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사무실(충정로 미동아파트2층)에서 김태완 위원장을 만나 특수직 종사자인 택배 기사들에게 노동조합 설립필증이 나온 이유와 택배기사들의 어려움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종현 기자
― 전국택배연대노조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택배 노동권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택배 기사가 배송 일만 하면 하루 8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터미널에서 분류 작업(물량을 하차하고 주소지별로 분류한 뒤 택배차에 싣는 과정)에 5~6시간 정도를 소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류 작업엔 임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높아졌다. 또 업무 과중으로 2016년 두 명의 택배 기사가 돌아가셨다. 회사가 나서지 않으니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찾아가자며 ‘택배 기사 권리 찾기’란 네이버 밴드 모임을 만들었다. 결국 법적으로 보장받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판단에서 지난해 노조를 결성했다.”
― 분류 작업에 별도의 인력을 투입하는 곳은 없나.
“우체국 택배의 경우만 그렇다. 그곳은 그나마 분류 작업을 담당하는 별도의 직원이 있어 택배 기사들은 아침에 출근해 바로 배송을 시작하면 된다. 늦어도 9시엔 출발해 3~4시면 배송 업무가 끝난다. 집하하고 상차하고 퇴근하면 6시다.”
― 국내 택배 물량이 23억 상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대면 배송은 20%에 못 미친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맞벌이 가구가 대부분이다. 집에 계시는 분이 없다는 말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택배 시스템 상 문제다. 터무니없이 낮은 배송 수수료와 임금 없이 분류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택배 기사들이 수익을 내려면 하루 평균 250건 이상을 배송해야 한다. 시간당으로 치면 30~40개 정도다. 2분에 1개 이상 배송해야 하는 셈이다. 차 세우고 물건 찾고 고객 집에 벨을 누르고 물건을 주고…이 과정이 2분 안에 끝나지 않는다.”
― 대면 배송이 이뤄지지 않아 상품 분실·훼손으로 서로 감정싸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면 배송 때문이 아니다. 상품 분실·훼손 시 모든 책임은 택배 기사가 진다.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주로 주소 오류 때문이다. 고객이 ‘집 앞에 두고 가세요’ 해서 놓고 갔는데 고객이 ‘물건을 못 받았다’고 한다. 찾아보니 주소가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걸 가지고 ‘왜 그따위로 배송 하느냐’고 하면 억울하다. 또 다른 경우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집 앞에 상품을 뒀는데 분실된 경우다. 고객이 ‘내가 언제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했냐’고 발뺌해 문제가 생긴다. 얼굴을 안 봤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택배 기사들은 자기 구역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찰을 없애려고 한다.”
― 업계에선 “택배 표준 약관대로 하면 하루 배달량의 반의반도 못한다”는 소리도 있던데.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매뉴얼대로 하면 100개도 배송하지 못 한다. 해외 사례와 자꾸 비교한다. 일본은 100개를 들고 나가서 10개도 배송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도 물건을 들고 나가서 고객이 ‘집에 없다’고 하면 다시 갖고 가 ‘언제까지 회신이 없으면 반송한다’고 고지한다.”
― 택배 기사들의 근무 현실은 어떠한가.
“오전 7시부터 평균 14시간 정도 일한다. 성수기엔 밤 12시를 넘는 경우도 많다. 식사는 밖에서 간식으로 때운다. 택배비가 2500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평균 택배비가 2150원이다. 배송 수수료는 800원 정도였는데 최근엔 대리점화 되면서 대리점 수수료를 제외하면 600~700원 꼴이다. 매출을 600만 원 찍었다고 해도 실수령액은 300~350만 원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택배기사들의 하루는 고되다. 김태완 위원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봉 1억’ 택배 기사들도 화제가 됐다.
“보통 집하를 하는 사람들이거나 대리점 소장들이 대부분이다. 지점마다 1~2명 씩 500여 명 정도 된다. 극소수다.”
― 최근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 진입을 막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택배 기사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것이다. 분실과 훼손의 책임은 택배 기사가 다 져야 하니 각오하고 단지 내에 상품을 풀어 놓은 것이다. 물론 고객들은 이런 처지와 사정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 무산됐긴 했지만 택배 업체가 아파트 입구 거점까지 물품을 배송하면 실버 택배 요원이 주택까지 방문 배송하는 ‘실버 택배’를 정부가 제안 했는데.
“실버 택배 얘기가 나왔을 때 회사는 대리점에 책임을 지었다. 대리점이 돈이 어디 있나. 대리점은 택배 기사들 수수료가 전부다. 결국 택배 기사들 주머니에서 나가게 된다. 또 실버 택배가 생기면 해당 아파트가 배송 구역인 기사는 밥벌이를 뺏기는 것이다.”
―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택배 기사들이 서둘러서 배송하지 않아도 되는 적정 단가를 만들어줘야 한다. 또 지상 주차장에 제한을 둘거면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게끔 높이 제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 택배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 됐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데 국민 서비스가 잘 되도록 시스템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재벌 택배사가 알아서 하도록 맡겨 놓았고, 재벌 택배사는 택배 기사들에게 책임을 무는 구조가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으로 드러난 것이다.”
― 실제 최근 CJ대한통운은 업계 사상 최초로 연간 취급 물량 10억 상자를 돌파했다.
“CJ대한통운이 물량 46%를 가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이 자본력과 시장 주도력을 갖고 있고, 이익단체인 물류협회 또한 CJ대한통운이 하고 있다. 2015년부터 CJ대한통운이 본격적으로 저단가 정책을 시작했다. 당시 업계가 불황이었는데 CJ대한통운만 영업이익이 유지 됐다. 회사가 투자해 이익을 얻은 게 아니라 ‘내부 쥐어짜기’로 물량을 확대한 결과다. 재벌기업에게 책임을 다 맡기면 안 된다. 산업을 관리해야 하는 몫은 국가에 있다. 정부가 택배산업 시스템을 잘 정립해야 한다.”
― 구조적인 문제라는 말인가.
“그렇다. 택배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 다산신도시 같은 상황이 앞으로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적정한 수수료가 책정되어야 한다. 일본과 독일의 택배는 직영이다. 직영으로 하지 않으면 사실상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힘들다고 본다.”
김경민 기자 me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