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드루킹’ 폭풍우가 찾아왔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끄떡 없다. 여기에 야당은 ‘허위 여론조사’를 앞세워 물타기를 시도 중이다. / 사진=(좌)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우)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6~20일 전국 유권자 2502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0%p),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67.8%를 기록했다. 그 전 주의 여론조사보다 긍정평가는 오히려 1.0%p를 오른 것이다. 조사가 이뤄진 16~20일은 드루킹 사건이 막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사퇴(16일)한 직후로 민주당과 청와대가 후유증에 시달리던 시점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게다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대해 수사 주체를 묻는 리얼미터 여론조사(지난 2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9701명 대상, 500명 응답, 5.2% 응답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에서는 ‘특별검사까지 도입할 사안은 아니며 검찰수사도 충분하다’라는 응답이 52.4%, ‘검찰수사로는 부족하며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38.1%, ‘잘모름’이 9.5%로 나타나, 특검을 주장하는 야당에 불리한 상황이 펼쳐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슈를 극대화시켜 고지를 선점하려던 야권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부·여당의 지지율은 끄떡없었고, 야당은 오히려 당황했다. 여론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상황 반전을 노렸다.
그는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갤럽 및 포털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홍 대표는 “(리얼미터의 ‘드루킹 사건 수사주체’ 여론조사) 로데이터를 보면 응답률이 5.2%다. 여기서 응답한 500명 중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277명”이라며 “민주당 지지자가 55%가량 응답하는 여론조사에서 이것이 국민 여론인가, 민주당 여론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홍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국당의 지지도가 민주당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온 여론조사를 저격했다. 이는 한국갤럽이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조사해 20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이며, 이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도는 12%에 그쳐 민주당(50%)에 크게 뒤처졌다(전국 성인 1003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홍 대표는 ‘한국갤럽’이라는 특정 업체명까지 언급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미국갤럽에 문의한 결과, 한국갤럽이 자신들의 상표를 강탈했다고 표현하더라”며 “한국갤럽이 마치 한국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 행세를 하고 있는데, 상표를 도용한 여론조사 기관이 어떻게 신뢰성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안 위원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응답률 2~3%짜리 ARS 여론조사, 교묘하게 구성된 질문과 조작된 예시의 순서 등으로 저들이 필요한 결과를 만들고 필요할 때 공개해주는 방식으로 여론조작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부실 여론조사 회사는 여론조작의 공범이다. 특검 수사대상에 넣어서 같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얼미터의 ‘드루킹 조사 주체’ 여론조사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리얼미터 측은 “(홍 대표의 500명 중 277명 주장은)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라면서 “해당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 응답자는 98명이고 한국당의 지지율은 19.6%”라고 설명했다. 즉, 여론조사에 응답한 응답자들 가운데 한국당 지지자의 수가 민주당 지지자의 수보다 적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당연한 것으로 민주당 지지자들만을 대상으로 의도한 여론조사는 아니란 뜻이다.
또한, 안 위원장이 “응답률 2~3%짜리 여론조사”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리얼미터 측은 “정치인과 일부 언론은 여론조사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응답률과 조사방법, 특히 자동응답의 문제를 사실상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응답률이 중요한 경우는 조사에 참여한 집단과 거절 집단이 해당 조사의 내용과 관련해 체계적으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다. 유의미한 수준으로 서로 다르지 않으면 응답률이 0.001%라 할지라도 조사결과의 정확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리얼미터 측은 일부 야권 정치인들이 이같이 여론조사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방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리얼미터는 이 문제에 대해 웃어넘기고 있다”면서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여론조사기관으로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야권은 지지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되자 ‘허위 여론조사’라는 또 다른 역프레임을 만들어 상황 타개를 시도하는 형국인데,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두고 ‘자충수’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김기식-드루킹’으로도 흔들리지 않자 애먼 여론조사기관을 탓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론조사 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조작을 주장하는 건 이판사판으로 죽든지 살든지 양자택일을 하는 최악의 수를 던진 것이다. 야당은 그들의 전략전술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한국당의 자기 혁신, 바른미래당의 미래 비전, 이런 것들이 불명확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당에 대해 반대만을 위한 반대만 하고 있다. 국민들은 (김기식 전 원장과 드루킹에 대한) 비판은 비판이지만 그래도 한국당·바른미래당 지지는 못하겠다는 정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는 여야 할 것 없다. 여야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는 근거로 삼고, 불리하면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소수의 응답이 전체 국민의 여론인 것처럼 호도되는 것도 분명하다”면서 “여론조사를 너무 맹신하거나 너무 무관심한 것 둘 다 문제가 있다. 한국의 여론조사는 좀 더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