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대 116. 현재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다. 양당의 의석수 차이는 불과 5석이다. 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이번 재보궐선거는 ‘미니급’이 아니라 원내 1당과 2당 순위를 뒤바꿀 수 있는 ‘빅 매치(Big Match)’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수성을, 한국당은 탈환을 해야 하는 창과 방패의 결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6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의 움직임이 농번기를 맞은 농부들의 손놀림처럼, 한없이 바빠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 당직자들이 2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지방선거 슬로건 및 로고송 발표 행사에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공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재보궐선거, 예상외로 규모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월 27일 기준으로 6월 13일 지방선거 때 재보궐 선거가 확정된 국회의원 선거구는 △서울 노원병 △서울 송파을 △부산 해운대을 △광주 서구갑 △울산 북구 △충남 천안갑 △전남 영암·무안·신안 등 모두 7곳이다.
광역단체장 후보로 확정된 더불어민주당의 김경수(경남 김해을)·박남춘(인천 남동갑)·양승조(충남 천안병) 의원과 자유한국당 이철우(경북 김천을) 의원까지 사퇴하면 4곳이 추가돼 모두 11곳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30일 전인 5월 14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다음 달 14일 전 한국당 소속인 권석창(충북 제천·단양)·이군현(경남 통영·고성)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까지 이뤄지면 재보궐 선거가 진행되는 선거구는 모두 13곳으로 늘 수도 있다. 이들은 1, 2심에서 각각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진표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문재인 대통령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거물 정치인, 그리고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영입에 공을 들인 후보가 각각 나오게 된 서울 송파을이다.
민주당은 4월 24일 최재성 전 의원 공천을 확정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영입한 배현진 전 아나운서와 맞대결이 벌어지게 됐다. 홍 대표는 과거 한국당 우세 지역이었던 강남3구 중 한 곳인 송파을에서 민주당의 거물급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참신하고 당찬 인물 영입에 힘을 써왔다. 결국 배 전 아나운서를 데려왔다.
부산 해운대와 충남 천안갑도 원내 1당을 향해 사투를 벌이게 된 민주당과 한국당의 양당 대결이 뜨겁다. 해운대에서 민주당은 윤준호 부산시당 대변인을 단수 공천했고, 한국당은 친홍(친 홍준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에게 공천을 줬다. 충남 천안병에서는 민주당의 이규희 전 천안갑 지역위원장이 공천을 받았고, 한국당은 길환영 전 KBS 사장, 유진수 한국당 부대변인, 엄금자 전 충남도의원 등이 경쟁 중이다.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쓰러뜨려야 할 최대 승부처로 부산과 충남을 꼽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김경수 의원이 빠지는 경남 김해을도 수성을 노리는 민주당과 탈환하려는 한국당 간 대결 구도가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기찬수 병무청장,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 이광희 김해시의원, 정영두 전 휴롬 대표가 출마 채비를 하고 있고, 한국당에서는 서종길 경남도의원, 안상근 가양대 부총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충남 천안병도 민주당과 한국당 간 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양승조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류병국 충남도의원과 김연 민주당 충남도당 대변인, 장기수 전 충남청소년진흥원장이 후보로 꼽히고 한국당에서는 이창수 당협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충남 천안갑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필승 카드를 내민다. 민주당은 한태선 전 청와대 행정관과 이규희 전 천안갑 지역위원장이 본선 티켓을 놓고 경선 중이고 한국당은 길환영 전 KBS 사장, 유진수 한국당 부대변인, 엄금자 전 충남도의원 등이 “내가 적임”이라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울산 북구에서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경쟁을 벌일 태세다. 민주당에서는 이경훈 전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과 이상헌 전 울산북구지역위원장이 경선을 치른다. 한국당은 박대동 전 의원이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인천 남동갑에서도 민주당에서 맹성규 전 국토교통부 2차관이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한국당에서는 윤형모 변호사가 하마평에 오르는 등 이곳에서도 여당과 제1야당의 혈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서울 노원병에서는 민주당이 김성환 전 노원구청장을 공천했고 한국당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나설 것으로 점쳐졌으나 황 전 총리가 고사, 한국당은 새 인물을 물색 중이다.
한편 광주 서구갑, 전남 영암·무안·신안은 민주당의 텃밭인 만큼 한국당은 후보를 정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민주당 내 경선 경쟁이 치열해 집안 싸움이 심하게 난 상태다. 경북 김천에서는 한국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호남과는 정반대로 민주당이 한국당의 대항마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에서는 송언석 당협위원장의 공천이 확실시된다. 송 당협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이어 차관까지 지냈으며 국회에 입성할 경우,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당권 경쟁 방향타도 가늠
재보궐 선거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원내 1당 자리를 두고 벌이는 양강(兩强)의 전면전이기도 하지만 각 당 내부의 당권 경쟁 신호탄도 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시에 내부 정적들 간 경쟁도 함께 시작되는 다층 전투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오는 5월 11일 원내대표 선거, 5월 16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당내 선거 일정이 확정된 가운데 8월에는 차기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 차세대 주자가 8월 탄생하는 것이다. 차기 당권주자 후보군에는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 김진표·김두관 의원,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재보궐 선거 서울 송파을 후보로 나온 최재성 전 의원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3선 의원 출신인 최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시절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을 지냈다. ‘친문(친문재인)’의 핵심 인사로 분류된다. 최근엔 당 혁신기구인 정당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최 전 의원은 3월 말 송파을 출마 선언 기자회견 자리에서 ‘8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질문이 나오자 “정권교체보다 정권 재창출이 훨씬 더 힘든 길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요청되거나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마다치 않을 생각”이라고 응답, 당권 도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한국당에서는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뒤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당권 경쟁의 막이 이미 올라갔다고 보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조기 전대에서 선출되는 지도부는 2020년 4월에 있을 제21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혈전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4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뤄진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기자회견은 정치권의 주목도를 확 높였다. 충남 천안의 재보궐 선거 주자로 유력했던 그가 전격적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 무죄 선고를 받은 이 전 총리는 6·13 지방선거 또는 재보궐 선거 출마를 통해 정치적 재기를 노릴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언론과의 공식 석상에 선 것도 총리직 사퇴 이후 처음이었다.
그의 불출마 선언이 나오자 이완구라는 강력한 당권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 경계하는 홍 대표의 견제구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정치권의 해석도 줄을 이었다. 이 전 총리도 “한 번도 우리 당의 최고지도층으로부터 6·13 지방선거 출마에 대한 제안을 직접 받은 바가 없다. 천안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언, 이 같은 정치권 해석에 불을 지폈다.
이 총리는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묻는 말에는 “너무 앞질러 간다”고 말을 아꼈지만 “6·13 지방선거 이후 이런 것들(야권 통합과 당내 화합)을 이루기 위한 어떤 역할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역할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차기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줄을 잇고 있다.
홍 대표에 대해서도 이 전 총리는 쓴소리를 던졌다. 이 전 총리는 “홍 대표도 언행에 무거움과 무서움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가벼움은 절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당에서는 이완구 전 총리 외에 정우택 전 원내대표, 심재철 국회 부의장, 주호영 나경원 이주영 정진석 의원 등 4선 이상 중진들이 차기 당권주자 하마평에 올라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