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의 대표적인 탈북민 방송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고정 시청자와 탄탄한 시청률을 바탕으로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채널에이 제공
특히 종편에서 방영된 북한 관련 예능방송은 북한 정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으로도 눈길을 끌어 왔다. 탈북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절망, 혈육과의 생이별은 탈북민 예능의 단골 소재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탈북민 출연진들은 이런 경험담을 바탕으로 북한의 비인도적인 정책을 남한 대중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소 과장된 연출이 가미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한 탈북민 청년 단체가 “방송을 폐지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발생했다. 이처럼 주로 북한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데 앞장 서 왔던 방송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타고 온 ‘훈기’에 어떤 영향을 받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종편에서 북한 관련 방송은 시청률을 책임지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개국 이래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 온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잘 살아보세’, TV조선의 ‘통일준비위원회-모란봉클럽’ ‘애정통일 남남북녀’ 등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탈북민 방송이다. ‘탈북 미녀’를 앞세우며 시청자를 확보해 온 이들 방송은 탈북민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편견어린 거리감을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가운데 ‘이만갑’은 고정 시청자와 팬카페까지 보유할 정도로 사랑 받으며 장수해 온 만큼 비판도 가장 많았다. 이산가족들의 문제를 다루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초창기와는 달리 탈북 미녀들의 과장된 연출과 조작 대본 의혹이 탈북민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됐던 것. 한 탈북민 청년단체는 “북한 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같은 민족으로서 화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북한과 탈북민을 예능거리로 소비하고 있다”며 프로그램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종편의 탈북민 프로그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탈북민들은 “방송을 위한 자극적인 양념이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실상을 공개한다고는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상 자극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실제 북한의 군대나 중앙 체제를 깊숙이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마치 이를 생생히 경험한 것처럼 부풀려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북한으로 재입북한 탈북 여성 방송인 임지현(본명 전혜성)에 대해서도 한 탈북민은 “선전대 출신으로 인민군 상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선전대는커녕 군관학교 근처에도 못 간 사람이다”라며 거짓 프로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재입북한 탈북민 방송인 임지현(실명 전혜성)의 TV조선 ‘남남북녀’ 출연 당시 모습. 사진=‘남남북녀’ 캡처
한 방송 관계자는 “종편의 경우는 아무래도 시청자의 평균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이들이 북한에게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안정적인 시청률 확보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러나 최근 평창 올림픽 등으로 북한과의 관계가 조금씩 완화되는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단순히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대중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부분이 방송에서도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남이 이뤄진 지난 2월, TV조선 ‘모란봉 클럽’은 이를 ‘평창을 뒤흔든 북한의 여성 파워’라는 주제로 방송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훈풍’이 방송가에서는 좀 더 엄격한 검열로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앞선 관계자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해서 방송을 만드는 것은 차라리 쉽다. 일반 대중들은 정확한 실상을 알지 못 하므로 우리가 막연히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을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방송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연출 하나가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예능이라곤 하지만 북한을 다루고 있는 방송은 정치나 사회 이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특히 북한도 탈북민이 출연하는 방송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상 예전처럼 강도 높은 비판이나 실상 공개에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이들 프로그램은 이전과는 달리 출연진을 보강하고 코너를 신설해 예능프로그램이면서도 시사교양적인 측면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만갑’의 경우는 시즌 2 이후 북한 전문가를 섭외해 북한의 실상을 면밀히 알리겠다는 노선을 택했다. ‘모란봉클럽’ 역시 북한과 관련한 최근 이슈를 사회·정치적 측면으로 함께 다루면서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예능과 시사를 막론하고 일반 탈북민 방송인보다 전문가들의 활동 영역이 좀 더 넓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 종편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방송을 제작할 때 출연진들의 프로필을 엄격하게 확인하고 방송 대사도 검열을 거쳐야 하지만 예능의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느슨했던 감이 있었다”라며 “탈북민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와 예능의 친근감도 중요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중들은 검증된 전문가들의 정확한 사실과 정보 전달 방송 쪽에 좀 더 눈길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 관련 프로그램이 신설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프로그램에 전문가를 자연스럽게 녹여들게 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