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김해시지부는 지난해 12월 시청사 외벽에 “시의원님! 반말 그만하세요”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 연합뉴스
한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지방의회는 그들에게 작은 왕국”이라면서 “자기가 조선시대 고을 수령쯤 되는 줄 알고 행동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중앙 정치인들의 갑질 사례는 비교적 외부에 잘 알려져 여론의 질타를 받지만 지방 정치권의 갑질 사례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전북도의회 정 아무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도의원은 지난 2015년 자신이 속한 상임위원회 여직원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정 의원은 해외출장에 동행한 해당 여직원에게 새벽에 컵라면을 끓여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해당 여직원 좌석을 발로 차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봉을 물으며 ‘그만큼 일은 하느냐’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지속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해당 여직원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져 2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북도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사건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갑질신고센터까지 설치했다”면서 “현재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일반 공무원들보다 의회를 지원하는 공무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시의회의 경우는 의원 13명 중 6명이 불법도박과 공금횡령, 성추행 등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런 의회는 존재 가치가 없는 의회’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 공무원 노조는 ‘시의원님! 반말 그만하세요’라는 대형 현수막을 청사 외벽에 내걸어 화제가 됐다. 김해시 노조는 시의원들이 툭하면 내뱉는 반말이나 하대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밝혔다.
김해시 노조 관계자는 “그때 워낙 화제가 됐으니까 이후 확실히 (의원들이) 조심하는 모습은 보이고 있다”면서도 “사람이 한 번에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계속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이 시의원의 반말이나 막말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의원은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런 권한을 이용해 얼마든지 공무원을 괴롭히고 압박할 수 있다. 공무원 분들이 참다 참다 노조를 찾아와 그런 사례들을 하소연하시더라”고 설명했다.
시의원들이 반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초선 때는 공무원들에게 반말을 안 하다가 몇 년 지나면 반말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 씁쓸하다”면서 “‘의원이 반말 하고 몰아붙이면 공무원들이 더 요구를 잘 들어주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는 의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한 공무원은 “시의원 지역구 사업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무감사 때 불필요하게 많은 자료를 요청해서 공무원을 골탕 먹이는 경우도 있다”면서 “시의원이 공무원을 골탕 먹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몇 번 괴롭힘 당하고 나면 담당 부서장이 ‘그냥 해줄 수 있는 거면 해줘라’라고 해서 해 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심지어 어떤 시의원들은 신분이 불안정한 계약직 공무원의 약점을 이용해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계약이 연장되겠냐’면서 사실상 협박을 하는 사례도 있다. 계약직 공무원들은 시의원들의 압박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은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 없지만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지방의회의 견제를 받는 자치단체로서는 지방의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이 특정 계약직 공무원의 업무능력을 문제 삼으면 재계약을 무산시키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공무원의 경우도 지방의원이 승진까지 좌지우지하기는 어렵겠지만 보직 이동 등에는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제가 근무하는 구청의 경우 원래 구의원들이 상임위별로 공동 사무실을 사용했는데 개인 사무실을 달라고 요구해서 현재는 개인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청사가 낡아 공무원들은 서로 의자가 닿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고, 민원인들도 청사가 좁아서 불편해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뻔히 아는 구의원들이 자기들에게만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개인 사무실을 요구해놓고는 막상 사무실을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노조 관계자는 “지적사항이 있더라도 구정질문이나 의회감사 등 절차에 따라 해야 되는데 아무 때나 담당자를 호출해 이야기하거나 휴일에도 담당자를 이리 오라 저리 오라 불러내는 경우도 많다”면서 “구의원들이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얼마 전까진 일반인이었던 분들이니까 행정에 대해 잘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자질이 부족해 오히려 행정에 방해가 된다고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의원들은 매년 외유성 해외출장에 대한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다. 지방의원 해외출장에 동행한 경험이 있는 한 공무원은 “말이 선진문물 견학이지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정이 대다수였다. 해외출장에서 본 것을 행정에 적용하는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면서 “연수 보고서만 봐도 대부분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자료들을 짜깁기한 것 아닌가. 왜 매년 비판을 받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것인지 우리도 의문이다.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서울시장이나 지역 국회의원이 누구인지는 아시는 분들이 꽤 있지만 자기 동네 구청장이나 도의원, 시의원, 구의원이 누군지 아는 일반 국민은 드물더라. 그만큼 지방의회가 여론의 감시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