 외유성 출장에 대한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높은 국민 여론과 국회의장의 의지, 그리고 한국당을 제외한 국회 내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국회는 전수조사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