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낯선 이름 전종서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데뷔 전 활동 이력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요즘처럼 SNS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베일에 가려진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는 연출 영화 ‘버닝’(제작 파인하우스필름)의 여주인공이다. 신인은 물론 기성 배우들도 너나없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연출자로 꼽는 이창동 감독의 선택을 받아 주연 자리를 차지했다. 첫 영화에서 만난 상대역의 면면도 화려하다. 배우 유아인과 가장 유명한 한국계 배우로 통하는 스티븐 연이 그의 상대역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종서, 그는 누구일까.
영화 ‘버닝’에서 주연을 맡은 신인 전종서. 사진=CGV아트하우스
# 오디션 통해 ‘버닝’ 발탁…“원석 그 자체로 나타났다”
전종서는 1994년생으로 올해 23살이다.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 15학번. 이 두 가지 정보가 지금까지 그에 관해 알려진 이력의 전부다. 연기자를 꿈꾸면서 대학에 진학한 그는 비슷한 목표를 가진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무명 혹은 신인의 시기를 보내지 않은 채 단박에 영화 주연으로 발탁됐다. 실력과 운이 동반 작용하지 않았다면 잡기 어려운 기회다.
이창동 감독은 2010년 내놓은 영화 ‘시’ 이후 오랜 시간 차기작을 구상해왔다. 그러다 2년여 전 ‘버닝’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유아인이 주연으로 확정되면서 여주인공을 누가 맡을지 여부에 영화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유명 여배우들까지도 이 역할을 욕심낸 것도 사실. 실제로 감독이 몇몇 여배우와 출연 논의를 위해 만날 때마다 관련 내용이 곧바로 기사화될 정도로 관심은 뜨거웠다.
그런 이창동 감독은 신인을 발탁하기 위해 오디션에 주력했지만 오랫동안 적당한 인물을 발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종서는 그런 상황에서 오디션 막바지에 나타나, 단박에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종서를 처음 본 순간,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얼굴이 나타났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는 게 이창동 감독의 설명이다.
전종서는 촬영을 모두 마치고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도 ‘버닝’에 출연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최근 열린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만난 그는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과 한 자리에 있는 현실이 여전히 낯선 듯 자신에 쏟아지는 여러 질문에도 “너무 긴장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데뷔작인 ‘버닝’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노출을 감행했음은 물론이다. 다음은 이창동 감독의 설명이다.
“여주인공 해미는 시나리오가 존재하긴 해도, 그 역을 맡을 배우가 와야 그 인물이 완성된다. 때문에 해미를 찾는 심정으로 여러 배우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전종서를 본 순간, 용모나 감성에서 해미의 모습이 보였다. 해미처럼 전종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전종서여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원석 그 자체로 내 앞에 나타났다는 마음이 든다.”
영화 ‘버닝’ 제작발표회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주연배우들. 왼쪽부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사진=CGV아트하우스
‘버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 청춘의 이야기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인 종수(유아인 분), 어릴 때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 해미, 그리고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이 주인공이다. 해미는 벤을 종수에 소개하고, 이들을 집으로 초대한 벤은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가 본격화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물론 이야기도 모호하지만 유아인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라고 ‘버닝’을 정의하며 “촬영하면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전종서도 이에 동의한다. 전종서는 “해미라는 인물 역시 누구보다 미스터리하다”며 “촬영 전 마임을 배우면서 그런 감정을 더 잘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전종서가 ‘버닝’에서 소화하는 파격적인 연기도 관심의 시선을 더한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 않아 어떻게 표현됐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이르지만 신인으로서는 쉽지 않았을, 노출을 겸한 연기도 펼쳤다. 이창동 감독은 이를 두고 “연기력을 인정받고 경험이 많은 어떤 배우라고 해도 하기 어려운 장면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서너 번 나온다”며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을 전종서가 보여줬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그런 전종서의 도전 과정은 앞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데뷔한 김태리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개봉한 ‘아가씨’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김태리는 일제강점기 신분 차가 확실한 두 여성이 서로를 향한 욕망과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소화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함께 주연한 김민희와 파격적인 노출 연기도 펼쳐 관객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태리 역시 전종서와 마찬가지로 박찬욱 감독이 오랜 오디션 과정 끝에 발탁한 신예였다. ‘아가씨’ 개봉 전까지 과거 이력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전종서와 겹친다.
이들의 공통점은 더 있다. 전종서는 앞서 김태리와 마찬가지로 영화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버닝’은 5월 8일 프랑스 휴양도시 칸에서 개막하는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진출했다. 특히 칸 국제영화제는 이창동 감독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감독이 앞서 내놓은 두 편의 영화 ‘밀양’과 ‘시’가 나란히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두 번 모두 수상 성과를 냈기에 이번 ‘버닝’을 향한 관심도 높은 상황이다. 그 작품을 대표하는 얼굴로 나선 전종서는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 영화제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