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018년 첫 입영행사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종전에 대한 논의가 판문점 선언에 포함되자 입영 대상자들 사이에선 군 입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종전하면 군대 안 갈 확률 있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모병제 전환을 희망한다”는 청원 글이 속속 등장했다. 한 청원인은 “더 이상 50만~60만 군대가 필요하지 않다. 징병제로 인해 군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 징병제로 인해 장비 등은 노후화돼 많은 고충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병제로 전환해 대우와 월급을 인상하고 장비와 지원을 강화해 강한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회담 당일 병무청에도 입영 날짜 연기 등과 관련된 문의 전화가 잇따랐다. 한 병무청 관계자는 “입영 날짜 연기나 모병제 등에 대한 문의가 몇 통 왔다고 파악했다”며 “조사를 안 해봐서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 또한 “민원실로 들어 왔을 텐데 전달받은 게 없다”면서 “국방부로 입영 날짜 연기 등 문의가 직접 들어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징병제 폐지나 모병제 등에 대한 이슈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의 바람처럼 종전이 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안보 위협이 없어진다고 해서 군대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라면서 “일본이 독도 근처에서 정찰 활동하면 경찰이 가서 막아야 하나. 또 중국이 위협하면 누가 막아야 하나. 적의 종류가 북한으로부터 다른 대상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한 국방 전문가 또한 “종전 선언을 했으니 군대를 없앤다거나 대규모 감축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말로 지켜질 수 있는 게 평화라면 군대가 필요 없지 않나. 역사적으로만 봐도 평화협정 종전선언 해놓고 뒤통수 쳤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또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이라는 주적이 없어지는 건데, 우리에겐 더 큰 적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한반도 전체에 적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1990년 통일 당시 서독은 58만 5000명의 병력을 운용했고 동독도 별도로 23만 5000명의 군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통일 이후 지속적인 감군에 나서 1990년 58만 5000명에 이르렀던 군 병력 규모를 2015년 말까지 17만 8000명으로 줄였다. 이후 독일은 통일한 지 21년이 지난 2011년에야 징병제를 지원병제로 바꿨다.
앞서의 국방 전문가는 “독일 통일은 1990년인데 2011년에야 모병제로 전환했다. 병사는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는데 간부는 단계적으로 감축을 시켜야 한다. 갑자기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면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또한 재취업을 시켜주는 등 단계적으로 감군을 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동독군보다도 북한군이 더 많은 상황에서 남북이 통일이 될 경우에 군 통합 과정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차두현 객원연구위원 또한 “모병제를 시행해서 병력 충원에 이상이 없는 규모는 30만 명 내외다. 30만 명 내외로 2~3년 내에 바뀌긴 어렵다고 본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군이 매력적인 직업 중 하나다.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통일한국군 50만 명이라고 가정할 때 50만 명이 북한 출신 통일한국군이라면 군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기 때문에 독일도 상당한 시간을 갖고 모병제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병제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의 국방 전문가는 “현재 약 43조 원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 직접적인 인건비로 지출되는 게 7000억~1조 2000억 원 정도다. 현재 30만 명 병사들을 모병 간부로 대체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건비는 약 5조~6조 원으로 뛴다. 경상 운영비는 그대로인데 인건비 지출이 늘어나면 그만큼의 첨단 무기를 구입하지 못 한다. 안 그래도 한국군이 굉장히 낙후됐는데 여기서 더 격차가 벌어지면 사실상 적들에게 무장해제라고 오픈한 꼴”이라고 우려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