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 최준필 기자
[일요신문] 1994년부터 대표이사로 한샘을 이끌어 온 최양하 회장이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2021년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최 회장은 8번째 연임이 결정되면서 ‘샐러리맨 신화’를 이어나가게 됐다. 그의 장기집권 비결은 무엇보다 실적이다. 한샘은 10년 전인 2008년 5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2조 원 이상으로 매출을 신장시켰다. 사업분야 또한 확장을 거듭해 왔다. 주방가구 전문 기업이던 한샘은 인테리어, 건축자재, 온라인 판매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부턴 중국에 매장을 열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같은 한샘의 성장 동력으로 최 회장은 ‘사람’을 꼽았다. 지난해엔 사회를 떠들썩 하게 한 ‘성폭행 논란’에 대한 그의 견해도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경력직으로 한샘에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입사 스토리를 말해달라.
“당시 한샘에 계시던 대학 선배의 추천으로 한샘에 오게 됐다. 첫 직장이던 대우중공업은 1000억 원대 대기업이었고 한샘은 15억 원대 작은 회사였다. 당시에는 율산과 같은 신흥재벌 회사가 생기던 때였다. 마침 큰 회사에서 관료화돼 간다고 느끼던 때에 스스로 재벌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샘에 합류하게 됐다. 재벌까지는 아니고 내 손으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15억 원대 회사에서 목표했던 1조를 넘어 2조원 회사로 성장시켰다.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내 회사, 내 일’이라고 생각한 덕분이다. 최근 스타트업이 유행하면서 독립해 내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젊은 시절 연봉 500-1000만원 더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신입사원들이 당장 직장을 편하게 다니는 것보다 2-3년 후 능력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샘만의 인재 육성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사실 제품은 다 비슷비슷하다. 우리 업의 특성상 제품이 반, 이후 영업, 시공, 사후 관리가 반이다. 한샘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탁월한 성과에 도전하고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확실히 보상해 주는 것이 한샘의 문화다. 특히 영업에서는 나이, 경력과 상관없이 성공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업만이 아니라 스텝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20년 전 본인이 개발한 부엌가구가 히트를 쳐 인센티브로 1억 원을 받은 디자이너도 있었다. 한샘은 한샘인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부엌가구, 인테리어 가구, 건자재 모두 자칫 사고로 이어지는 아이템이다. 한샘은 영업사원, 시공협력기사 모두 회사가 책임지고 교육시키고 육성한다.”
―한샘의 인재상은 무엇인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탁월함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부엌가구로 시작한 한샘이 토탈 홈인테리어 회사로 자리매김한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인테리어 사업’이었다. 1997년 론칭한 인테리어 사업으로 한샘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다른 기업들은 인원 감축에 나서는 등 소극적인 경영을 이어갔다. 한샘은 과감하게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했고 그 결과 5년 만에 인테리어 가구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온라인 비즈니스, 건자재 비스니스 등 고객의 니즈를 한 발 앞서 간파하고 도전해 변화를 주도하는 한샘인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 최준필 기자
“앞서 말한 사람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공간’을 판매하는 것이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다. 한샘은 1970년 창업 당시부터 단품이 아닌 ‘공간’을 단위로 판매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부엌에는 아궁이가 남아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한샘은 싱크대, 수납장 같은 단품이 아닌 ‘시스템 부엌 전체’를 선보이면서 우리나라 부엌의 현대화를 선도했다고 자부한다.
이후 1997년 가정용 가구로 사업을 확대할 때도 침대, 소파가 아니라 ‘침실’, ‘거실’을 단위로 전시, 판매해 고객에게 공간 전체를 제안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고객들이 여러 브랜드의 단품을 조합해 한 공간에 넣었을 때, 공간 전체의 통일성이 깨질 수밖에 없다. 한샘은 디자이너가 엄선해 꾸민 공간 전체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제안해,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점차 업계 전체에 퍼지고 있다.”
―홈인테리어 시장에서 한샘이 독보적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회사가 따라 하는 것도 많은데.
“공간을 제안하는 것과 더불어 ‘직시공’을 시도하려는 회사가 늘고 있다. 하지만 시공은 물건을 만들고 파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한샘은 한샘만의 시공 경쟁력을 바탕으로 명품 시공은 물론,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기존 30평 아파트 전체 수리를 위해서는 최소 20일 이상이 걸렸지만 한샘은 현재 1주일까지 줄였다. 자재를 공장에서 만들어와 현장에서 재단, 시공 과정을 최소화했다. 또 리모델링에 필요한 아이템을 한샘이 다 취급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 중 비는 시간이 없도록 시공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부엌에서 인테리어, 건자재로 확대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현재 하고 있는 아이템으로도 국내에서 10조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그 이상은 해외 시장에 달려있다. 지난 해 상해에서 중국 B2C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성과를 내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샘이 제안하는 컨셉은 중국 소비자들도 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분명 승산이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소파 회사는 소파만, 부엌 회사는 부엌만 판매한다. 집 안에 들어가는 모든 아이템을 한 번에 통일성 있는 공간으로 제안하는 회사는 한샘뿐이기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는 정상화 될 것으로 보고있다.”
―25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IMF 때도 힘들었지만 지난 해 사건이 가장 힘들었다. 사내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번져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일, 성장을 향해 달리는 동안 사회의 가치관이나 기준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게 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를 포함 경영진과 회사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기업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임직원의 상당수도 여성, 우리의 주 소비자도 여성인 점을 고려해 모성보호제도부터 강화했다. 임산부는 법정 근로시간보다 2시간 적은 6시간만 근무하고(법적 기준 _~12주 : 6시간, 12~36주 : 8시간, 36주~ : 6시간) 6시간이 지나면 PCOFF제가 시행된다. 육아휴직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고, 상암동으로 사옥을 이전하며 어린이집 정원도 70명으로 늘렸다. 그밖에도 임직원이 워라밸을 지켜갈 수 있도록 정시 퇴근 문화를 만들고 사내 상담실, 좋은 일터 만들기 위원 선발 등의 방법으로 직장생활 중 발생하는 어려움을 없애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 최양하 회장은 누구? 최양하 한샘 회장은 1979년 한샘에 입한 이후 15년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한샘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되며 국내 최장수(25년) CEO로 등극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주방가구 전문기업 한샘을 종합 인테리어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당시 1000억 원대 매출을 지난해 2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임기 동안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냈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