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통로. 고성준 기자
페이스북 페이지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는 지하철 5호선으로 통학을 하는 대학생들이 만든 커뮤니티다. ‘한숨소리’라는 이름처럼, 5호선 이용자들이 지하철을 타면서 느끼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페이지 운영자가 이용자들로부터 5호선에 관련된 제보를 받고 커뮤니티에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를 향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1~8호선, 경의중앙선 등 다른 지하철의 커뮤니티보다,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25일 현재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 페이지의 ‘좋아요’수는 5129명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 캡처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는 새로운 역명을 짓는 방식으로 5호선의 문제점들을 꼬집고 있다. 2018년 4월 19일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에는 “강동, 길동, 고덕을 초성으로 하면 ㄱㄷ이다. 이것은 ‘기달(기다려)’과 의미가 똑같으므로 15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5호선 ‘통학러’들이 강동역, 길동역, 고덕역을 ‘ㄱ,ㄷ’역으로 부른다는 뜻이다.
5호선 지하철 플랫폼 전광판. ‘상일동행’과 ‘마천행’ 문구가 보인다. 고성준 기자
그렇다면, 5호선 이용자들이 이들 역사를 ‘ㄱ,ㄷ’역으로 부르는 이유는 뭘까. 5호선 강동역은 다른 지하철과 달리 상당히 특이하다. 5호선 종착역인 ‘마천행’과 ‘상일동행’으로 지하철이 분기하는 장소가 바로 강동역이기 때문이다.
5호선이 ‘분기’한다는 점 자체에 불만이 폭주한다. 집이 고덕 방면인 5호선 이용자는 5호선을 이용할 때 ‘상일동행’ 지하철을 반드시 타야 한다. 만약 놓치면 배차시간이 두 배로 증가한다. 착각을 해서 ‘마천행’을 탔다면 강동역에서 대기해야 한다. 약 14분 이상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5호선 지하철역 노선도. 네이버 캡처
때문에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에는 ‘마천행’과 ‘상일동행’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2018년 4월 18일 한 회원은 “지하철 캠페인 영상에서 ‘고덕 접근’ 띄워주고 여성분이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하이힐이 벗겨지면서 ‘지하철에서 뛰면 위험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며 “하지만 ‘5호선을 이용하면서 상일동행, 마천행 분기 접근이 뜨면 안 뛰고 싶은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한 번 놓치면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밝혔다.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에 올라온 ‘5호선 문제점 총정리’
심지어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 측은 2017년 11월 4일 ‘5호선 문제점 총정리’라는 내용의 시물을 공유했다. 사진 속엔 “강동역에서 상일동, 마천행이 번갈아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배차 간격이 두 배로 증가한다”며 “그 결과, ‘2분 후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 문구를 보면 전부 괴짜가족(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다”라고 쓰여 있다.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 화면 캡처
무엇보다 ‘5호선 룰렛’은 5호선 이용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키워드다. 2018년 3월 9일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에는 “누군가에겐 아무 상관이 없고, 누군가에겐 열차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5호선 룰렛”이라는 게시물이 올라 왔다. ‘상일동’, ‘마천’, ‘통과열차’를 과녁을 연상하는 도표에 넣은 그림이다. 5호선 이용자들의 울분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 화면 캡처
5호선의 ‘웃픈’ 현실을 풍자한 게시물도 있다. 2017년 12월 6일 한 회원은 “와우, 놓쳐도 이득이네요. 맨날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올렸다. 사진은 지하철 플랫폼 전광판에 5호선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을 담았다. 다른 회원은 2018년 3월 25일 “술 먹고 첫차 타고 가려다 청구역에서만 21분을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상일동행’과 ‘마천행’ 분기에 따른 분노를 재미있게 풀어낸 게시물들이다.
5호선 지하철 노선도. 포털사이트 다음 캡처
5호선 지하철 역사엔 올림픽공원역(한국체대)를 제외하고 대학교와 인접한 곳이 없다. 5호선 ‘통학러’들이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까닭이다. 2018년 1월 29일 ‘5호선 통학러들의 한숨소리’의 한 회원은 “서울 명문대의 장점은 ‘간판 클라스’, ‘부러움을 산다’는 것이다”라며 “하지만 5호선 통학일 경우, 한체대가 아닌 이상 거의 환승해야 한다. 5호선 환승은 ‘막장’같다. 단단한 체력을 요구한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다른 회원은 2018년 3월 3일 “인 서울 대학이 5호선 거주자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글을 통해 대학별 통학 방법을 밝혔다. 특히 성균관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겪는 불편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내용이 이목을 끌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성균관대: 동대문발암문화공원역에 환승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 경희대: 회기역이 5호선과 호환이 안 된다. 5호선 서부는 발암같은 1호선 환승을 필요로 한다. 한국외대: 외대앞역도 5호선이 닿지 않는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안내문구. 고성준 기자
‘환승’은 5호선 ‘통학러’들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다. 5호선 역사가 서울 시내 주요 대학교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학교에 갈 때마다 환승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5호선 통학러’들이 새로운 역명으로 ‘지옥환승역’을 풍자하는 배경이다.
5호선 ‘통학러’들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동대문발암문화공원역’으로 부른다. 2017년 12월 8일 한 회원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호선-4호선 환승이 ‘헬’인 이유”라며 “시민들이 5호선 동부에서 서울역(직장인), 숙명여대(대학생), 명동(대규모 상권) 방향으로 가기 위해 운집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4호선 북부에 있는 캠퍼스 상권(대학로, 한성대, 성신여대, 길음 등)으로 가기 위해 4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유일무이한 환승역이다”라고 새로운 역명 짓기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다른 회원 역시 2017년 12월 11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적이 있었는데 을지로4가역을 이용하지 않은 내가 원망 스럽다”고 밝혔다. 5호선 이용자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할 때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지하철 2호선, 4호선, 5호선이 만나는 ‘매머드급’ 환승역이다. 기자는 4월 23일과 24일 오후 5시~7시경 이틀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찾았다. 4호선과 5호선 방면 환승 통로가 붐비는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승객들은 몸싸움을 벌였고, 주요 대학가를 지나자 승객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종로3가역 환승통로. 고성준 기자
5호선 ‘통학러’들은 ‘종로3가역’을 ‘X로3가역’으로 부른다. 종로3가역은 1호선, 3호선, 5호선이 만나는 곳이다. 1월 21일 한 회원은 “종로3가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왕십리역 등을 환승이 매우 불편한 역”으로 분류했다. 실제로 5호선 이용자가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려면 도보로 약 300m 이상을 걸어야 한다.
결국 5호선 이용자들, 특히 ‘통학러’들이 만들어낸 신기방기한 역명 이면에는 지하철만이라도 편하게 타고 싶은 기대감과 원망 섞인 한숨소리가 안타깝게 공존하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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