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금융권 세무조사에 잇달아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4월 초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요원들이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 투입됐다. 한국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는 2012년 이후 약 6년 만에 실시되는 일반적인 정기세무조사지만 금융권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국세청은 약 3개월로 예정된 이번 조사에서 대출채권에 대한 대손처리 적정성 여부와 특수관계자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 준 것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직원들에 대한 주택자금이나 콘도미니엄 무료 이용권 등을 주는 방법으로 급여를 보충해 준 것은 없는지, 여신채권포기액의 접대비 해당 여부, 외자 운용 수익금 산정과 법인세 납부 과정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행의 경우 시중 금융권과 달리 세무 및 회계 부분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 세무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정기조사인 데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금융권이 긴장하는 이유는 한국은행의 경우 혼자만 따로 조사받은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처음으로 실시됐는데, 국세청이 한국은행 세무조사를 실시할 때면 통상 다른 시중은행들과 금융사들을 비슷한 테마로 묶어 함께 조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국세청은 이번에도 일부 금융권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 대손상각적정 여부 등 관련 항목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뿐 아니라 다른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몇몇 은행은 이미 현장조사가 시작됐거나 곧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국세청은 KEB하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 오는 6월까지 진행한다. 국세청은 최근 KEB하나은행 본사에도 서울지방국세청 인력을 투입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EB하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 역시 2014년 이후 약 4년 만에 실시되는 정기세무조사로 파악됐다. 하지만 금융권은 최근 KEB하나은행이 각종 특혜 논란과 비리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은 만큼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아이카이스트 특혜대출 의혹과 전 하나금융 사외이사가 대표로 있는 회사의 물품을 부당하게 구입했다는 의혹, 중국 랑시그룹에 대한 특혜투자 의혹 등 3가지에 대한 검사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금감원이 조사 결과를 형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기면서 일정 혐의에 대해 확인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KEB하나은행 입장에서도 이번 조사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행장의 연임 논란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또 다시 각종 특혜 의혹과 채용 비리 등 잇단 혐의로 사정당국의 조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국세청과 악연도 있다. 국세청은 2008년 3월 하나은행 통합 과정에서 이뤄진 ‘역합병(적자법인이 흑자법인을 인수하는 형태의 합병)’을 문제삼아 1조 70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 전력이 있다. 이 세금은 3개월 뒤 국세청이 과세통지를 스스로 무효화하면서 없던 일이 됐지만 하나은행은 한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외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외환은행이 2004년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쌓은 대손충당금 문제를 짚어내 20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다. 하지만 이 역시 외환은행의 불복심사가 받아들여져 세금을 되돌려 줬다. 2014년에도 세무조사 후 추징됐던 135억 원가량의 세금을 소송전을 통해 돌려받았다.
한국은행이 2012년 이후 6년 만에 정기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 전경.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지방은행 중에서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대구은행이 세무조사 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대구은행이 일명 ‘상품권깡’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에 대해 국세청이 탈세 등의 혐의로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할 경우 사회공헌활동과 직원 복리후생비 등의 명목으로 지출된 수억 원의 상품권 구입 비용 중 빠진 부분, 비용처리가 되지 않은 부분 등 은행의 탈세 전반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박인규 전 회장 등 대구은행 간부 6명의 사무실과 자택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박 전 회장 등은 상품권을 활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다시 팔아서 현금화했다는 것이다.
카드사 등 2금융권 일부도 국세청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일례로 국세청은 지난 2월 말 서울지방국세청 요원들을 우리카드에 보내 세무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2013년 4월 우리카드의 설립 이후 첫 국세청 세무조사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은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우리카드가 대출채권에 대한 대손처리를 적정하게 하는지 여부와 특수관계자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하는 등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듯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중은행뿐 아니라 카드사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금융권은 한동안 세무조사 대상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경영방식과 회계처리방법 등을 채택하고 있는 만큼 일괄적으로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회계처리와 대출 등이 문제가 될 수 있어 긴장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