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지적 참견 시점’
지난 3월 3일부터 정규 편성된 MBC 토요일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과 매니저의 사이를 보여주는 ‘관찰 예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영자와 그의 매니저 송성호, 유병재와 매니저 유규선이 관찰자로 고정 출연 중이며, 그 외 홍진영, 홍진경, 김수용, 김생민 등이 매니저와 함께 출연해 연예인과 매니저의 일상을 공개했다.
송성호 씨는 이영자의 ‘맛집 아바타’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그의 31번째 매니저라는 송 씨의 하루는 매니저 업무 외에도 이영자의 지시에 따라 맛집을 순회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송 씨에게 맛집을 소개하면서 그 맛을 묘사하는 이영자의 말솜씨는 ‘전지적 참견 시점’ 속 ‘영자 미식회’로 이 둘의 파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즐길거리다.
‘맛집 아바타’ 답게 이영자가 지시한 대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말죽거리 소고기국밥을 먹던 송 씨의 모습은 재미있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그의 먹는 모습을 부럽게 지켜보고 있던 한 시민이 자신이 주문했던 순두부찌개를 국밥으로 바꾼 것. 제작진 측도 이 돌발 상황을 재미있게 여겨 해당 시민을 MBC로 초청해 소정의 상품을 증정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군대 선후임 관계이자 10년 이상 동거인으로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작가 유병재와 그의 매니저 유규선 씨. 이들이 보여주는 ‘오래된 부부’의 모습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유 씨는 소극적인 유병재를 대신해 그의 팬덤을 살뜰하게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 씨는 팬덤 내에서 유병재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유병재의 팬미팅에서 인기도를 증명한 유 씨에게는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유셀럽(셀러브리티, 유명인)’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전에도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매니저들이 간간히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다. 대부분 자신이 담당하는 연예인에 대한 ‘한 마디’를 요구하거나, 특정 에피소드의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긴급 투입되는 경우였다. 그런 가운데 이처럼 ‘캐릭터 성’을 가진 매니저들이 방송에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최초로 이뤄졌다.
2007년~2008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박명수의 전 매니저 정석권 실장. 사진=MBC 제공
무한도전은 박명수의 20년 지기인 매니저 정석권 실장과 정준하의 매니저 최종훈 코디를 방송에 투입시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해 온 초창기의 무한도전은 다른 예능프로그램과 차별화된 플롯을 고집해 왔던 바 있다. 비방송인의 적극적인 방송 출연도 그런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첫 방송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낸 정석권 실장과 최종훈 코디는 각각 ‘정 실장’과 ‘최 코디’로 이름을 날리며 방송용 캐릭터를 구축했다.
정 실장은 당시 ‘악마의 아들’이라는 캐릭터로 활약하고 있던 박명수의 독설을 받아치는 캐릭터를 얻었다. 당시 시점으로 10년 이상 함께한 사이라는 관계성을 이용해 유재석이나 정준하가 미처 지적하지 못하는 곳을 찌르는 역할이었다.
잘 삐치는 정준하에게 헌신하면서도 가끔씩 촌철살인 멘트를 던지는 최 코디도 안정적인 캐릭터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무한도전의 제7의 멤버로 꼽힐 정도로 인기와 인지도를 자랑했던 이들은 각각 CF모델 광고 계약을 체결하거나 배우로 직접 연예계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처럼 비방송인 매니저들의 캐릭터 굳히기로 재미를 봤던 무한도전은 아예 연예인과 매니저들의 게임으로만 에피소드 하나를 제작했다. 2007년 10월 방영한 ‘무한도전-환장의 짝궁’ 편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유재석의 코디 신미소(미소 코디), 박명수의 매니저 정 실장, 정준하의 매니저 최 코디, 하하의 매니저 김주연, 정형돈의 매니저 문종승 등이 출연했다.
이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에서의 매니저 출연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자 그 이듬해 KBS ‘1박2일’도 매니저 예능에 가세했다. 출연진 매니저들을 대거로 출연시켰던 ‘1박2일’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강호동 판박이인 엠씨몽의 매니저가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이들의 방송은 1회로 종결됐기 때문에 앞선 무한도전처럼의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정준하의 전 매니저 최종훈 코디. 현재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tvN 제공
한 연예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90년~2000년대 초반에는 배우나 개그맨 지망생들이 방송 제작업계에서 일하다가 연예인의 눈에 띄어서 매니저로 발탁되고, 또 운이 좋으면 단역으로 연예인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는 일도 잦았다”며 “당시는 연예기획사가 지금처럼 많고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예인 매니저가 연예계 진출의 교두보가 됐던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개그 프로그램 속 콩트 코너 조연이나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그쳤을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지금도 일부 그렇지만 옛날 연예계에서는 연예인과 매니저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매니저가 연예인의 일을 도와주는 것은 허용해도 매니저가 연예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분노하는 연예인도 많았다”라며 “이런 이유로 매니저가 방송에 출연한다고 해도 연예인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 우선적으로 주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연예인들을 뒤로 밀어두고 매니저들을 전면에 내세운 방송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무한도전의 ‘매니저의 예능 캐릭터화’가 성공하면서 확인한 대중들의 호응을 그대로 ‘매니저 예능’으로 옮겼던 것.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8년 SBS ‘매니저 사관학교 산전수전’의 경우다.
이 방송은 추석 특집으로 내보낸 파일럿의 호응을 바탕으로 정규 편성 가능성을 보였다. 초년병 연예 매니저들이 경쟁을 벌여 최종 우승자가 실장으로 올라가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배우 전도연, 가수 신정환 등의 매니저가 섭외돼 눈길을 끌긴 했으나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됐다. 정규 방송으로 끌고 가기에는 출연진들의 ‘일반인’적인 면모가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 결국 정규 편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앞선 관계자는 “방송용 캐릭터를 잡고 출연하는 매니저들이 ‘준 연예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연예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요즘은 SNS로 연예인과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에 방송으로 매니저들에게 친근함을 느낀 대중들이 그들에게 개별적인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잦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대가 변했어도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연예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인 만큼,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매니저들이 출연하는 방송은 여전히 신선하게 먹힐 것”이라며 “방송으로 한 번, SNS로 또 한 번 대중과 연예인 간의 경계를 허물어 준다는 점에서 더 크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