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북한의 약속 파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말로는 핵무기를 안 만들겠다고 했으나 기술적으로 완성단계에 접어드는 핵무기 보유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김정일 시대에 한때 버릴 생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수용했으나 그 과정에 국방력이 발가벗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사찰단을 추방하고, IAEA에서 탈퇴했다.
판문점 선언도 기본골격은 이전 선언들과 같다. 비핵화 선언은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포함됐던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보다 내용이 빈약하다는 평가다. 이 선언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에 대해서는 긍정이 다소 우세한 듯하다.
과거와 여건이 달라진 것이 긍정의 이유로 꼽힌다. 그동안 김정은은 핵무기만 완성되면 강성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으나 경제난은 가중되는 체제모순에 빠졌다.
그가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시점에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의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제조에 성공한 핵무기 기술을 머리에 보관하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달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그는 아직 비핵화의지를 대외용으로 밝힐 뿐 대내적으로는 함구하고 있다. 4월 27일 판문점 연설에서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 북한의 줄기찬 요구였는데, 기껏 인정된다 해도 2류 핵보유국인 인도나 파키스탄 정도의 지위에 불과하다. 그것이 북한에 가져다 줄 실익은 경제적 고통에 비해 보잘 것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인식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부정적인 시각은 대부분 신뢰성을 잃은 북한의 과거행적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포기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여길 때 그가 약속을 파기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핵무기나 인권유린으로 유명해지는 것은 악명이자 허명(虛名)이다. 그가 그것을 자랑으로 여길 경우에도 판문점 선언은 파기될 수 있다. 어떤 구실로 파기하던 그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야비한 기만과 배신으로 간주돼 대북 응징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진다.
김정은은 이날 판문점 연설에서 ‘통일의 길에 외풍과 역풍, 좌절과 시련이 있을 수 있다’며 ‘고통 없이 승리는 없다’고 했다. 비핵화 또한 그에게 고통이자 승리일 것이다. 그가 고통을 이겨내고 승리하길 바란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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