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은 사건 직후 윤리위원회를 열어 대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김성룡 9단은 잠적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한국기원 집행부는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커녕 단 한 번도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2일, 유소년 전문기사 후원 협약서에 서명한 후 함께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는 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과 김성룡 9단(오른쪽).
이런 가운데 한국기원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김성룡 9단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최근 유창혁 총장이 이미 4월 17일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김성룡을 만난 적이 있음을 시인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유 총장은 김성룡에게 “윤리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니 빠른 시간 안에 소명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피해자를 제쳐둔 채 가해자를 먼저 만나 처리 방침을 고지한 것은 공정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한쪽으로 치우치자 많은 기사들이 집행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백지희 2단은 기사회 게시판을 통해 “현 한국기원 집행부는 피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피해 사실을 의심하며 외면하고 있고 기사회와 기사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이 또 다른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주가 지난 지금 한국기원은 디아나 초단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김성룡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사무총장 스스로 ‘성범죄’가 아니라 ‘품위손상’이라는 말을 언론에 흘리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또 남치형 초단은 “기원 구성원이 피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올렸는데 어떻게 한국기원 총장이란 분이 피해자를 제쳐두고 가해자부터 접촉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후에도 열흘이 넘도록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성토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팬들이 나섰다. 한 바둑팬은 디아나 초단 성폭행 기사 댓글을 통해 “한국기원이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피해자인 디아나에게 단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고 유감표명 한번 없는 것은 바둑팬들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라면서 “향후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와 유창혁 사무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국기원 앞에서 벌이는 것은 물론, 한국바둑리그 메인 스폰서인 KB국민은행 본사 앞에서도 바둑 스폰서 후원을 중지하라는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애초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디아나가 김성룡을 사법처리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디아나 초단이 아픔을 호소했을 때 한국기원 집행부가 즉각 디아나에게 연락해 위로하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까지 김성룡의 기사 자격을 중지시킨 다음 팬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사건의 전말을 조속히 파헤치겠다’고 사과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한국기원을 장악하고 있는 J 일보 사주 집단과 오만하고 고압적인 사무총장이 한국바둑에 큰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