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창업을 했던 한 스타트업 창업자 A 대표의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관심을 두는 모양새지만 현업과의 온도차는 상당했다.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문화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기득권을 과하게 인정하거나 특허권이 인정되기 힘든 법 체계도 걸림돌로 꼽혔다. 스타트업 창업자 혹은 대표들은 작은 회사의 한마디가 불이익으로 다가올까봐 철저한 익명을 원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규제
공유경제 기업을 운영하는 B 대표는 “규제 때문에 사업을 지속하기 힘든 실정이다”라며 “공유경제의 효용은 인정하면서 이미 자리잡은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규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옛날에 정해진 법을 기준으로 내밀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수십년 동안 세월이 지나면서 낡았음에도 바꾸기도 어렵고 바꿀 생각도 없어보인다”라고 말했다.
B 대표 사례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미국에서 꽃을 피운 공유경제 서비스를 현지화해 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미 우버를 불법으로 낙인 찍고 퇴출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버를 퇴출시킨 상대는 바로 서울시였다.
2013년 우버가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 국토부는 유상운송, 운전자 알선행위 등이 불법이라고 판단해 고발 조치를 했다. 여기에 2014년 서울시가 쐐기를 박았다. 우버 서비스에 대한 신고 포상금 조례를 제공해 최대 100만 원의 포상금을 제공하는 ‘우파라치’ 제도를 만들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우버는 결국 돈을 받지 않으면 ‘유상운송’이 아니지 않냐는 논리로 공짜로 사람들을 태워주다 결국 철수한 바 있다.
우버와 비슷한 카풀 서비스인 ‘풀러스’도 최근 규제 이슈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카풀 서비스는 오전 출근시간(오전 5시~11시)과 오후 퇴근시간(오후 5시~오전 2시)에만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풀러스 측에서 출퇴근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입장을 내세워 사실상 24시간 카풀 서비스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택시업계에서는 ‘풀러스는 공유경제가 아니라 빨대경제다’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서울시 측도 ‘명백한 위법이며 당장 고발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강경한 방침을 밝혔다. 우버도 퇴출시킨 서울시가 또 다시 전쟁에 나설 경우 풀러스 입장에서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스타트업 회사들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획일적인 규제도 어느 정도 문제라고 보지만 우버는 지나친 면이 있었다. 규제를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피해가거나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너무 기술만 믿었다”며 “다만 우버나 풀러스 등 기존 택시기사 측에서만 생각하는 건 문제라고 본다. 기존 시장에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스타트업들도 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듯 규제 해결만 기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비껴갈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
2012년 학생들이 받아오는 가정통신문 등을 앱으로 전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해 입소문을 탄 ‘아이엠스쿨’도 표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013년 유사 서비스 앱을 내놓아 표절한 측은 어처구니 없게도 서울시교육청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쑥’이라는 유사서비스 앱을 2013년 1월 내놨다. 민간 서비스를 장려하고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민간 서비스 영역을 침범한 대표적 사례다.
이외에도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더치트’도 경찰이 ‘넷두루미’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넷두루미는 2014년 사이버캅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정부 부처에서부터 표절이 나올 정도이니 민간 기업끼리의 표절은 말할 것도 없다. 서비스 표절도 많지만 아이디어 상품 같은 경우 만들어 나오기가 바쁘게 유사 제품이 시장에 깔린다. 특히 중국발 표절 제품은 단속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쏟아져 들어온다.
한 디자인 업체 C 대표는 TV에 소개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던 제품을 출시했지만 대기업에서 바로 베껴 유통망에 깔아 망연자실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C 대표는 “당시 다급한 마음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그 즉시 모든 제품을 폐기처분했다”며 “당시 갑질, 중소기업 아이디어 뺏는 대기업 등이 논란이 컸을 때라 다행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액세서리 업체 D 대표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어 중국에 진출하려고 하니 이미 중국에는 똑같이 베껴서 시장에 유통되고 있더라. 단속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많아 일단 신고를 해두고 지켜보는 중이다”라며 “중국 시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품만 좋다면 중국보다는 선진국 시장 진출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 시장은 특허나 저작권은 지켜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특허법이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하고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 점도 지적 대상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특허를 인정받기가 너무 어렵다. 인정받는다 해도 처벌이 약하다”며 “대형 로펌에 있으면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대형 로펌 쓰면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라고 귀띔했다.
D 대표도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표절 상품 막으려고 대표가 다른 건 놔두고 법원 드나들면 사업도 망하고 얻는 것도 없다’고 조언한다”며 “스타트업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꾸려지기 때문에 법률적인 일은 대표가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얻는 것도 없는데 그냥 포기하고 법원 드나드는 시간에 차라리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상품 개발에 매진하는 게 나아 보인다”고 조언했다.
#정책
정부의 지원책에 대해선 말이 비슷했다. 대부분 지원 규모 자체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공유경제 사업 E 대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스타트업 업계에 돈이 엄청나게 풀렸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받아갔다. 마음만 있으면 도전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이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재 정부 정책에 아쉬움을 담은 시선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한 지방의회의원은 “스타트업은 되는 곳에 돈을 몰아줘야 한다. 지금은 정부나 지자체 예산 중 한 쪽 지원금을 받으면 받을 수 없고 예산도 상당히 한정돼 있다. 철저히 검증해 될 만한 곳에 돈을 지원해주되 지분 등을 받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
한국의 문화 혹은 정서를 꼽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스타트업 천국인 미국을 부러워하는 시선이 많았다. 미국의 정책 중 하나인 ‘Do No Harm’(해를 끼치지 말라)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는 소셜미디어 회사들에 선제적 개입이 아닌 사후적 개입으로 최대한 시장을 키우려는 입장을 취해 시장에 해를 끼치지 않는 데 집중했다.
콘텐츠 기업 F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음란 사진의 천국이 된 미국의 텀블러(새로운 유형의 블로그 서비스)가 만약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을 파악하기 쉽다. 우리나라에선 곧바로 서비스 중지 조치가 내려졌을 것 같다. 물론 음란 사진이 올라오는 건 문제다. 하지만 성장도 하기 전에 잘라버리기만 하면 거대한 서비스 기업이 나올 수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처음에 그런 문제가 없었을까. 유튜브는 지금도 저작권을 어긴 영상이 판을 친다. 처음에 단점부터 지적해 서비스를 죽여 놓았다면 지금의 유튜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시야를 크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F 대표는 한국에서 역차별당하는 사례도 토로했다. 그는 “만약 네이버에 저작권을 어긴 불법 영상이 올라오면 바로 정부 부처에서 조치한다. 반면 유튜브에는 지금도 불법 영상이 판을 친다. 조치할 의지가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저작권료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내야 하지만 외국 기업에게는 징수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서 A 대표는 “우리나라 IT회사가 글로벌 IT회사보다야 밑에 있는 건 맞지만 시각차는 그 몇 배는 나는 것 같다. 라인으로 일본, 동남아 시장을 잡은 네이버나, 중국 시장을 장악한 게임 회사 등 나름 대단한 회사도 있다. 그런데 구글, 아마존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업을 판단하면 어떤 기업이 그 기준을 맞출 수 있겠나. 인정할 것, 존경할 것은 해야 또 다음 IT 거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