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 일요신문DB
[일요신문] 최근 인천국제공항에서 거액의 금괴 사건이 연신 불거져 세관과 경찰이 수사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금괴 운반 알바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4월 2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쓰레기통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1kg 금괴 7개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자그마치 약 3억 5000만 원어치였다. 주인 없는 금괴의 출처에 많은 이목이 쏠린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틀 뒤인 30일에는 스스로가 금괴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세관에 나타났다. A 씨는 자신의 금괴를 2명의 남성에게 홍콩에서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운반하도록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공항내 CCTV 화면 확인 결과 세관에 출석한 남성 2인은 실제 금괴를 쓰레기통에 버린 주인공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일본 출국 전 세관 검색에 겁을 먹고 금괴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 금괴 운반은 인기 알바?
인천세관은 이번 사건을 금괴를 홍콩으로부터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보내는 일종의 ‘환승 밀수’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금괴를 밀수하는데 ‘알바생’들의 참여가 최근 몇 년간 적극적으로 이뤄지다 못해 성행하고 있다.
‘금괴 알바’는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홍콩에서 일본으로 금을 팔아넘기는 집단은 전국에 점조직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각 알바생을 채용해 적게는 3~4개에서 많게는 7~8개에 이르는 금괴를 일본으로 넘긴다.
알바생의 임무는 간단하다. 출입국장 면세 구역에서 홍콩발 ‘조직원’과 접선해 금괴를 받고 일본에서 약속된 사람에게 건네준다.
금괴 밀수 조직은 더 많은 운반책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알바를 모집한다. 비행기 티켓과 숙박권을 제공하는 ‘무료 일본여행’ 등을 미끼로 유혹한다. 100만 원의 보수는 덤이다.
국내와 일본에서 이 같은 금괴 밀수가 몇 차례 적발되자 알바생 채용 조건이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주변 지인이나 경험자의 추천으로 선발이 이뤄진다. 최근 일본 입국 기록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남녀 혹은 여성 2명의 2인 1조를 모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녀로 구성된 조의 경우 단순한 친구 관계라 하더라도 자연스런 연인 관계를 연출해야 한다. 일반 여행객처럼 보여 한일 관세 당국의 의심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남-남 커플은 운반책 모집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실제 금괴 운반 알바 경험이 있는 B 씨는 “이렇게 관리가 철저한 조직은 적발 가능성이 0%에 가깝다”면서 “세관에 걸린 사람들은 남-녀든 남-남이든 마구잡이로 하는 조직이라고 들었다. 그 사람들은 과거 출국 기록도 안본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금괴 운반 알바가 한창 성행하던 시기에는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도 대상자를 물색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금괴 운반 알바의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인파로 붐비는 인천국제공항 면세품 인도장.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연합뉴스
하지만 ‘황금시대’를 누리던 금괴 알바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관세 당국에 의한 수차례의 밀수 적발과 함께 알바생들의 ‘일탈행동’이 문제가 됐다.
알바생이 금괴를 건네받고 나면 운반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관리 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알바생이 금괴를 들고 잠적하는 ‘배달사고’가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B 씨는 “나도 금괴를 빼돌릴까 하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보수 100만 원의 몇 배 이익을 거둘 수 있지 않나”라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실제 그러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경험자 C 씨는 “실제 금괴를 건네받고 잠적한 이들이 몇 팀 있었는데 한국 입국과 동시에 ‘조직’에 붙잡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밀수 사례가 적발되면서 일본 당국의 관세 절차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금속탐지기 등을 설치하는 일본 공항이 늘었다.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알바생의 일탈행동이 늘어나며 일부 조직은 알바생 모집을 ‘올 스톱’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천공항에서 금괴가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
# 홍콩-일본 경로에 왜 한국이 추가되나
홍콩발 금괴가 한국을 경유하는 이유는 ‘출신성분’을 세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구입해 일본에서 판매해 시세차익을 노리기 위한 금괴는 한국을 거치며 ‘여행자 휴대품’이 된다. 현재는 분위기가 바뀌는 추세지만 당초 일본은 여행객 1인당 금괴 3kg 정도는 반입이 허용됐다. ‘금덩어리를 은밀한 부위에 숨기는 장면’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다.
인천세관에 의하면 해외에서 국내로 금괴가 들어오는 경우 세관 신고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알바생들이 출국장에서 금괴를 넘겨받는 경우에는 이 같은 절차가 필요 없다. 출국장은 면세구역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해외로 금괴를 들고나갈 때에도 세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자연스레 세금 또한 따라온다. 이에 홍콩-한국-일본 경로의 ‘골든 로드’가 탄생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