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김 아무개 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5월 2일. 재판부는 검찰의 재판 태도를 문제 삼았다. 검찰이 “경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며 증거목록을 제출하지 않고,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기 때문. 그런데도 김 씨 측은 법적 다툼을 포기했다. 오히려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며 신속한 재판을 촉구했다. 빨리 처벌해 달라며, 검찰이 일부러 재판을 지연하려 한다고 맞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씨 측이 법리적∙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재판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522호 법정은 시위 현장을 방불케 했다. 김 씨를 보기 위해 몰려든 보수단체 회원들은 김 씨가 재판정에 들어오자 “나쁜 xx”라며 욕설을 내뱉었다. 법원이 법정질서 유지를 위해 방청 인원을 제한하자,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한 여성은 복도에서 “가린다고 가려지냐”며 “문 열어놓고 진행하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재판에 앞서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는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특검 수사를 통해 사건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루킹 김 씨 첫 재판이 열리던 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수십 명의 보수 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김 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대신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이 “경찰에서 공범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증거목록을 제출하지 않자, 김 씨 측 변호인 오정국 변호사는 “기소한 지 2주가 넘었는데도 증거목록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점에 의구심이 든다”며 검찰이 재판을 지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오 변호사는 이어 “이미 조사가 다 됐고, 공소사실도 모두 인정하기 때문에 재판을 신속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김 씨가 협조하면 수사가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검찰이 주장하자 오 변호사는 “모든 범죄를 인정하고 있는데 조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사실 법조계는 김 씨 재판의 쟁점으로 ‘매크로’ 사용 여부를 꼽는다. 매크로는 컴퓨터에서 동일한 작업을 자동으로 반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김 씨는 매크로를 이용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의 공감 수를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매크로라는 속임수를 써 네이버의 댓글 순위 선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다.
보수 야당은 이번 사건을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동일시하며, 드루킹 사건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공무원에게는 정치적 중립의무가 요구되는 반면, 일반 국민에게는 정치적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 국가정보원장이라는 공직자 신분을 가진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4년이 확정됐지만, 민간인인 김 씨는 민주당원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는 없다. 댓글 조작을 시도한 당사자의 신분이 명백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김 씨에게 여론조작을 지시한 배후가 있을 경우 얘기는 달라지는 것.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김 씨에게 총 14건의 메시지를 텔레그램을 통해 보냈다. 이 가운데 10건은 인터넷 기사 주소(URL)였으며 “홍보해 주세요”라고 요청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이 여론조작을 지시했거나 알고도 묵인한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는 공소시효(6개월)가 지나 적용하기 어렵다. 결국 김 의원에 대해서도 업무방해 공범 적용이 최대치다.
드루킹 김 아무개 씨가 1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돈 거래도 있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김 의원의 보좌관 한 아무개 씨가 김 씨 측으로부터 현금 500만 원을 받았다 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김 씨가 김 의원에게 수차례 인사청탁을 요구한 것과 관련, 이 돈이 청탁의 대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이 이를 지시했거나 알고 있었을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드루킹 김 씨와 김경수 의원과의 관계 등은 2일 열린 재판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구속기간 만료 하루 전인 지난달 17일 업무방해 혐의만으로 김 씨를 기소했는데,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드루킹 김 씨 측이 지금 공소장에 적힌 사실만으로 재판을 빨리 끝내기 위해 혐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압수수색에서 매크로 활용에 대한 물증이 확인됐기 때문에 부인하더라도 무죄 가능성은 없다는 정책적 판단이 들어간 것”이라며 “업무방해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법성이 크지는 않기 때문에 처벌수위를 낮춰달라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 씨처럼 자백 취지로 혐의를 인정하면 빠른 시일 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김 씨에게 적용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혐의는 형법 제314조 제2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수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감형을 노린 듯, 김 씨 변호인은 재판에서 “네이버 로그인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손으로 입력하는데 소위 귀찮아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뿐”이라며 “손으로 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서 실질적으로 네이버에 크게 업무상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무상 방해 혐의를 인정하지만, 큰 피해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
하지만 법조인들은 무엇보다 정치권과의 연계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을 빨리 끝내고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김경수 의원과 관련된 정황들이 추가로 확인되고 있고, 야당이 특검 수사를 주장하는 등 사건이 정치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재판을 빨리 끝내고 나면 언론과 정치권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며 “경찰이 다른 혐의를 수사하고 있지만 추가 기소할 때까지는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고, 추가 기소 여부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이 재판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검찰이 김 의원이나 김 의원 보좌관 등을 법정에 소환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 핵심 의도로 풀이된다. 보통 첫 재판에서 피고인이 자백할 경우, 증거조사 없이 재판이 끝나게 된다. 추가로 증인을 부르거나 하는 절차가 생략되는 것.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씨 측이 공소사실을 부인할 경우 검찰은 바로 증인을 세울 것”이라며 “가장 먼저 김경수 의원이나 보좌관을 증인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에 그걸 막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은 김 의원 등을 법정에 소환하기 위해 증거목록 제출을 하지 않았다. 아직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김 씨 변호인은 재판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검찰이 증거목록을 제출했다면 전부 동의하고 오늘 재판이 끝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효정 언론인 hyoj03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