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링 링’ 홍보 스틸 컷
‘블링 링’, 직역하면 ‘화려한 집단’으로 캘리포니아 칼라바사스 지역의 틴에이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범죄 집단이다. 사실 ‘범죄 집단’이라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좀도둑이라고 하기엔 대범하고, 강도라고 하기엔 소심했던 10대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0개월 동안 스타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들의 화려한 삶을 엿보았던 그들은 어쩌면 평범한 고등학생들이었고, 약간 유별난 구석이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뤄, 리더인 레이첼 리의 지휘에 따라 절도 행각을 벌였으며 이것은 심상치 않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일은 칼라바사스 하이스쿨에 다니던 레이첼 리가 인디언 힐스 하이스쿨로 전학을 가면서 시작된다.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레이첼 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광팬이었으며 학교에선 베스트 드레서로 인기 있었던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옮긴 학교에서 닉 프루고라는 남학생과 친해진다. 프루고는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와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리와 프루고는 패션과 SNS 취향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여기에 인디언 힐스 하이스쿨 학생회장이었던 다이애나 타마요가 가세했고, 레이첼 리의 예전 학교 친구였던 코트니 에임스도 함께 어울렸다. 에임스는 알던 오빠인 죠니 아자르를 데려왔는데 그는 이후 장물 처리를 담당했다. 에임스는 함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로이 로페즈도 끌어들였다. 여기에 집에서 마약을 하다가 쫓겨난 알렉시스 네이어스도 합류했다.
‘블링 링’의 중심 멤버는 여성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패셔니스타의 집이 주로 타깃이 되었다. 그들은 구글 지도를 통해 스타의 집을 알아냈고, 그들의 SNS를 통해 스케줄을 파악한 후 집을 비우는 날 밤에 범행을 저질렀다. 모든 결정은 레이첼 리가 했다. 그녀에겐 사람을 움직이며 이끄는 힘이 있었고, 닉 프루고가 주로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실제 ‘블링 링’ 멤버들
첫 번째 타깃은 패리스 힐튼이었다. 아이들은 “누가 문도 안 잠그고 외출하며, 집에 거금을 놔둘까”라고 자문한 후 이구동성으로 패리스 힐튼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힐튼은 도어매트 밑에 집 열쇠를 놔둔 후 저녁 파티에 갔고, 아이들은 최소한 힐튼의 집만 다섯 번 이상 털었다. 대부분 명품 브랜드 옷들과 현금을 가져갔는데, 대담하게 힐튼의 집에서 발견한 코카인을 침실에서 흡입하기도 했다. 힐튼은 한동안 자신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는데, 로페즈가 거의 200만 달러에 달하는 보석과 현금을 훔친 후에야 도둑 들었다는 걸 알고 신고했다.
배우이자 방송인인 오드리나 패트리지는 2009년 2월 22일,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던 날 밤에 도둑맞았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약 4만 달러 정도의 피해가 있었다. 패트리지는 보안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아이들은 잡히지 않았고, 이후 범행은 계속되었다. 미드 ‘하트 오브 딕시’로 유명한 레이첼 빌슨도 세 차례 이상 털렸다. 레이첼 리는 빌슨의 집 화장실을 유유히 이용할 정도로 침착하고 여유 있었고, 그곳에서 훔친 옷과 액세서리를 가지고 베니스 비치로 가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다.
당시 부부였던 올랜도 블룸과 미란다 커의 집도 타깃이었다. 레이첼 리는 미란다 커의 란제리가 탐이 났고, 프루고는 올랜도 블룸의 롤렉스시계 컬렉션을 들고 나왔다. 루이비통 가방과 미술품을 포함해 50만 달러 정도가 피해액이었다.
커플이었던 브라이언 오스틴 그린과 메건 폭스의 집도 레이첼 리가 폭스의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이유로 타깃이 되었다. 거기서 죠니 아자르는 시그 사우어 반자동 권총을 훔쳤는데, 이후 경찰에 의해 발각됐다. 최종 목표는 린제이 로한이었다. 레이첼 리가 가장 사랑했던 패셔니스타는 로한이었고, 그 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스타의 화려한 아이템들에 완전히 매료되어 거의 흥분 상태로 치달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꼬리가 잡혔다. 익명의 제보자가, 로한의 집 절도 사건에 레이첼 리와 닉 프루고가 관련되어 있다고 제보한 것. 경찰은 보안 카메라를 통해 확보한 물증을 토대로 프루고를 가장 먼저 체포했고, 이후 줄줄이 경찰서로 가야 했다. 처음엔 모두 부인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인정해야 했다.
영화 ‘블링 링’ 홍보 스틸 컷
조사 결과, ‘블링 링’의 다음 타깃은 마일리 사이러스, 잭 에프론, 힐러리 더프, 바네사 허진스 등이었다고. 재판에 넘겨진 아이들은 2~6년형을 선고 받았고, 대부분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보호 관찰 상태로 출소했다. 이후 그들은 대부분 학업을 잇거나 취업을 하면서 사회에 적응해나갔다.
스타의 집을 노려 일군의 틴에이저들이 약 300만 달러 정도의 현금과 귀중품을 훔쳤던 ‘블링 링’ 사건. 경찰은 “셀러브리티에 대한 경배에서 온 뒤틀린 모험심이 독버섯처럼 자라 조직범죄가 되었다”고 단정 내렸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파악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아이들이 집단을 이뤄 위험한 유희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회적 현상이었던 것. 이 지점은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고, 2011년엔 ‘더 블링 링’이라는 TV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2012년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엠마 왓슨 주연으로 ‘블링 링’을 연출했다. 흥미로운 건 실제 사건의 피해자 패리스 힐튼의 너그러운 마음. 그녀는 영화 촬영 장소로 자신의 집을 제공했고, 그 덕에 영화의 리얼리티는 한층 높아졌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