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 청년기술학교. 중국이 세우고, 일본이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국 기술진이 파견되어 있다.
[일요신문] 오늘 한국에서 온 카톡을 읽습니다. 제가 사는 만달레이에서 유학을 간 청년이 보낸 것입니다.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저녁부터 자정까지 알바를 합니다. 집안이 넉넉지 못해 그렇게 부지런히 생활해야 학업을 마칠 수 있습니다. 교육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1년 치를 모아야 반 학기를 다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늘 부탁하는 것은 3가지입니다. 학교에서나 일터에서나. 누구든 마주칠 때마다 인사 잘하기. 약속시간에 미리 가서 준비하기. 돈 관계는 정확히 셈하기. 미얀마 청년들은 착하고 주어진 여건에 성실하고 부모님 뜻에 잘 따르지만 이 3가지는 서투릅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 3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보이스톡 내용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이 화를 너무 잘 내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참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낯선 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입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며 공부를 합니다.
기술을 배우는 청년들이 수업 후 돌아가고 있다.
현재 유학을 주도하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입니다. 그만큼 주변국에서 공부할 분야도 많습니다. 50만 명이나 되는 중국 내 유학생 중 한국 학생이 압도적 1위로 많습니다. 그 뒤를 이어 2위 미국, 3위 태국입니다. 반면 12만 명이 넘는 한국 내 유학생 중에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60%가 넘습니다. 미얀마 청년들이 유학을 가고 싶은 나라도 압도적으로 한국입니다. 그 다음이 싱가포르입니다. 한류 탓이기도 하지만 미얀마에 꼭 필요한 교육분야를 한국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도 비슷합니다.
한국과 중국 간 유학의 역사는 120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육과 문화는 두 나라간 오래 전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외 차이나타운에 가보면 중국계 사람들은 ‘당인가’(唐人街)라는 거리간판을 내겁니다. 당나라 사람들의 거리라는 뜻입니다. 중국인들이 자기네 역사상 가장 좋아하는 왕조가 당나라인 까닭입니다. 당나라는 618년 세워져 907년까지 존속했습니다. 국제적인 활동도 많았고, 문화적으로도 뛰어난 시대입니다. 옛 문학의 상징인 이태백, 두보, 백거이, 한유가 동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이민족 인재를 많이 등용했습니다. 한국계로는 이정기, 고선지, 흑치상지, 장보고, 최치원 등 무인부터 관료까지 다양했습니다. 외국인 유학생도 적극 유치했습니다. 837년 당나라 국학에서 공부한 신라인 유학생은 216명이나 되었습니다. 자비 유학생은 제외한 숫자입니다. 국비 장학생은 해당 나라까지의 여비, 옷, 식비, 책값까지 지원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영광스런 과거’의 한 시대로 인식할 만한 문화와 교육이 꽃피운 시기입니다.
쿠알라룸푸르 시내 차이나타운 거리.
세계의 마지막 주요 시장이 될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반도에도 교육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열린 교육정책이 시시각각으로 발표됩니다. 영어권 나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그렇고, 베트남과 태국도 영어 프로그램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는 중국계 국제학교, 도시마다 일본어 스쿨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도 1000명이 공부하는 중국계 국제학교가 10곳이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교육에 투자를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기 나라 언어와 문화를 공부한 인재가 자기 나라 경제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도차이나 각 나라 중 태국과 베트남은 관광사업이 더욱 활발합니다. 더 많은 유럽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모든 산업의 아시아 유통기지를 만들고 있고, 말레이시아는 절반이 넘는 외국인 인구의 이주정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자원이 많지만 개발이 늦은 미얀마는 중국, 일본의 도움으로 전문기술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 밑바탕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자국을 위한 미래의 인재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만달레이 한국어학당 수업 모습. 강사들은 모두 이곳 한국어과 출신이다.
오늘 한국으로 간 미얀마 유학생에게 카톡으로 답변합니다. 한국 사람이 불같이 화를 잘 내도 뒤끝은 없다. 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너희와 다르게 왜 급하고 안 되면 화를 내는지. 그것이 한국이 성장한 동력인지도 모른다고. 변화가 많은 까닭은 창의력이 뛰어난 국민성 때문이라고. 카톡을 보내고 생각합니다. 비좁은 땅에 유학, 기술연수, 취업 등 해외 청년들이 공부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몰리는 우리나라. 그 해외 청년들이 낯선 문화 속에서 갈등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재산이라고.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