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의 거울일까. 최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사 댓글과 추천수를 조작한 ‘드루킹’ 사건에 이어 트위터 계정(@08__hkkim) ‘혜경궁 김씨’는 6․13 지방선거 민주당 경선판을 뒤흔들었다. SNS 선거운동의 병폐가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특정 지역에서 페이스북 ‘미인(美人) 프사(프로필 사진)’로 선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미인’ 프로필 사진을 내건 페이스북 회원.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A 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평소 SNS 활동을 즐기는 A 씨는 “최근에 15명의 아주 젊은 여성들이 한꺼번에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해왔다. 전부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성들이었다”며 “워낙 예쁘고 어린 여자애들이었는데 많이 들어와서 일부만 받았다. 알고 보니, 이들이 제가 사는 지역에 출마한 특정 후보의 홍보 게시물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이 A 씨에게 친구를 신청한 이들 중 일부의 페이스북 계정을 분석한 결과, 공통점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젊고 예쁜 여성의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게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고 아무개 씨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김 아무개 씨와 권 아무개 씨도 예쁜 외모를 곳곳에서 나타내고 있었다.
A 씨는 “야한 사진은 아니지만 프로필 사진을 보면 자기소개가 천편일률적이다. 특정 지역을 거주하고 그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다”며 “며칠에 걸쳐 한꺼번에 친구신청이 들어왔는데 조직적인 것 같았다. 처음에 너무 많이 와서 아무 생각없이 친구를 받았는데 이상한 점이 많아 신청을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미인 프사 계정들의 ‘출신이나 거주 지역’은 경기도 B 시다. 학교 역시 B 시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계정이 전부 특정지역에 사는 ‘지역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6․13지방 선거에서 B 시에 출마한 현직 기초자치단체장 C 후보를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 씨는 3월 22일 “10년 이상 방치된 공실을 벤처산실로 탈바꿈했다”는 내용의 뉴스를 공유했다. C 후보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치적으로 올린 게시물이었다. 고 씨는 23일에도 “산업단지 0개, 전국 최고의 빚더미 도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C 후보의 시정 홍보글을 공유했다. 4월 4일엔 “도서관을 건립했다”는 홍보글을 올렸다.
비슷한 시기 다른 여성들도 시정 홍보에 열을 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상한 점은 또 있다. 김 씨와 권 씨의 페이스북 친구 숫자는 각각 약 1900명, 2100명이다. 김 씨와 권 씨는 2월경까지 페이스북에 사적인 글을 올린 이후 3월부터 집중적으로 C 후보에 대한 홍보글을 공유했다. 3월은 6․13지방 선거를 위해 각 예비후보들이 활발하게 홍보 활동을 벌인 시기다. ‘일요신문’ 측은 선거운동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두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페이스북 시스템의 특성상, 여성들의 친구 신청을 받은 B 지역 시민들은 C 후보의 시정 홍보 게시글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 D 씨는 “하루에 6건 씩 4월 달에만 20건 이상씩 친구 신청을 받았다. 화려하거나 예쁜 모습의 여성이 친구신청을 해왔다. 보기에도 잘 꾸미고 젊은 여성들이 기하수급적으로 친구신청을 한 것”이라며 “화장을 곱게 해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친구 신청을 받을 뻔했지만 게시물을 보고 불쾌한 목적이 보여서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것은 치졸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B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온 ‘미인’ 주의보 게시글. 커뮤니티 캡처
이 때문에 최근 B 지역 주민들이 모인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는 ‘미인 주의보’가 돌고 있다. 박 아무개 씨는 4월 18일 “갑자기 예쁜 여자애들 친구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페북 초보 형님들이 친구를 받아주니, 저도 헷갈릴 지경이다”며 “B 지역 거주지로 돼있어도 페북 활동 내용이 없으면 다 삭제하는 게 좋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주민들도 “너무너무 많이 온다”, “저도 많이 받았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앞서의 D 씨는 “B 지역 주민들이 동일 인물에게 친구신청을 꽤 많이 받았다. 예쁜 여성들의 가짜 계정들이 무차별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며 “C 후보를 찬양하는 게시글이 많이 보여서 친구신청을 받았을 때 바로 지웠지만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C 후보 측은 ‘일요신문’에 “우리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공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며 “선거에 개입할 수 없다. 모르는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미인 프사’ 선거홍보 의혹에 원칙적인 입장을 전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가능하다. 특정인이 다수를 상대로 친구를 신청한 내용을 가지고 위반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특정 후보가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이용해 시정홍보를 해도, 금품이 매개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다.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려를 드러냈다. 차재원 부산카톨릭대학교 교수는 “페이스북은 누구나 친구 요청이 가능하다. 미끼 작전으로 프로필 사진에 미녀 사진을 올려놓으면 유권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며 “하지만 ‘낚시’성 홍보는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아무리 건전하게 시정홍보를 해도 특정한 목적을 의도해선 안 된다. 이같은 홍보는 조작의 여지가 높고 여성의 성 상품화 문제가 따라온다”고 지적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