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5일 오후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고성준 기자
빅딜 전후엔 삼성과 한화의 남다른 인연이 회자됐다. 한화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승연 회장은 이전부터 이건희 회장을 어르신이라 부르고, 명절 때마다 인사를 가는 등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며 “김 회장의 세 아들과 이 부회장도 대학 동문, 승마 선후배 등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빅딜 성과 이면에 감춰진 리스크가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재계와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세청은 지난해 8월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와 한화테크윈(옛 삼성테크윈)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고 연장조사를 거쳐 올 초 수백억 원대 세금 탈루 등 혐의(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로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옛 삼성 시절 발생한 위법행위가 발견돼 수사 의뢰한 것으로 안다”며 “해외 사업과 관련한 부분도 검찰 수사에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한화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표면적으로 2015년 성사된 빅딜과 연관이 있다. 한화가 인수한 삼성 계열사 4곳의 기업 가치가 일부 저평가됐다는 의혹이다. 실제 한화는 2015년 방산 계열사인 한화테크윈과 한화시스템(옛 삼성탈레스), 석유화학 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 한화토탈(옛 삼성토탈)을 인수하면서 1조 9000억 원을 지출했다.
그런데 한화토탈은 2015년 영업이익 8000억 원, 이듬해 1조 5000억 원을 기록하면서 불과 2년 만에 4개 회사 인수자금을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한화테크윈 역시 2015년 회계기준 적자였던 것을 제외하면 2016년 16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지난해에도 800억 원대 이익을 안겨 ‘김승연 매직’의 대표 사례로 불렸다. 지난해 한화테크윈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증가한 4조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빅딜 당시로 따져도 이들 4개 회사의 자산 가치는 13조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삼성은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2014년 11월 한화테크윈과 자회사인 한화시스템, 한화종합화학과 자회사인 한화토탈을 2조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에 넘겼다. 이 가운데 한화가 실제 지분을 인수한 곳은 옛 삼성테크윈과 옛 삼성종합화학이다. 또 삼성테크윈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23.4%를 가진 대주주였다. 다시 말해 삼성은 당시 삼성테크윈을 처분하면서 삼성테크윈에 딸린 나머지 기업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한화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승연 회장은 이전부터 이건희 회장을 어르신이라 부르고, 명절 때마다 인사를 가는 등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며 “김 회장의 세 아들과 이 부회장도 대학 동문, 승마 선후배 등으로 얽혀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승연 한화 회장. 일요신문DB
재계 관계자는 “빅딜 성사 당시 삼성이 방산 비리 의혹으로 시한폭탄과 다름없던 테크윈을 ‘백기사’인 한화에 급하게 넘겼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테크윈 매각이 이재용 경영 승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해석이 당시에도 정설이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빅딜 당시 삼성테크윈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25.46%), 2대 주주는 삼성물산(4.28%)으로 모두 경영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꼽힌 기업이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당시 딜을 주도한 사람(미래전략실)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경영 승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영상 목적에 따라 이뤄진 거래일 뿐 그 밖의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정당국이 주목하는 한화테크윈의 해외 사업 부문 의혹은 터키 등에 수출한 K-9 자주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테크윈은 터키 등 해외 무기 중개업체와 거래하면서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제 무기 거래 과정에 상호 비밀 유지 등을 위해 서류상 회사가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정당국은 옛 삼성테크윈의 해외 법인을 통한 리베이트 자금 조성 가능성, 재산 은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삼성 시절 벌어진 각종 해외 사업 관련 의혹이 한화의 리스크로 돌아온 셈이다.
또 최근 한화테크윈 직원은 부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 진단을 받고, 정부로부터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이슈’가 삼성에 이어 한화에 옮아붙는 상황이다. 한화테크윈은 아울러 2014년 4월 과천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과 관련해 피해기업인 삼성SDS로부터 68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빅딜 때만 해도 몰랐던 리스크가 이곳저곳서 발생하는 상황이다. 한화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거래 당시 국세청 세무조사와 같은 리스크를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지금 와서 예전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상대방(삼성)에게 묻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앞의 재계 관계자는 “주주간 계약(조건)을 봐야 알겠지만 통상적으로 거래 상대방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매도자가 (금전적 책임을) 부담하는 조항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삼성은 “보유 중인 한화종합화학 지분 전량(24.1%)을 매각한다”며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계 사모투자펀드(PEF) 베인캐피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는 지난 빅딜의 후속 차원이며, 앞서 삼성은 한화의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보유 중인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일부 매각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지난 빅딜처럼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매각하는 곳은 지주사격인 삼성물산(20.05%)이다. 해당 거래가 성사되면 삼성은 1조 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고, 한화는 보유 중인 지분(75.2%) 가치가 3조 30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종합화학은 비상장사다. 한 공인회계사는 “한화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회계상 조 단위의 이익을 올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화 관계자는 “삼성 지분 정리 전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삼성과) 논의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삼성 백기사’ 한화도 빅딜로 경영승계 추진력 얻어 빅딜로 경영 승계에 도움을 받은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만이 아니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결과적으로 빅딜에 힘입어 경영 승계의 추진력을 얻었다. 배경은 이렇다. 먼저 한화에 넘어간 삼성종합화학은 2004년 지주사로 전환한 뒤 별다른 사업 부문이 없었다. 기존 화학 사업은 모두 삼성종합화학에서 분리된 삼성토탈이 맡았다. 즉 삼성토탈이 실질적인 사업회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삼성종합화학은 2014년 3월 그룹 내 석유 사업을 영위하던 삼성석유화학과 합병을 결정했다. 당시 삼성석유화학은 2년 연속 적자를 내 매각 대상으로 거론됐다. 같은 해 11월 삼성종합화학의 매각이 발표되고, 새 최대주주로 한화에너지가 결정됐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지주사인 ㈜한화가 아닌 지분구조상 ㈜한화와 전혀 관계가 없는 한화에너지가 빅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동관, 동원, 동선)이 지분 100%를 가진 H솔루션(옛 한화S&C)의 자회사로 에너지 사업부문 자금줄을 맡고 있다. 즉 김승연 3남→H솔루션→한화에너지→삼성종합화학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은 한화에너지를 돕는 백기사로 빅딜 당시 회사 지분 27%를 사들였다. 여기에 삼성종합화학의 자회사인 삼성토탈은 2015~2016년에만 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지분가치를 높였다. 또 삼성은 매각 전 삼성석유화학과 합병으로 삼성종합화학의 매출과 자산 가치를 높여주면서 지주사 강제 전환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도왔다. 현행법상 한 회사가 소유한 주식 가치가 전체 자산의 절반을 넘으면 지주사로 강제 전환해야 한다. 만약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과 합병 없이 매각됐다면 지주사 전환이 그만큼 더 조기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