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 접경지역에서는 향후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개발이 진행될 것이란 기대로 벌써부터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과거 독일 사례를 보면 평화 통일의 단계는 해빙-적극적 교류-통합으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남북이 적극적 교류 단계로까지는 나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통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는 지적이다.
강동완 통일연구원 연구원은 “북한이 최우선시 하는 것이 체제 보장”이라며 “아무리 남북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어도 당장 독일식 1국가 체제 통일은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북한은 과거부터 일관되게 1국가 2체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고려연방제는 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남과 북이 서로 상이한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면서 하나의 통일 연방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지난 1960년 8월 14일 김일성이 ‘8·15해방 15주년 경축대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연방제 통일에 힘을 싣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방제 통일은 보수층의 거부감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은 연방제 통일의 선제 조건으로 미군 철수와 남한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간섭 중지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보수 진영에선 ‘연방제 통일론은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교묘한 속임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미군 철수를 고집하지 않으면 연방제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연방제 통일 이후에는 과거 독일의 사례처럼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이후에는 통일 과정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전문가들도 “아무리 북한이라도 4대 세습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살해당한 이복형 김정남도 지난 2011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마오쩌둥조차 세습은 하지 않았다”며 “사회주의에 맞지 않고 아버지(김정일)도 처음에는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안찬일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도 결국에는 중국식, 베트남식 공산주의 체제로 변화할 것”이라면서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고 최고 권력자 선정 과정에서도 부분적인 민주주의 방식이 도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의 경우 국가주석의 임기는 5년이며 국회가 국회의원 중에서 선출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향후 파격적인 남북 교류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남북 교류는 통일의 원동력이다. 독일의 경우도 동서독 교류 범위를 점차 넓히면서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여당 관계자는 “현재 북한이 핵개발로 인한 제재를 받고 있어 당장 경제 협력은 어렵겠지만 민간, 문화 교류는 가능한 상태”라며 “북한이 국제사회 감시 하에서 확실한 비핵화 절차까지 밟는다면 대대적인 경제 지원과 협력도 얼마든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동완 연구원은 “문호가 개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적극적인 평화 공세에 나선 것은 사상 유례 없는 대북제재를 풀기 위한 것이다. 향후 경제 협력을 위해서라도 남북 교류는 북한이 더 절실하게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해 향후 교류 활성화를 기정사실화 했다.
북한이 남한 문화 침투를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어 ‘적극적 교류’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남북 교류가 진행된 전례가 있지 않나. 당시에도 문화 교류는 거의 없고 경제적 지원, 인프라 건설 등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이번에도 그 정도 수준이지 문화 개방이나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 등은 당장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 야당에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UN 대북제재에 위반되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통일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그동안 비핵화를 천명한 것이 8번이나 되지만 한 번도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 벌써부터 통일까지 전망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가 달성되면 한국 증시의 주가가 최고 15%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 한국지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남북한 간 지속적인 긴장 완화로 아시아 경제와 시장이 큰 수혜를 볼 것이라며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는 또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와 북한이 무역과 이동을 자유화하는 ‘적극적 교류’나 남북한이 경제, 정책적으로 통합하는 ‘완전한 통합’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코스피가 10∼15%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향후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개발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희토류 같은 북한 지역의 풍부한 자원도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통일 이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초기 막대한 인플레이션 및 동독 지원으로 인한 국가부채 상승, 실업난 등의 악재를 겪었다. 서독은 동독과 1990년 통일한 이후 통일비용으로 약 2730조 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독일보다 더 큰 통일비용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는 3배에 불과했지만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는 22배에 달한다. 통일이 되면 통일비용으로 1경 이상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통일 방식으로 1국가 2체제 방식이 떠오르는 이유다. 중국-홍콩이 채택하고 있는 1국가 2체제 방식은 당장 과도한 통일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한 부작용도 방지할 수 있다.
1국가 2체제 방식에 대해 남과 북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남한은 ‘연합제’를,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안했다. 연합제는 남과 북이 각각 독립 국가로서 단계적으로 협력 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이 골자다. 국방과 외교권은 남북이 각자 가진다. 북한의 연방제는 지역 정부에 국방과 외교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여당 관계자는 “보수 진영에선 1국가 2체제 방식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데 일방적인 흡수통일은 현실성이 없지 않나. 사실상 유일한 대안에 딴지를 걸면 통일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