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삼성증권 공매도 사건, 노조와해 문건 발견 등 삼성그룹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삼성독재’ 저자 이종보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이종현 기자
—박사학위 논문(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지배’에 관한 연구: 삼성그룹을 중심으로)도 삼성을 주제로 다뤘다.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하나의 사례를 통해 한국사회의 병폐를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 핵심이 삼성이라 생각했다. 재벌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그들 중 독보적인 존재인 삼성을 전면에 내건 연구는 없었다. 삼성의 문제를 바로 잡으면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데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 싶어 논문을 쓰게 됐다.”
—이후 ‘삼성독재’라는 책까지 쓰게 됐다.
“논문을 쓰고 난 후 여러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박사학위 논문은 전문적인 글이다 보니 어렵게 쓰여진 측면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는 삼성그룹 창립 80주년이 몇 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창립 80주년을 상상해보니, 그룹의 역사를 화려하게 포장한 행사가 많을 것 같았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치적만 부각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삼성 역사 80년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는 글도 필요하겠다 싶어 기획했다. 그러던 중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연루가 됐다. 그래서 예상보다 서둘러 쓰게 됐다. 삼성도 결국 이번 사태로 올해 창립 80주년을 조용히 지나갔다.”
—논문과 ‘삼성독재’ 쓰는 과정에서 삼성그룹 측에서 압력이나 회유, 협박은 없었나.
“그런 질문 굉장히 많이 받았다. 예전 삼성의 노조 파괴 문제가 많이 거론됐을 때 관련 책들이 사장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에는 삼성이 암암리에 횡포를 행해, 주변에서 그런 걱정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삼성 측에서 연락오거나 접촉하지는 않았다. 삼성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이슈화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조용히 사회적 관심을 받지 않고, 언론이 홍보해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소멸되어 가는 게 좋았을 거다. 출판사나 저자 입장에서는 삼성에서 대응을 해줘야 관심을 모으고, 판매에 도움이 됐을 텐데 전혀 없었다.”
—책의 핵심은 ‘삼성권력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재판 결과만 봐도 이재용 부회장만이 수감상태에서 벗어났다.
최근 불거진 삼성증권 공매도 사건, 노조와해 문건 발견 등 삼성그룹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삼성독재’ 저자 이종보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이종현 기자
“역설적으로 삼성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3권 분립에 따라 만들어진 시스템을 삼성이 아주 교묘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해야 할 사법기관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역할을 했다. 이에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에 대한 문제는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또한 사법권력을 넘어 존재하는 삼성권력을 해체하는데까지 나아가야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삼성권력의 해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삼성권력이라는 말은 ‘삼성’과 ‘권력’이 조합된 신조어다. 삼성이 권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기업으로서 기업가 정신에 따라 시장을 개척하고, 혁신을 가하고, 소비자의 생활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역할로서 고용창출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정치·사회·경제권력을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더 나아가 자녀에게 세습체제를 완결시켜 나가려고 사용한다. 삼성이 법과 질서를 왜곡시키는 것은 자녀들에게 그룹을 물려 주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삼성권력의 해체는 이 단어에서 ‘권력’을 떼어내고 ‘삼성’만 남게 하는 것이다. 기업의 정상화다.”
—실제 최근 삼성증권 공매도 사건,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에버랜드 토지 공시지가 조정, 노조와해 문건 발견 등 삼성 비리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로 봤을 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와 확실히 다르다. 일단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 자체가 삼성이 연루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삼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존립 가치가 없는 측면이 있다. 당연히 삼성 문제 해결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삼성권력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자체가 삼성 역사 80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 규모만 봤을 때 할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이나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삼성그룹의 총수 구속은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것은 정치적 지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조성되기 어려운 아주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남은 과제는 역시 사법부라고 본다. 현 사법부 상황에서는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측하기 힘들다.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사법개혁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날카로워지고, 커져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최근 불거진 여러 의혹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문제는.
“노조 와해 문제다. 삼성이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기본권을 유린해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 사회가 문제시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인식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노조 와해 논란 역시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처음 공개했던 내용이 이제와 다시 확인된 것이다. 당시는 결국 해결되지 않은 논란이 문재인 정부 들어와 다시금 이슈화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삼성의 노동권 유린 문제가 해결되면, 기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깨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일부에서는 삼성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글로벌 기업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답답하다. 삼성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쉽게 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시민들이 주체로 제대로 서보지 못하고 노예처럼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해 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영향을 받으면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거라 생각한다. 내가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이런 책을 쓰고, 문제제기하는 것도 하나의 시도이고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실 사태 이후 삼성과 관련된 많은 일이 있었다. ‘삼성독재’ 후속작 계획은.
“좀 길게 보고 있었다. 삼성 100년사를 쓰는 게 목표다. 향후 20년 삼성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 궁금하다. 그때는 삼성권력이 해체된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 만약 해체됐다면 이를 야기한 결정적 장면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교훈을 통해 한국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희망적인 글을 쓰고 싶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