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한양대 A 교수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3월 27일 밝혔다. A 교수는 2015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정부와 기업체에게 받은 연구비 가운데 석·박사과정생이 받아야 할 학생인건비를 허위 등재해 산학협력단에 청구하는 수법으로 6억 4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소속 석·박사과정생에게 개인 급여통장 외 학생인건비 통장을 하나 더 만들도록 지시했다. 교수는 석·박사과정생이 새로 만든 학생인건비 통장을 실제 소유했다. 월 180만 원으로 책정된 석사과정생 인건비와 박사과정생 인건비 월 250만 원은 교수 실소유의 석·박사과정생 학생인건비 통장으로 입금됐다. 교수는 그 돈을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보냈다. 그런 뒤 약 40%를 자신의 통장에 남겨 두고 나머지 60%를 석·박사과정생 개인 급여통장으로 송금했다.
한양대는 지난해 A 교수의 연구비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교수진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에서 A 교수 외 교수진 일부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학생인건비를 처리했다고 알려졌다. 다만 A 교수가 빼돌린 돈으로 자신의 신발, 골프 의류, 시계 등을 구입한 데 반해 감사에서 적발된 교수진은 사무용품이나 출장비 등 연구 편의 목적으로 빼돌렸다. 의도가 고발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는 이유로 교수진 일부는 경징계 처리됐다. 일부 교수진은 “정부와 기업체 연구를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걸 대비해서 쌓아둔 돈이다. 연구가 없는 시기에도 석·박사과정생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고 당시 항변했다.
한양대는 감사 뒤 교수가 개인 통장으로 학생인건비를 받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학교가 들여다 볼 수 있는 학교 소유 교수 개인의 가상계좌로 연구비를 입금한 뒤 학생인건비를 집행할 수 있도록 회계 처리 요건을 강화했다. 교수진의 감사 때 항변을 일부 받아들여 학생인건비로 책정된 예산의 20% 정도를 가상계좌에 예비비로 둘 수 있게 했다.
허나 최근에도 인건비 가로채기는 계속되고 있다. 수법은 진화됐다. 일요신문이 정보공개로 입수한 한양대 B 교수의 연구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B 교수는 산학 연구를 시작한 이래 이제까지 총 3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업체에게 연구비로 받았다. 연구비는 교수인건비와 학생인건비, 재료비, 활동비, 과제추진비, 연구수당 등으로 나뉜다.
B 교수가 진행했던 연구 최근 4년 평균 석·박사과정생 학생인건비는 연구비 총액의 약 30%였다. 감사 전까지 집행된 연구비 총액 약 30억 원의 학생인건비 30% 약 9억 원은 1차로 교수 실소유의 석·박사과정생 학생인건비 통장을 향했다. 교수는 9억 원을 고스란히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송금했다. 그런 뒤 60%인 약 5억 4000만 원은 석·박사과정생 개인 급여 통장으로 내보냈다. 40%인 약 3억 6000만 원은 자신의 통장에 남겼다.
감사 뒤 나온 한양대의 강화된 회계 처리 요건은 B 교수에게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학교는 감사 뒤 교수진에게 학생인건비 개인 통장 보관을 금지하고 학교가 관리 가능한 교수 가상계좌를 열어줬다. 감사 전까지 교수가 보관했던 학생인건비 40%는 쪼개졌다. B 교수는 학생인건비 20%를 예비비로 교수 가상계좌에 보관했고 나머지 20%를 또 자신 실소유의 박사과정생 학생인건비 통장에 뒀다. 문제는 여전히 학생인건비 통장을 B 교수가 관리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여기 입금된 80% 가운데 60%는 박사과정 학생의 개인 급여통장으로 입금해주고 나머지 20%는 여전히 학생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감사 이후 학생인건비 통장에서 교수 통장으로 송금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아예 그 단계를 생략해 버렸다. 챙길 수 있는 금액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과정은 오히려 간소화됐다. 그나마 석사과정생에겐 80%를 그대로 건네 그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박사과정생에게 돌아가야 할 학생인건비는 여전히 교수 손에 있다. 감사 전과 감사 뒤에도 박사과정생이 받는 돈은 같다. 교수가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그 누구도 알 길 없다.
연구수당도 문제다. 연구비 가운데 연구수당은 교수 실소유의 박사과정생 학생인건비 통장에 꽂힌다. 이 또한 어떻게 쓰이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복수 이상의 한양대 박사과정생은 “연구수당을 받아본 적도,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지 못한다. 박사는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라고 했다. 이런 돈은 회식 비용이나 지원되지 않는 출장, 교수 개인용 상품 구입, 각종 회원비에 사용된다고 전해졌다.
익명의 한양대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교수진은 감사에서 “석·박사과정생 등록금을 대신 내주려는 선의에서다”라고 해명했다. 목적은 선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 노력해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석·박사과정생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을 교수에게 빼앗겼다. 산학협력단에서 개인에게 지급했던 장학금도 일부 교수는 건드렸다. 한 개인이 성취한 산학장학금은 교수가 이끄는 석·박사과정생에게 공평히 분배됐다.
이 외에도 한양대와 계약된 유지보수운영(MRO) 사무용품업체의 상품을 구입하면서 연구와 상관 없는 상품을 재료비와 과제추진비로 처리한 흔적도 여럿 발견됐다. MRO 업체 영수증에는 보통 상품명과 시리얼 번호가 함께 나온다. 이를 증빙서류로 올릴 때 상품명을 지우거나 쓰지 않고 시리얼 번호만 적어 회계처리했다. 회계처리 부서 입장에서는 교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리얼 번호만 보일 뿐이다. 태블릿 PC와 냉장고, 캡슐 커피, 커피 포트, 화환 등이 구매됐다고 알려졌다. 교수진의 연구비 가운데 재료비와 과제추진비에서 MRO 사무용품 증빙자료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왔다.
이와 관련 한양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사건 관계자를 특정하지 않으면 실제 어떤 행위가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또 다른 교수 갑질 사례 “졸업했으니 학회 출장비는 네가…” 교수의 갑질도 나왔다. 박사과정생의 논문은 학회보다 국외 유명 저널에 소개됐을 때 가장 빛을 본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교수진은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 박사과정생의 저널급 논문을 축소시켜 학회에 발표케 하거나 학회용 논문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졸업에 임박한 박사과정생이 주로 그 대상이 됐다. 문제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사회로 나간 박사의 박사과정생 시절 논문이 뒤늦게 빛을 발할 때였다. 학회에서 초청을 받으면 교수는 학회 출장 비용을 박사에게 전가했다. “졸업했으니 네가 출장비 알아서 내고 가라”는 게 대부분 교수의 반응이었다고 전해졌다. 취재 과정에서 이와 같은 피해를 본 박사는 한둘이 아니었다. 한양대 출신 박사가 학위 받기 직전 쓴 논문과 학회 발표의 연결고리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